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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Jul 26. 2018

H언니가 결혼을 결심한 이유

사람들은 결혼을 왜 하는 걸까

내겐 만나본 적 없지만 내적 친목을 다지는 H언니가 있다. 얼굴도 예쁘고, 쿨한 성격에 똑 부러지기까지 한 그녀는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의 사촌 언니다. 어려서부터 인기가 많았던 언니는 항상 남자친구가 있었고, 나는 언니의 연애사를 친구에게 전해 들으며 대리만족하곤 했었다. 입시에 찌들어있던 10대 시절, 그녀는 나에게 아이돌이었고, 그녀의 이야기는 귀여니 소설이었다. 


스무 살이 된 후, 대학에서 술의 참맛을 알아가고 있을 때쯤 언니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H언니 결혼한대”

“...뭐?”

“다음 달에 한다는데?”

“이렇게 빨리? 대체 왜?”

“음... 글쎄”


당시 언니의 나이는 25이었다. 결혼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였다. 갑작스러운 결혼 소식에 나는 충격에 휩싸였고, ‘속도위반인가?’라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다. 언니의 결혼 상대는 6살 차이가 나는 푸근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당시 20살의 사고로는 어리고 예쁜 언니가 더 멋진 남자를 만날 수 있는데, 자유연애를 그만두고 왜 결혼을 서두르려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언니가 늑대의 유혹 속 강동원 같은 남자와 결혼할 것이라 바보같이 기대했던 것 같다.



H언니는 왜 일찍 결혼했던 걸까?


어느새 나도 나이를 먹은 것일까. ‘언제쯤 결혼할 생각이냐’, ‘남자친구 만들어서 빨리 결혼해야지’ 등 여기저기 날아오는 화살들을 방어하기 바쁜 나이가 되었다. 결혼에 대한 답답한 사회 통념에 반항심만 커진 나는 ‘혼자 치킨 먹으면서 살 거야’라 다짐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사람들이 결혼하는 이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결혼은 미친 짓이라 말하는 기혼자들의 구구절절한 호소에도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부부들이 내 주위에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나의 우상이었던 H언니가 떠올랐다. 이제 딸 셋을 가진 엄마가 된 언니. 

남들보다 이른 결혼을 했기에 언니라면 나의 의문을 풀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언니의 소식은 여전히 친구에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H언니, 잘 지내시지?”

“응. 애가 셋이라 좀 힘들어하긴 하는데, 그래도 애들이 예뻐서 괜찮은가 봐.”

“신기하네. 아직도 언니는 20대 같은데 애가 셋이라니.”


프로필 사진 속 아이들과 환하게 웃고 있는 언니는 나보다도 어려 보였다.


“그런데 언니는 대체 왜 일찍 결혼한 거래?”

“넌 아직도 그게 궁금하냐.”

“당연하지. 내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중 하나였으니까.”

“하긴. 나도 언니한테 100번은 물어봤었지. 근데 대답은 항상 똑같았어. 안정감을 느끼고 싶었대.


대단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과 달리 이유는 의외로 평범했다.


“안정감? 무슨 안정감?”

“왜 그런 거 있잖아. 오로지 내 편이 있고, 힘들어도 의지할 사람이 있고, 나를 항상 반겨주는 가족이 있어 느끼는 그런 안정감.” 


혼자 타지 생활을 오래 했던 언니는 심적으로 편안함을 느끼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혼을 통해 안정적인 생활을 꿈꿨고, 다정다감했던 지금의 남편에게 ‘이 사람과 함께면, 행복할 수 있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어 결혼을 서둘렀다고 한다. 결국 그녀의 풍부한 연애사는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함께 할 배우자를 찾는 하나의 과정이었다. H언니에 대한 오랜 의문은 풀렸지만 특별한 이유를 찾던 내겐 참으로 시시한 이유였다.



사람들은 결혼을 왜 하는 걸까


H언니 외에도 나는 결혼을 준비하는 다른 지인들에게 왜 결혼을 하려고 하는지 물었다. 그들 대부분 ‘행복해지고 싶다’, ‘안정감을 얻고 싶다’, ‘그 사람과 함께 나이가 들고 싶다’, ‘혼자는 쓸쓸하다’ 등 다양한 이유를 이야기했다. 표면적인 대답은 모두 달랐지만, 공통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것. 인생의 큰 이벤트인 결혼을 결심하면서 그들의 대답은 모두 추상적이었다. 그리고 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미래를 기대할 뿐.


‘결혼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라는 나의 오랜 전제가 부정당하자 머리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내게 비혼을 다짐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을 때, 나는 10가지의 명확한 대답을 해줄 수 있으므로 반대의 경우도 그럴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1차원적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 조금 부끄러워졌다. 결혼 또한 개인의 가치관에 따른 하나의 선택이므로, 타인을 설득시킬만한 합리성을 기대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정했다.


후에 친구를 통해 H언니에게 일침을 들었다.


“언니가 너 남들 결혼하는 이유에 관심 갖지 말고 빨리 연애나 하래. 어차피 이유는 다 똑같다고. 결혼이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고 싶어서 '결혼'을 하는 거라고.”





혼자 준비하지 말아요. 같이해요!

즐거운 결혼 준비를 위한 한 걸음, 웨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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