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혼의 갈림길에 선 커플
운명 같은 첫 만남부터 죽여 살려하면서 결혼하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인연이라는 건 자못 신기하다. 한편으론 결혼하는 두 사람을 두고 많은 이들은 ‘신기하다’고도 표현한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군가는 아주 사소한 것이 원인이 되어 결혼의 문턱을 넘지 못했을 수도 있고, 궁극적인 가치관이 맞지 않아 결별하는 사례도 빈번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두 사람의 파혼에 부모님이 기인한다는 것도 풀기 어려운 문제다. 원래 형성되어있는 내 가족과 미래의 내 가족, 그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최근 이런 상황에 놓여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친구 S의 이야기를 얘기해보고자 한다.
우리 결혼, 2년만 늦추자
S는 요즘 결혼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의 연인 A가 결혼을 2년만 늦추자고 했기 때문이다. S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사회 초년생의 급여는 빠듯했지만 언젠가 인생의 큰 변곡점에 사용될 걸 생각하며 한푼두푼 모았다. 그 과정에서 만난 게 연인 A다. 그는 대학원을 나와 남들보다 사회생활은 늦었지만 누구 못지않게 저금하고 돈을 모았다고 한다.
경제관념이 뚜렷했던 두 사람은 참 잘 맞았다. 부모님께 도움 한번 청하지 않고 결혼 생활을 시작하겠노라 다짐했다. 결혼 얘기가 나올 때쯤 큰 마음 먹고 공개한 통장 내역은 서로를 믿는 든든한 버팀목이자 확신이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A는 S에게 할 말이 있다며 잠시 시간을 내달라고 했다. 전화로 하기엔 양해를 구해야 하는 내용이니 동네로 오겠다며.
그 자리에서 S는 A의 결혼 연기 통보를 받았다. 사정은 이랬다. A가 모아둔 목돈을 부모님께서 빌려달라고 하셨단다. 사업자금으로 쓰일 거라고 했다. S는 거기에 부족한 금액은 대출로 충당해 드릴 예정이라고 했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결혼 연기? 부모님 사업자금? 대출? 일단 생각해보겠다는 S에게 A는 이해한다며 답을 달라는 이야기를 하고 돌아갔다. S는 그날부터 잠이 오지 않았다. 혼란스러웠다. 이게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결혼인가.
그럴 수 있어 vs 서운해
다음 날 S는 A를 만나 자초지종을 따져 물었다. 이 내용이 통보로 들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A의 부모님께선 작은 사업을 하고 계셨다. 그러던 중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에 가로막혀 사업이 어려워졌다. 부모님은 사정이 나아지면 돈은 꼭 갚겠다고 약속하셨다고 했다. 부모 자식 간에 차용증도 작성하기로 했다며, 걱정 말라고 A는 덧붙였다.
S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마음은 이해 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목돈을 빌리고, 거기에 모자라 추가 대출까지 받게 하는 부모님. 우리 부모님이라면 그렇게 하셨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A는 덧붙였다. “그래도 지금까지 대학원까지 다닐 수 있었던 게 부모님 덕택인데, 이 정도는 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어. 난 이 돈 돌려받고 싶지 않지만 꼭 갚는다고 하셔서 억지로 받는 거야.”
맞는 말이다. A는 사업가 부모님 덕에 공부를 오래 할 수 있었다. 알뜰한 경제관념으로 자라올 수 있었던 건 부모님 덕이라며, 늘 부모님에 대한 존경을 표시했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뭔가? A의 인생에 본인과의 미래는 2순위라는 기분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몇억이 오가는 중대한 상황에 통보받는 상황도 기가 막혔지만 말이다.
한편으로는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창피했고 한심스럽기도 했다. 본인도 부모님이 어려우시면 도와드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이 될 입장에서 그러한 결정과 통보는 분명히 서운하고 당황스러웠다. 양가감정은 S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이 상황에서의 올바른 답은 무엇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계속됐지만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했다.
단순히 2년이 문제가 아니다
며칠 뒤 한참을 고민한 S는 A에게 "난 이 결혼 모르겠다"라고 했다. A는 당황스럽다며, 헤어지자고 말하는 거냐고 다시 한번 얘기했단다. 고개를 가로젓는 S를 두고 A는 실망했다며 자리를 떴다.
S는 앞으로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A에게 가족은 본인만큼 소중할 테니 부모님이 극구 사양하신다 해도 언제나 팔을 걷어붙일 것이다. 본인과 S의 상황보다.
만약 지금 돈을 빌려 드리지 못한다, 죄송하다 했으면 어떨까. 이해하실까? 어림짐작도 되지 않았다. 그 이후 어색하게 본인이 A 부모님을 뵙는 게 싫었다. 두 가족이 만나게 되는 것도 싫었다. 또한 A의 결정을 수긍하고 잠자코 2년을 기다리고 있는 과정도 생각해봤다. 부모님께서 그 돈을 돌려주실까? 성격 상 문득문득 떠올릴 게 뻔했다. 속이 좁은 인간이니까.
그렇게 결론 지으니 많은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었다. A는 타이밍 상 결혼하기 힘들다고 결론지었다. S는 결국 결혼 자체에 싫증이 났다. 문득 무엇을 위해 이 큰돈을 모아 왔는지 말할 수 없는 허탈함에 웃음만 나왔다.
결혼은 부모와 나 그리고 새롭게 만나게 될 배우자까지 세밀한 감정의 줄다리기를 잘해야만 골인할 수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놓여 결혼을 다시 생각하게 된 연인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며, 이는 결코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냥 가치관이 다르고 결혼해야 하는 시점이 다른 것이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