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한 번쯤 어떤 경로로든 접하는 것이 있다. 바로 ‘예비 배우자에게 꼭 해봐야 하는 질문 리스트’나, ‘결혼 결심 전 확인해 보아야 할 N가지 사항들’과 같은 이름으로 온라인을 떠돌아 다니는 질문 목록이다. 뉴욕타임즈에서 15가지 항목으로 간결하게 정리한 버전에서나 186가지 세세한 사항을 나열한 책에서나 대체로 비슷한 것들을 언급한다.
정리해 보면 현재의 경제 상황, 앞으로 경제 관리 계획, 원하는 주거지의 위치나 형태, 생활 습관과 라이프스타일, 가사 분담, 전반적인 건강 상태와 가족력 여부, 양가 부모 및 가족과의 관계, 애정 표현에 대한 만족도, 육체적인 부부관계, 대화 및 갈등 해결 방식, 종교, 다른 이성에 대한 용인도, 개인적 영역의 필요도 등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꽤 많다.
어떤 것들은 연애 과정에서 경험으로 알게 되거나 일상의 대화에서 파악이 된다. 아니, 애초에 연애 과정에서 앞서 나열한 내용들에 대한 생각이 통하거나 가치관이 잘 맞는 부분이 있어야만 결혼 상대자로 고려하게 된다는 것이 맞겠다.
반면 일부러 말을 꺼내지 않으면 쉽게 알기 어려운데다 대놓고 이야기를 나누기는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다. 덮어 두었던 바로 그것이 결혼 전이든 후든 언젠가 문제를 일으켜 파국의 씨앗이 될 수도 있으니 결혼 전에 충분히 겪어보고, 상의해서 조율하고, 합의해 두는 것이 필수다.
나의 경우 뜨겁던 연애 6개월 때부터 함께 살기로 결정하면서 많은 부분들이 자연히 해결됐다. 일부 공동경제를 꾸려가면서 경제 관념이나 소비 패턴을 파악할 수 있었고, 생활 습관과 가사 분담 등 결혼 초 갈등의 원인이 되는 부분들도 미리 맞춰볼 수 있었다. 크고 작은 다툼이 있었지만,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발전적으로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도 익혔다.
코로나 사태와 맞물려 결혼을 한 차례 미루면서 예상보다 길어진 결혼준비 과정 동안 알게 된 부분도 많다. 특히 ‘결혼 예정인 예비부부’의 자격으로 양가에 더 많이 왕래하면서 각 집안의 서로 다른 문화에 점차 익숙해졌다. 명절 문제나 종교 차이 같은 치명적인 것들도 큰 문제 없이 자리가 잡힌 덕분에, 결혼 이후 크게 다툴 일 없이 평화로운 신혼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치열한 대화와 거듭된 고민에도 불구하고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 있으니, 바로 자녀 계획이다. 결정을 내리지 못해서 일부러 앞서 나열한 목록에서 제외했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결혼을 하면 당연히 한 명 이상 아이를 낳는 것으로 여겼던 과거와 달리, 부부 둘만의 가정을 꾸리거나 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고 사는 경우가 늘었다. 물론 여전히 많은 이들이 아이를 낳고, 부모로서의 길을 선택한다. 미디어 속 사례를 끌어 오지 않더라도, 결혼 전부터 확고하게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 선배 부부도 있고, 위로 아들 둘이 있지만 딸을 원하는 부부의 의지로 셋째를 준비하던 끝에 딸 쌍둥이를 낳아 4남매의 부모가 된 동료도 있다. 나이가 젊은 편이라 가까운 시일 내 임신 계획이 있거나 한 두 살 정도 어린 자녀 한 명을 양육하는 부부가 가장 많기는 하다.
우리 부부는 현재까지는 ‘딩펫족’에 속한다. 맞벌이를 하면서 자녀는 없고, 대형견 한 마리와 함께산다. 지금 생활이 매우 안정적이라 임신과 출산, 육아라는 변수를 감당할 자신이 없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경제적인 여유가 없기도 해서 당분간은 아이를 가질 계획이 없다. 솔직히 이대로 아이를 갖지 않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과 너와 나를 닮은 사랑스러운 아이와 함께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매일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이를테면 양쪽의 힘이 똑같아 제자리에 멈춘 줄다리기 선수들 같은 상태랄까.
연애 시절 결혼하면 마당이 있는 집에서 강아지와 고양이, 그리고 아이까지 다섯이서 살자고 얘기했었는데, 결혼과 강아지, 마당이 있는 집까지는 성공했으나 왜 아이는 실천에 옮기지도 완전히 포기하지도 못하는 걸까. 무사히 임신과 출산을 성공해서 몸도 마음도 건강한 아이를 길러 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성장한 아이에게 충분한 지원을 해줄 수 있을까 라는 현실적인 문제, 아이를 중심으로 재구성될 삶에 만족할 수 있을까라는 답 없는 고민을 하다 보면, 아이가 없는 지금의 평화와 여유가 너무나 달콤하게 느껴진다.
더 큰 문제는 "낳을 거면 둘은 낳아야지, 하나는 외롭고 형제자매가 있어서 좋은 점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배우자의 강경한 태도다. 둘은 도저히 안될 것 같다고 얘기하면, "그럼 지금도 좋아. 아이는 굳이 없어도 돼"라고 또 손바닥 뒤집듯 말이 바뀐다. 결국 도돌이표처럼 끝나지 않는 대화에 지친 결론은 하늘의 뜻에 맡기자는 것. 자연적인 방법으로 아이가 생기지 않더라도 난임 시술을 시도하지는 말자는 것만 간신히 합의에 도달했다.
아이가 없는 부부만의 삶에 익숙해 지기 전에 결론을 내렸어야 했다. 최소한 나의 주관이라도 확실하게 세웠어야 했다. 뼈아프게 후회하지만 어쨌든 계속 고민해 봐야겠다. 혹시 같은 문제를 놓고 고민하다 원만한 합의에 도달한 분들이 있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조언의 한 마디를 남겨주길 바란다. 또 결혼 전 미처 확인하지 못해 고민과 갈등을 만드는 문제가 있다면, 결혼을 준비 중인 누군가를 위해 꼭 귀띔해 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