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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Jul 14. 2021

손주로 고양이 보여드리자,
동물 싫어하는 부모님 반응

고양이를 가족으로 소개하던 날, 당신의 등짝은 무사했나요?

우리 집은 2인 2묘 가구다. 2019년 5월, 결혼식을 올리고 2019년 6월, 길에서 태어난 동네 고양이(이름: 안나, 수이) 두 마리를 입양했다. 고양이들과 가족이 되어 함께 산지는 이제 만 2년이 되었다. 결혼생활, 가족으로 사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으로서 오늘은 고양이들을 가족으로 들인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정확히는 시댁과 친정에 알렸던 순간에 대해서.


고양이를 데리고 오는 것보다 두려웠던 건 고양이를 키우게 됐다고 어떻게 양가 부모님들께 알려야 할지였다. 어릴 때부터 "강아지는 절대 안돼" "키울 거면 나중에 나가서 키워"라는 말을 듣고 자랐던 터라 부모님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눈에 선했다. 이건 뭐 등짝 스매싱감이지. 하지만 나는 어차피 맞을 매 가장 먼저 맞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자진해서 먼저 매를 맞기 위해 퇴근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식은땀이 줄줄 나던 그때의 전화.


"엄마"
"오야~ 막내딸~"
"만약에... 나 고양이 키우면 어떨 거 같아?"
"... 으메, 데려왔어야? (눈치 백 단)"
"... 응...ㅎㅎㅎ 나 데려왔..."
"으메, 어쩌려고~ 어쩌려고 그러냐, 좋은 일이긴 한데... 난 몰라야~ - 뚝"


당황해서 전라도 사투리가 나와버린 엄마. 기억하자. 자식들이 물어보는 '만약에'는 사전적 의미인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뜻밖의 경우]가 아닌 [앞으로 발생할 일을 미리 대비하기 위함]일 수 있음을.


인천에서 구조된 고양이 형제

1주일 뒤 엄마는 조카들과 우리 집에 방문했다. 한 마리인 줄 알았던 고양이가 두 마리라는 두 번째 충격을 안고 말이다. 현실 부정과 고양이에 대한 궁금함을 가득 안고,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집에 방문한 엄마에게 몇 번의 등짝 스매싱을 맞으면서 그래도 조카들과 함께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나마 후련했던 고양이 신고식. 시댁에도 말해야 했지만, 이건 남편이 알아서 잘 할 거라 생각하고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전화를 잘하지 않는 나와 달리 남편은 매일 부모님과 통화하는 편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고양이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답답했지만, 그렇게 한 달쯤 지나자 나도 무뎌졌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가 서울에 올라오셨고, 오랜만에 시누이 집에서 저녁을 먹고 안부를 물으며 시간을 보내던 중, 갑작스러운 남편의 고백이 이어졌다.


"엄마, 나 고양이 키운다."
"오호호~ 거짓말하지 말아~"
자, 이번엔 시누이 등장.
"엄마, 두 마리다."


무슨 호식이 두 마리 치킨도 아니고, 어이가 없었는지 나와 시누이를 번갈아 쳐다보며 '호호' 웃기만 하던 어머님은 핸드폰 속 고양이 사진을 보시고 잠시 정지한 채 "어쩔 끼고~"를 몇 번 외치시며 내 등을 쓰다듬으시더니 아버님한테는 말하지 말라며 다음날 시댁으로 내려가셨다. 그리고 다음날 아버님에게 영상통화과 걸려왔다.


"마, 고양이 어쩔 끼고!!!"
(아니, 어머님... 말하지 말라면서요... 어머님도 저처럼 매를 먼저 맞는 학생이셨군요.)


그 이후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냥 고양이들 보여드리면서 "귀엽죠!"하며 아무것도 모르는척 해맑음 작전만 시전했던 것 같다. 뭐, 지금도 마찬가지. 요즘은 손주 이야기가 나오려고 하면 손주 보여드린다며 고양이들을의 안부를 전하기도 한다. 알아도 모르는 척이 필요할 땐, 이런 때인 것 같다.


결혼기념일이면 고양이들과 가족사진을 찍고 1년 동안 카톡 프사로 설정한다.

인터넷의 '고양이 데려오면 내다 버리겠다던 아버지'처럼 지금 양가 부모님은 고양이를 '어쩔 수 없는 존재' 정도로 여기신다. 어쩌다 보니 고양이를 가장 많이 만나게 된 우리 엄마는 고양이를 조금 좋아하게 됐는데, 이제 내 등짝 대신 고양이 엉덩이를 토닥이게 되었다. 저번에는 침대 속에 숨어있는 고양이가 귀엽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예전이라면, 침대 속 고양이보다 침구에 묻을 털을 더 생각했을 테니까.


가끔 인스타그램을 보면, 우리처럼 가족으로 반려동물을 들인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의 처음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다들 등짝은 안녕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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