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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Jun 02. 2021

신부한복은 왜 항상 흰색 저고리에 파스텔 분홍 치마일까

신부한복에 대한 고찰


결혼에 Not to do List를 정리한다면, 고가의 스튜디오 앨범 페이지 수 추가와 함께 상위권을 차지할 항목이 있다. 바로 신부 한복이다. 연회장에서 하객 인사를 할 때 부피가 큰 한복보다 단정한 원피스를 착용하는 신부가 늘었고, 2부 예식이 있다면 보통 드레스를 입다 보니 한복은 점점 그 필요성이 희박해졌다. 스튜디오에서 한복 촬영을 하고 싶거나 폐백을 하는 경우에 한복이 필요해지는데, 그마저도 맞춤보다 대여를 선호한다.


맞춤을 꺼리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한복에 유행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 세대가 결혼할 때는 녹의홍상에 강렬한 금박이 들어간 한복이 정석이었던 것 같다. 꼭 녹색 저고리에 빨간 치마는 아니더라도 짙은 남색 등 원색을 많이 썼다. 2000년대에 들어 신부한복에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바로 색감의 변화다. 선명하게 화사한 분홍색을 치마에 많이 썼고, 저고리는 배자를 겹쳐 입거나 배색을 넣어 배자를 입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디자인, 파스텔 톤의 색동으로 포인트를 준 디자인 등이 인기를 끌었다. 


요즘은 은은한 파스텔 톤이 대세다. 치마는 더욱 여리여리한 분홍색을 많이 쓰고, 저고리에는 아예 화이트나 화이트에 가까운 크림, 아이보리 컬러에 레이스나 자수 등으로 포인트를 준다. 컬러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 치마는 이전에 비해 종 모양처럼 더욱 풍성해졌고, 저고리 품은 몸에 맞게 좁아지고 길이는 길어졌다. 한복의 소매를 일컫는 배래도 폭이 좁아져 직선에 가까워졌다. 소매 고름 역시 짧고 좁아지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몇 년 전 한복이 어쩐지 촌스러워 보이는 것은 은근히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대마다 유행한 신부 한복을 꼽아볼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한 시기 결혼한 신부들은 비슷비슷한 디자인의 한복을 입었다. 한복업체야 당연히 정형화된 색상 조합과 이에 따른 몇 가지 원단을 대량으로 준비해 두고(이를 테면, 흰색 저고리에 분홍치마) 고름이나 레이스, 자수 등의 부자재만 바꿔 달아 제작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고 마진도 많이 남을 것이다. 게다가 한복이 디자인이나 색상에 취향을 가질 정도로 많이 입는 의상이 아니고, 대개는 결혼할 때 일생 처음으로 입게 되다 보니 신랑 신부로서는 권하는 것을 따라 선택하기 쉽다.


결과적으로 종로에서 가성비로 맞춘 한복이나, 청담에서 고급 원단으로 맞춘 한복이나 원단의 재질, 색감 정도를 제외하고는 큰 차이를 찾기 어렵게 됐다. 너무나 신부스러운 한복이어서 다른 행사에 입기도 어렵고, 몇 년만 지나면 유행이 은근히 바뀌어 어딘가 촌스러워 보이는 것은 덤이다. 물론 색다른 배색, 색다른 디자인, 색다른 원단을 사용하는 한복 맞춤의 세계도 있지만, 가격도 다른 세계의 이야기라는 것이 문제다. 앞으로 언제 입을지도 모르고 보관도 관리도 어려운 한복을 결혼식 하루를 위해 큰 비용을 투자해서 굳이 장만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는 개량한복인 철릭 원피스를 5벌이나 갖고 있는, 한복의 라이트 한 마니아라고 자부하는 사람이지만 이러한 현실에 일찌감치 맞춤 한복을 포기했었다. 그리고 중고나라에서 신부 한복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한 벌 샀다. 흰색 저고리에 분홍치마, 연보라색 고름, 소매 거들지의 자수까지 전형적인 신부 한복이었다. 신랑 것은 적당히 대여해서 예식과 피로연에 입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완전히 바꿔 놓은 사건이 일어났으니 하필이면 한옥이 유명한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한 것이다! 이제 기회가 없을 테니 한복 입고 사진이나 남기자는 생각으로 한복 촬영을 추가했는데, 드레스를 입고 찍은 사진보다 훨씬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닌가! 결국 뒤늦게 맞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찾아보니 한복 맞춤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더라. 요 몇 년 새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복을 즐기는 문화가 생겼다더니 여러 젊은 사장님들이 젊은 층의 니즈에 맞춰 다양한 디자인과 과감한 색상, 실험적인 소재로 한복을 제작하고 있었다. 결국 가격까지 합리적인 맞춤 업체를 찾아내 노란 치마에 베이지색 시스루 저고리를 주문했다.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결혼이란 것이 결국 다 내 만족 아닌가. 노란 유채꽃 같았던 내 한복, 그에 맞춰 대여한 새파란 두루마기의 신랑한복은 다소 어두운 색감의 연회장 안에서 화사하게 빛났다. 흰색 저고리에 분홍치마가 아니었지만, 나를 신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내 고운 한복이 천덕꾸러기가 되지 않도록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기저기 입고 나서 보려고 한다. 내 취향에 따라 만들었으니 조금 세월이 지나 입어도 나 내가 보기에 예쁘지 않을까. 살면서 맘에 드는 옷 한 벌 몸에 꼭 맞게 지어 가질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 그 기회를 그냥 포기하지 말고 꼭 활용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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