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공동체인 부부의 집안일은 어떻게 배분해야 할까
인터넷을 조금만 찾아봐도 쉽게 나오는 전업주부의 경제적 가치. 그렇다면 ‘맞벌이’가정에선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벌이 수준에 따라 철저한 100% 나눔이 가능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 한 명이 배려하고 희생하는 것을 당연히 여겨야 할까? 아니, 집안일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가족이라는 운명공동체가 된 순간부터 책임져야 할 우리 모두의 살림. 아쉬운 사람이 먼저 해결한다는 방식 외에 해결 방법은 없을까?
재택근무 중인 맞벌이 부부의 고민
요즘 들어 A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하고 있다. 사내 부서 변경 등으로 외부 환경에서 오는 압박도 크지만, 배우자의 행동이 눈 밖에 나기 시작한 것이다. 편히 쉬기 위해 존재하는 게 집 아니던가. 하지만 A는 집에 들어가기가 싫다. 그는 집이 어질러져 있는 걸 생각하는 것부터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결혼 후 코로나로 인한 간헐적 재택근무를 한 지 약 일년 째. 두 사람은 여느 부부와 같이 평온한 삶을 보내고 있다.
근무 시간 이후 식사를 준비하면 한 사람이 설거지를 하고, 주말 일찍 일어나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을 닦거나 빨래를 하는 식이다. 그러던 A의 기분이 상하기 시작한 건 3달 전이었다. 샤워를 하다 수챗구멍에 낀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부스에 서린 물때를 닦던 중이었다. 휴지걸이에 둘 두루마리 휴지가 떨어져 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오빠, 장보기 품목에 두루마리 휴지 좀 추가해 줘.”
“응 알았어.”
정신없이 청소를 마친 뒤 세탁실에 들어갔다. 빨래를 하려고 보니 세제 통 입구에 곰팡이가 피어있다. 세탁기에서 쿰쿰한 냄새도 났다. 습도가 높아지면 곰팡이가 번식한다는데. 남편이 빨래를 끝내고 또 그냥 문을 닫아 놓고 나온 게 분명했다.
“오빠, 빨래 돌리고 나서 뚜껑 좀 열어두라고 말했잖아. 세제 넣는 통에 곰팡이 핀 것 좀 봐.”
“아 그랬나? 못 봤는데.”
갑자기 짜증이 솟구쳤다. 비단 세탁기만의 일은 아니다. 왜 화장실과 변기 세면대 물때는 한 사람만이 청소하는 것일까. 안 쓰는 물건을 찾아 처분하는 것도 생각해 보니 A만 하는 것 같았다.
불만은 또 있었다. 집에서 근무하다 보니 평상시 보다 생필품 닳는 속도가 빨라졌다. 필요한 것도 많아질 법한데, 남편은 검색해서 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불편함은 나 혼자만 느끼는 것인가. 이 얘기를 꺼내면 본인은 몰랐다며 자세히 구체적으로 알려주면 하겠다고 했다. 화가 났다. 일거리를 찾아내 같이 하자고 해야만 하는 게 어디 있나. 두 사람의 관계가 점주와 아르바이트생인가? 같이 생활하는 공간의 일을 찾아서 시켜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남편도 분명 이 집에 같이 살고 있다. 말하자면 맞벌이 중이고, 철저히 공동 책임의 영역에 있는 게 집안일인 셈이다. 덧붙이자면 조금 치사하지만 벌이 수준도, 업무 강도도 A가 더 세다. 그런데도 왜 그걸 한 사람만 생각하고 있는 건지 답답하다. 게다가 그의 남편은 아이를 갖길 원한다. A는 겁이 난다. 이러다 아이라도 덜컥 낳게 되면 육아는 모든 게 새로운 일일 텐데 본인이 뭘 해야 하는지 아예 인식조차 못 할 것 같아 벌써부터 스트레스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지만
A는 주변 사람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아도 "왜~ 너희 남편 정도만 해도 백 점짜리인데"라는 소릴 듣거나 혹은 "그거 외에 뭘 더 바라는 거냐"는 말에 기운만 더 빠진다. 왜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을까. 그는 더욱 답답해졌다.
사실, 문제의 본질은 집안일을 하고 안 하고가 아니다. 상대방이 삶에서의 주의력과 관찰력이 너무 없다는 데서 오는 실망감이 더 컸다. 앞서 말한 모든 일은 까놓고 말해서, 눈에 먼저 거슬리는 사람이 하면 된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는 말도 있지 않나. 그런데 집안 내 모든 일이 그렇게 되어버리는 게 싫다. 서로 좋자고 한 결혼인데, 누군가 한 명은 매번 잔소리를 한다. 잔소리꾼이 되기 싫으면 자잘한 일은 한 사람 몫으로 돌아간다.
제발 알아서 먼저 해주었으면 좋겠다. 부부 사이에 가족인데 뭐 어때. 이것마저 반반 나누자는 건 불공평하다고 유치한 것 아니냐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이건 예민한 게 아니다. 지극히 당연한 영역이지만 누군가의 수고로 유지되고 있는 일이다. 회사로 따지면 퍼실리티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행하는 ‘업무’이기도 하다.
부부는 집안의 공동 구성원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