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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Jul 28. 2021

하품 했더니"밤에 남편이랑 뭐했냐" 물어보는 동료

결혼 후 만나는 악의 없는 무례함에 대해

JTBC <18 어게인>


인생의 희로애락을 압축적으로 느꼈던 결혼식을 무사히 마치고 결혼한 지 70일 남짓 된 따끈한 신혼부부로서 하루하루를 평화롭고 만족스럽게 살고 있다. 남편과 함께하는 나는 여러 가지로 변한 부분이 있지만, 회사는 남편과 같이 다니는 것이 아니므로 회사에서의 나의 모습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던 결혼식에 대한 생각들이 사라지고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정도가 그날의 최대 이슈이자 고민거리가 된 만큼, 업무 처리 능력과 집중력은 결혼 전보다 오히려 조금 더 향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회사에서의 나를 보는 사람들은 이제 남편의 존재와 나를 떼어놓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 같다. 결혼한 지 고작 70일 밖에 안 되어서 나조차 아직은 남자친구가 아닌 남편의 존재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평소에는 내게 궁금하지 않았던 것들을 쉽게 궁금해 한다. 결혼식 이전까지는 한 번도 나의 아침 식사 여부에 대해 묻지 않던 분들이 “남편 밥은 해주고 나오냐” 또는 “집에서 밥은 해먹고 사느냐"며 물어본다. 신기한 일이다.


JTBC <사생활>


옷차림도 궁금증의 대상이 된다. 평소 나는 통 넓은 원피스에 가벼운 겉옷을 입은 스타일을 추구하는데, 이제까지는 그 옷차림에 어떤 의미도 없었고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았으나 결혼식 이후로는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좋은 소식이 있는 줄 알았어. 품이 넓은 옷을 입어서!” 내가 정말 품이 넉넉한 옷을 갑자기 많이 입었다면 오해를 제공한 내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 하겠으나, 그 옷은 허리선까지는 몸에 붙고 치맛단만 조금 나풀거리는 A라인의 평범한 원피스였다. 심지어는 극히 내밀한 사생활까지 궁금해 하는 분들도 있다. “슬슬 좋은 소식 들릴 때 아니냐”며 나도 아직 세우지 못한 나의 자녀계획을 궁금해 하거나, 전날 조금 늦게 자서 하품이 나온 내게 “어제 밤에 남편이랑 뭐했냐”는 식으로 부부의 침실 스케쥴까지 궁금해 하기도 한다.


물론 여기서 언급된 모든 직장 동료들이 나보다 나이가 최소 10살에서 40살까지 많은, 나와는 다른 세대의 분들이다. 또 유능하고 사려 깊어 직장 내에서 인정받는 분들이자, 나를 실력 있고 성실한 직원으로 생각해 주고 내 결혼식에도 참석해 아낌없이 축하해 준 분들이기도 하다. 요는 내가 결혼 이후에 내 주변 선량한 사람들의 악의 없는 무례함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결혼식이라는 인생의 큰 사건을 해치운 나는 다행스럽게도 멘탈이 꽤 단련되어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적절히 대처해 나가고 있다. “식사는 남편이 호텔조리 전공이라 남편이 다 해요. 잘하는 사람이 하는 거죠”라는 식이다. 물론 선을 넘는 궁금증엔 무례함을 돌려준다. “엥? 저 이제야 결혼한 지 두 달 됐는데요? 빨라도 너무 빠른 거 아닌가요?”라는 식으로. 가끔은 말없이 빤히 응시하기도 한다. 말을 뱉은 쪽이 머뭇거리며 어색해하다 자리를 피할 때까지.


tvN <너는 나의 봄>


뭐 어느 시절에는 이런 질문들이 새 생활을 시작한 신혼부부에 대한 호의이자 관심이었을 수도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도 “그 정도야 그냥 애정 어린 질문이지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구나”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젓는 분도 있을지 모른다. 나도 그분들께 애정이 있고, 그 속에 담긴 호의와 관심을 알기 때문에 ‘이 정도로만’ 예민하게 구는 거다. 근로자로서 결혼 후 배우자가 생겨 달라진 점은 가족 수당을 얼마쯤 더 받는 것밖에 없는데, 그 가족 수당에 무례함마저 감내하라는 의미가 담긴 것은 아니지 않나. 누군가의 식사를 차리고 챙기는 존재나, 아기를 갖고 낳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결혼 전과 똑같이, 성실히 일하는 근로자 1인으로 보이고 싶을 뿐이다. 


어느 날은 무슨 대화를 나누다 갑자기 궁금해져서 남편에게도 물어봤다. 나는 이런 질문을 가끔 받는데, 너는 어떠냐고. 남편은 “그런 질문은 받아본 적 없어. 동료들 대부분이 아직 결혼 전이거나 가족과 떨어져서 따로 살고 있거나 해서 관심사가 아닌 것 같아”라고 답했다. 덧붙여 “결혼하니 좋냐”는 질문은 많이 받는다고 했다. 그렇지, 사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바로 그거다. “결혼하니 어때?” “결혼하니 다르냐?” “결혼하니까 좋아?” 이런 질문이야 얼마든지 답할 수 있다. “달라진 건 크게 없고요, 엄청 행복합니다. 좋은 사람과 결혼한다면 결혼은 엄청 좋은 일인 것 같아요”라고.


혹시라도 갓 결혼한 누군가를 앞에 두고 이런 저런 궁금증이 떠오른다면, 잠시 멈춰 생각해보자. 이 질문이 친근함을 덧씌워 감춘 악의 없는 무례함은 아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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