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하면 뭔가 이상하고 서운한 청첩장 모임
흔히들 하는 우스갯소리에 ‘한국인은 밥에 진심인 민족’이라는 말이 있다. 우연히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다음에 밥 한 끼 먹자" 하고,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때는 "내가 밥 한 끼 거하게 살게"라고 한다. 부모님께 안부전화라도 하면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냐"는 말을 꼭 듣는다.
평상시에도 이런데 인륜지대사인 결혼에 밥이 빠질 수 있을까. 결혼식 장소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바로 하객들에게 제공되는 식사의 퀄리티다. 하객을 초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신랑 신부가 가까운 사람들을 모아 밥을 사며 청첩장을 주지 않는가.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이런 문화는 ‘청첩장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아 안 하면 뭔가 이상하고 서운한 것이 되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5인 이상 집합 금지, 밤 10시 영업 제한이 내려지면서 “나 결혼해, 밥 한 끼 먹자!”라는 말을 꺼내기가 너무나 힘들어졌다. 어쩔 수 없이 모임은 생략하고, 모바일 청첩장을 기프티콘과 함께 보내는 신랑, 신부도 많다. 사실 그 편이 감염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으니 바람직한 방법이다.
그러나 나는 무수한 고민 끝에 가능한 직접 만나 청첩장을 전달하며 초대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지인들이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하는 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는 지인들이 있을 것이고, 지금처럼 코시국이 이어진다면 마음 편하게 만날 기회는 아주 나중에나 있을지도 모르는 만큼 얼굴 보고 결혼 소식을 전해야 후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결혼식 당일에 다른 하객도 많고, 정신도 없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 어려우니 청첩 모임에서 그간 쌓인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었다.
그리하여 2박 3일 일정으로 청첩장 원정을 떠났다. 만날 지인들은 해봤자 2그룹인데, 한꺼번에 모이지 못하니 한 그룹을 2번 혹은 3번에 나누어 만나야 할 상황이었다. 결국 금, 토, 일 주말 동안 5번의 모임을 하게 됐다. 기꺼이 참석하겠다고 해준 소중한 지인들의 안위를 위해 전 좌석이 룸이거나 내부 공간이 트여 있고 테이블 간 간격도 넓은 식당을 찾았다.
코시국에 결혼 준비하기 쉽지 않았지만, 사실 청첩 모임을 가지는 게 가장 마음이 무겁고 힘들었다. 이 시국에 모이기 경솔하다 생각할 수도 있고, 만나지 않는다면 청첩 모임은 생략하고 결혼식에만 와달라고 하는 건가 싶어 서운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다행히도 식사 정도라면 기꺼이 참석하겠다는 지인들이 대부분이었고, 내 일정에 맞춰 만나는 것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어 무사히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시간도 재정도 두 배로 들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소규모로 자리를 만드니 여럿이서 모일 때보다 각자의 깊은 이야기들을 많이 나눌 수 있어 그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예상했던 대로, 청첩장을 전달하며 식사를 했던 지인 중 한 명은 생각보다 빨리 아가가 찾아와서, 또 다른 한 명은 지방에서 프로젝트 중이라 예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하지만 청첩장을 전달하며 충분히 축하받았고, 그 자리에서 아기를 가질 계획이 있다는 것이나 사업을 확장하느라 매우 바쁘고 워라밸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 등 많은 대화를 나눈 터라 불참에 대한 서운함은 남지 않았다. 얼굴 본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외에 만나서 초대할 수 없는 경우에는 정중하게 주소를 부탁드려 손으로 쓴 카드를 더한 청첩장을 우편으로 보냈다. IT 시대에 무슨 아날로그냐는 핀잔도 들었고, 빠르고 간편한 모바일 청첩장에 비해 3~4일의 시간도 드는 일이었지만, 소중한 사람들을 나의 특별한 시간에 초대하고 싶은 마음을 전달하는 나름의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마음이 아닌가 싶다. ‘나는 너에게 결혼이라는 중요한 인생의 이벤트를 알리고 싶고, 가능하면 그 자리에 함께 해주었으면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서로의 좋은 소식에는 축하를, 좋지 않은 소식에는 응원과 위로를 전하며 지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접근한다면, 어떤 방법의 초대든 그 마음은 온전히 전달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