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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Jun 23. 2021

성추행 당했다고 말했는데,
별 반응 없는 남친

남녀 간 공감능력의 차이에 관하여

“퇴근하는 길에 버스 안에서 성추행을 당한 것을 남자친구한테 이야기했는데, 기대했던 반응이 나오지 않아서 의아했어요. 저를 사랑한다면 불같이 화를 내야하는 것 아닌가요..?”


어느날 유튜브를 듣다가 나온 사연이다. 화를 낼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남자친구는 “그런 놈은 신고할 수 있어야 하는데”라는 반응을 보이고 말았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건, 이 사연이 소개됐을 때 남자와 여자의 반응이 극명하게 나뉘었다는 사실. 여자들 중에서는 “그런 무뚝뚝한 사람과 헤어져버려요”라는 ‘급발진’스러운 반응도 있었던 반면, 남자로 추정되는 댓글로는 “그게 왜요..? 큰 사고 안났으면 된 것 아닌가요?”가 대표적이었다. 요새는 남-녀로 구분하면 무엇이든 문제가 되는 시대이지만, 공감능력에 관해서 성별 간에 많은 차이점이 보이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JTBC <시지프스> 스틸컷


이렇듯,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전부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만나는 상대의 뇌 속 구조가 아예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고,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갈등도 없을 것이고 세상의 이별도 많이 줄어들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내 감정을 어루만져주지 못하는 상대와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답답하고 외로운 지는 말로 다할 수 없다.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공감능력의 차이로 발생하는 갈등 때문에 매번 속상하고 다투는 일이 반복됐다. 한 때는 이런 차이를 줄여보기 위해 연인과 대화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이해시키려고도 해봤다. 하지만 타고난 뇌 구조가 다른 것은 한 사람의 노력으로 어떻게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무엇이든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조언을 믿지 않게 된 것도 이 것 때문이다. 다만, 반복 학습을 통해 성장은 시킬 수 있었다. 어떠한 카테고리의 사건이 발생하면 어떤 반응을 보여야 더 나은 모습인지, 어떻게 하면 덜 싸울 수 있는지 하는 것들을 주입하는 것이다. 


꾸준한 학습을 통해 기대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국 사람을 바꿀 수는 없었다. 또 다른 카테고리의 사건이 발생하면, 같은 방식으로 데이터를 업데이트 시키는 과정을 반복해야 했으니까. 한편으로는 공감능력이 이미 발달한 사람을 만나보려고도 했다. 노력해서 바꾸는 것 보다 완성형의 사람을 만나 행복해지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쉽게 만날 수 없었고,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마치 ‘해태’같은 존재라고 결론지었다. 널리 알려져있지만 실존하지는 않는, 상상 속 동물 말이다. 여러 경험을 통해 얻은 결론은 이렇다. 공감능력과 관련하여 “나였으면~”이라는 가정은 관계를 불행하게 만드는 길일 뿐이라는 것. 상대는 나와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게 편하다.


KBS <오월의 청춘> 스틸컷

‘공감능력’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건, 결혼 생활이 외롭다는 주변인들이 부쩍 많아져 생각할 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들 대부분은 결혼 이후 인간관계가 부쩍 줄어든 데다가, 남편이 매일 소통하는 ‘베스트프렌드’격이 된 경우가 많은데, 이 베프랑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느끼니 외롭다고 느꼈다. 연인이라면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부부 관계에서는 마음에 쌓아놓고 있다가 서로 대화를 하지 않게 되는 ‘무언가족’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친구들이 이런 고민 상담을 해올 때, 보통은 ‘대화를 통해서 풀라’는 조언을 많이 하겠지만, 나는 선뜻 그럴 수가 없었다. 


기대 반응을 학습시키는 것은 가능하지만 공이 많이 들어가고, 결국 프로그램 자체를 변경할 수는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이 니 감정을 어루만져 주길 기대하지마! 공감은 여자친구들에게 얻는게 어때?”라며, 주변에 터놓고 이야기할 여자친구를 여럿 두길 조언했다. 이 조언에 친구는 크게 공감하며 만족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그 이후 며칠 뒤 친구가 연락와서 하는 말. “나 아는 언니는, 남편하고 대화하는 걸 왜 회피하냐고 뭐라하던데?” 그렇다. 갑론을박이 되는 일이다. 글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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