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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May 21. 2021

코시국에 청첩장 모임을 한
진짜 이유

안하면 뭔가 이상하고 서운한 청첩장 모임


흔히들 하는 우스갯소리에 ‘한국인은 밥에 진심인 민족’이라는 말이 있다. 우연히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다음에 밥 한 끼 먹자" 하고,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때는 "내가 밥 한 끼 거하게 살게"라고 한다. 부모님께 안부전화라도 하면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냐"는 말을 꼭 듣는다.


평상시에도 이런데 인륜지대사인 결혼에 밥이 빠질 수 있을까. 결혼식 장소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바로 하객들에게 제공되는 식사의 퀄리티다. 하객을 초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신랑 신부가 가까운 사람들을 모아 밥을 사며 청첩장을 주지 않는가.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이런 문화는 ‘청첩장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아 안 하면 뭔가 이상하고 서운한 것이 되었다.


출처 : JTBC <멜로가 체질> 스틸 컷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5인 이상 집합 금지, 밤 10시 영업 제한이 내려지면서 “나 결혼해, 밥 한 끼 먹자!”라는 말을 꺼내기가 너무나 힘들어졌다. 어쩔 수 없이 모임은 생략하고, 모바일 청첩장을 기프티콘과 함께 보내는 신랑, 신부도 많다. 사실 그 편이 감염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으니 바람직한 방법이다.


그러나 나는 무수한 고민 끝에 가능한 직접 만나 청첩장을 전달하며 초대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지인들이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하는 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는 지인들이 있을 것이고, 지금처럼 코시국이 이어진다면 마음 편하게 만날 기회는 아주 나중에나 있을지도 모르는 만큼 얼굴 보고 결혼 소식을 전해야 후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결혼식 당일에 다른 하객도 많고, 정신도 없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 어려우니 청첩 모임에서 그간 쌓인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었다.


출처 : JTBC <런 온> 스틸 컷


그리하여 2박 3일 일정으로 청첩장 원정을 떠났다. 만날 지인들은 해봤자 2그룹인데, 한꺼번에 모이지 못하니 한 그룹을 2번 혹은 3번에 나누어 만나야 할 상황이었다. 결국 금, 토, 일 주말 동안 5번의 모임을 하게 됐다. 기꺼이 참석하겠다고 해준 소중한 지인들의 안위를 위해 전 좌석이 룸이거나 내부 공간이 트여 있고 테이블 간 간격도 넓은 식당을 찾았다.


코시국에 결혼 준비하기 쉽지 않았지만, 사실 청첩 모임을 가지는 게 가장 마음이 무겁고 힘들었다. 이 시국에 모이기 경솔하다 생각할 수도 있고, 만나지 않는다면 청첩 모임은 생략하고 결혼식에만 와달라고 하는 건가 싶어 서운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다행히도 식사 정도라면 기꺼이 참석하겠다는 지인들이 대부분이었고, 내 일정에 맞춰 만나는 것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어 무사히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시간도 재정도 두 배로 들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소규모로 자리를 만드니 여럿이서 모일 때보다 각자의 깊은 이야기들을 많이 나눌 수 있어 그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예상했던 대로, 청첩장을 전달하며 식사를 했던 지인 중 한 명은 생각보다 빨리 아가가 찾아와서, 또 다른 한 명은 지방에서 프로젝트 중이라 예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하지만 청첩장을 전달하며 충분히 축하받았고, 그 자리에서 아기를 가질 계획이 있다는 것이나 사업을 확장하느라 매우 바쁘고 워라밸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 등 많은 대화를 나눈 터라 불참에 대한 서운함은 남지 않았다. 얼굴 본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출처 :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스틸 컷


이 외에 만나서 초대할 수 없는 경우에는 정중하게 주소를 부탁드려 손으로 쓴 카드를 더한 청첩장을 우편으로 보냈다. IT 시대에 무슨 아날로그냐는 핀잔도 들었고, 빠르고 간편한 모바일 청첩장에 비해 3~4일의 시간도 드는 일이었지만, 소중한 사람들을 나의 특별한 시간에 초대하고 싶은 마음을 전달하는 나름의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마음이 아닌가 싶다. ‘나는 너에게 결혼이라는 중요한 인생의 이벤트를 알리고 싶고, 가능하면 그 자리에 함께 해주었으면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서로의 좋은 소식에는 축하를, 좋지 않은 소식에는 응원과 위로를 전하며 지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접근한다면, 어떤 방법의 초대든 그 마음은 온전히 전달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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