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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Jun 07. 2021

그가 제시한 혼전 계약서,
흔쾌히 사인하시겠습니까?

결혼 전에 한 약속, 꼭 지켜야 할까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루머인지 모르겠다. 시국의 바람을 타고 가짜 뉴스와 루머가 넘실대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무엇이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구별하기가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얼마 전 뉴스 페이지를 뜨겁게 달구었던 빌 게이츠와 멀린다 게이츠 부부의 이혼 배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사실과 거짓이 한껏 뒤섞여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도록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언론에서 앞다투어 다루는 바람에 크게 관심 없던 사람들까지 빌 게이츠 부부의 이혼과 관련한 ‘미스터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사람들이 주목하는 ‘미스터리’는 바로 빌 게이츠가 결혼 전에 사귀었던 전 여자 친구와 결혼 후에도 관계를 지속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전여친과 매년 봄 여행을 떠나고 주기적으로 데이트를 함에 있어 멀린다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작성된 혼전계약서가 있다는 기사까지 나오고 있다. 언론과 사람들의 관심이 쏠려 부담스러워질 것을 염려해 멀린다와 그의 자녀들은 섬을 통째로 빌려 숨어 지내는 것을 계획했다고도 전해진다.



심플한 내용의 사실에 자극과 상상력이 더해져 간단한 한 줄짜리 기사가 매운맛 미스터리로 변했다. 사람들은 항상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것을 원하고, 이에 맞추어 언론과 호사가들은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더욱 자극적인 내용들을 퍼뜨리니까. 그럼에도 소위 ‘그들만의 리그’에서 살아가고 있는 빌과 멀린다 전(前) 부부에게 우리들의 입방아는 신경 쓸 거리도 안 될 것이다. 몇 시에 일어나 아침으로 무얼 먹고 무슨 색 옷을 입었는지,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그들이기에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이혼 보도에 따른 극심한 심리적 타격은 없을 수도 있다. 물론 27년 넘게 동반자로 살아온 사람을 잃는다는 상실감은 있겠지만.


그렇기에 지금처럼 온갖 내용이 한데 뒤섞여 진실과 거짓을 체에 걸러 깔끔하게 구별할 수 없는 상태라면, 차라리 다른 지점에 주목해보려 한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정상적으로 결혼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전여친과 주기적으로 휴가를 함께 보내고 데이트를 하는, 일종의 ‘불륜 행위’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빌과 멀린다 사이에 ‘혼전 계약서’가 있었다는 언론 보도에 주목해보려 한다. 만약 정말로 두 사람 사이에 빌의 외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하는 혼전 계약서가 있다면, 그리고 멀린다가 이에 동의해 서명을 했다면, 이 계약서는 정말로 효력이 있을까? 더 근본적으로, 특정 행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허락 혹은 제한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서를 작성한 후 이루어진 혼인 관계가 정말로 의미 있고 또 건강한 것일까?



사랑과 연애를 함에 있어 조건을 볼 수도 있고, 가급적 조건을 배제한 순수한 사랑을 원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어느 경우에서도 각자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결혼을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감정의 결실이라고 보는 입장에서는 혼인 전에 작정하고 계약서를 작성하는 건 어쩐지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물론 이는 나처럼 지킬 게 없는 사람이나 느끼는 감정일 수 있다. 지킬 게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뭐? 나중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혼전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다고? 물러 터졌군”이라고 하며 나를 질책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사랑에 낭만을 열 스푼 정도 팍팍 넣어 버무리고 싶은 나에게는 혼전 계약서는 그 이름만으로도 참 어렵고 가까이 가기엔 너무 먼 당신처럼 느껴진다.


현실에서 진짜로 혼전 계약서를 작성하고 공증까지 받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커플이 얼마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인터넷 검색만으로 혼전 계약서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 로펌 블로그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만 보더라도 그리 드문 일은 아닌 것 같다. 실제로 관련 글에서도 혼전 계약서가 무조건적으로 불법이거나 부당하다고 볼 수 없으며, 판례에 따르면 사안별로 다르지만 경우에 따라 일정 부분 계약 불이행에 관한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변호사들은 혼전 계약서를 작성할 때 만약을 고려해 변호사 입회 하에 신중하게 작성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이 모든 것들이 무슨 말인지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명치끝에서부터 살짝 쓴 물이 올라오는 건 왜일까. 사랑 앞에 정답은 없고 선택만 있을 뿐이라고 하지만, 이제는 사랑마저도 속세의 강력한 쓴맛 앞에 무릎을 꿇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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