좋은 자리에선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말자
최근 한 친구의 결혼식을 다녀왔다. 밝은 조명 아래 신부대기실에서 다소곳이 앉아 하객을 맞이하는 친구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며 손을 잡았다. 얼굴이 반쪽이 된 친구의 얼굴을 보며 ‘새신부라 더 예쁘다’며 칭찬을 건넸다. 사진작가의 스냅 촬영 전 ‘어찌어찌 결혼은 한다’며 귓속말을 건네는 친구의 팔짱을 꼭 꼈다.
그렇다. 지금으로부터 1시간 뒤면 친구 부부는 양가 어른의 축하를 받으며 정식 부부가 될 것이다. 다행인지, 험난한 길을 걷기 위한 전초전이 될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왜냐고? 상견례에서 한 바탕 겪었기 때문이다.
2시간의 평화, 10분 이후 생겨난 악몽
두 커플은 제법 오래 만난 사이였다. 결혼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오고 가기 전에도 서로의 본가를 자주 드나들었으니 둘의 결혼은 어쩌면 예정돼있었다. 우리는 선하고 반듯한 두 사람의 화합을 축복했다.
결혼 이야기는 남자 쪽 집안에서 먼저 흘러나왔다. 두 사람 나이가 어느 정도 찼고, 아버지도 현직에 계실 때 식을 치르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두 사람은 조금 더 연애를 하고 싶었으나, 어른들 말씀에도 틀린 게 없고 본인들도 언젠가 결혼을 할 테니 말이 나온 김에 진행하자며 뜻을 맞췄다.
결혼식 날짜를 결정하고 결혼 준비를 차근차근하던 중 상견례가 진행됐다. 양가 부모님께선 장소 선정의 탁월함부터 칭찬하기 시작하셨다. 분위기는 순조로웠다. 양가 자식들의 칭찬을 시작으로 사돈이 되실 분들끼리 취미까지 같으셔서 결혼하고 ‘친구 같은 사이’가 되자는 농담까지 어우러졌다. 평화가 급속도로 얼어붙은 건 남자 쪽 어머님으로부터 나온 한마디였다.
“저희한테 많이 주실 필요 없으세요. 마음만 받겠습니다.”
갑자기 이게 무슨 말씀이실까.
합의되지 않은 이야기는 모두 금물
상견례 후 친구의 집은 그날 뒤집어졌다. 어떤 것이 오갈지 논의도 전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신랑 측 어머니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것. 게다가 예단 비용은 집값에 보태기로 한 것 아니었느냐는 여러 가지 의문이 생겨나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이런 질문을 부모님께 여쭤보고 답하는 사이 친구는 결혼에 대해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오랜 시간 봐왔던 남자 친구와 부모님에 대해 잘 몰랐다는 것을 깨닫고, 결혼은 현실이라는 생각에 '결혼은 왜 해야 하나?라는 의문도 계속 들기 시작했단다. 상견례에서 나온 한마디는 결국 예민함으로 가득한 그 둘 사이의 도화선이 됐다. '결혼을 미루는 게 어떨까?', '결혼하지 말까?'라는 이야기까지 두 사람 사이에서 흘러나왔다고 했다.
청첩장 모임을 연기하고 2주 간 두문불출할 만큼 친구는 극심한 피로감을 느꼈다. 이렇게 어른이 되는 건가 하는 깨달음과 중간에서 의견을 조율하는 남자 친구의 헌신을 보며 내가 평생 같이 오래 할 사람은 ‘이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겨우 마음을 다잡았다. 모든 것이 잠잠해진 결혼식 날, 친구는 많이 울었다.
수십 년 만에 처음 만났으니 말은 ‘합의된 것만’
상견례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지는 커플이 많을 것이다. 이 날을 위해 어떤 음식을 선택해야 할지, 어떤 옷을 입고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아진다. 결혼을 하고 보니 상견례를 양사 간 ‘킥오프 미팅’이라고 여기면 간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많은 날을 위해 좋은 이야기만 주고받는 날, 업체 간 합의된 안건을 바탕으로 서로의 결정이 ‘현명’했음을 칭찬하면 된다. 혹은 지역이 먼 분을 위해 배려하고 이에 대한 감사인사를 전하면 된다. 비용과 앞으로 양가에서 오고 가야 할 현실적인 내용은 가급적 삼가는 것이 좋다. 어차피 그 자리에서 해결되지 않으며 신랑, 신부가 먼저 내용을 조율하고 어느 정도 결정된 것을 바탕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곧 가족이 될 예정이지만, 아직은 어려운 타인과의 자리라는 것을 잊지 말자. 공손함은 필수다. 부모님께서 자식의 눈치를 과하게 봐야 하느냐고 생각하나? 상견례는 자식도 누군가에게 ‘타인’인 신기한 행사다. 낯설더라도 예의를 지키는 게 타인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요구되는 행동 양식이다.
상견례를 치르고 모두가 평온한 결혼식을 치를 수 있길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