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기묘하게 느껴졌던 그의 웨딩사진
평온한 나날 아니, 더 나아가선 괴로울 정도로 권태로운 날이 계속 된다. 늘 똑같은 길, 지루한 출근길을 버티게 해주는 힘은 손바닥 안 스마트폰 세상이다. 전날 누구와 함께 놀았는지, 전날 어딜 그렇게 잘 다녀왔는지. 한창 휴가 시즌이라 그런지 지인들의 피드가 간만에 풍성해져 있었다. 사실 남의 일상을 귀담아 보고 들을 정도로 SNS를 오래 하진 않지만, 그 날은 조금 달랐다. 더 이상의 새로운 소식이 없다고 할 정도로 스크롤을 내렸다. 사람들의 수많은 일상과 메시지를 담아낸 정방형 이미지들 속 단 하나 가슴이 쿵 하고 떨어지게 만든 한장.
그랬다. 그의 결혼 소식을 거기서 보고야말았다.
오랜 연애의 끝은 결혼이 아닌 이별이었다
A와 사귀게 된 때는 바야흐로 10년 전이다. 유년시절 친구의 소개로 우린 알게 됐다. 중학교 동창인 B와의 만남. 5년 만에 만나 안부를 묻던 중 자신의 대학동창을 소개해주겠다며 절반의 ‘취기’로 성사됐던 만남은 술기운 만큼이나 알딸딸하게 시작됐다. 그럼에도 참 즐거웠다. 우리가 당시 다니던 학교끼리의 거리는 가까웠다. 버스 몇 정거장이면 닿을 수 있었던 그의 학교. 자주 찾는 단골 식당부터 카페까지, 일주일에 몇 번이고 우리는 자주 만났다. 참 잘 통했고 같이 있으면 편하고 즐거웠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행복했다. 물론 보통의 연인처럼 많이도 싸웠다.
집까지 데려다주지 않고 개찰구에서 헤어지는 게 섭섭했고, 각자 시험기간에는 동네 도서관에서도 얼굴 한번 안보고 공부한 게 서러웠고, 생일날 은근히 바랐던 선물이 아님에 실망해 싸우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운명 공동체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가 군대를 가고 내가 교환학생에 다녀올 때까지 우리는 그 모든 시간을 함께 했으니.
부모님끼리 만난 적은 없었지만, 각자의 부모님은 우리를 유난스럽게도 챙겨주셨었다. 마치 졸업이라도 하면 너희 둘 결혼하는 게 아니냐며, 그래도 상관없으시다며 간접적으로 오가는 말도 들었다. 사소한 다툼이 점점 잦아져 서로에게 상처가 될 즈음이었을 때였다. 우리의 끝은 무엇일까. 아주 처음으로 80먹은 노인이 되었을 때 서로가 곁에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설핏 들기 시작했다.
“이럴 거면 우리 결혼하자.”
나는 그에게 분명 이렇게 말했다. 사실 결혼한다면 이 모든 문제는 해결되리라 믿었다. 결혼이라는 큰 틀 아래, 이 정도 싸움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 당연한 거라고 그리 여겼으니 말이다.
“말이 되는 소릴해. 나 아직 취업도 못 했어.”
헛웃음을 터뜨리며 황당하다는 듯 그는 말했다. 너가 먼저 취업한 게 그렇게 자랑이냐, 나도 곧 취업하면 너가 지금 모은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 금방 다 모은다며 비수를 꽂기 시작했다. 기 죽이려고 말한 게 아닌데 왜 그렇게 뾰족하게 느끼고 있는 걸까. 하지만 그 땐 나도 이성의 끈이 끊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그럼 우리 헤어지자. 난 너 더 이상 못 만나겠어.”
우리는 그렇게 7년을 만났고 허무할 정도로 싱겁게 끝났다.
관계를 둘러싼 또다른 관계들와의 이별
7년 연애의 끝을 돌아봤다. 꽤 많은 인연이 우리 주변을 옭아매고 있었다. 그와 나의 친구들, 혹은 그와 나의 소개로 알게 된 새로운 인연들, 연인들. 하다못해 서로의 부모님 번호까지 알고 있던 우리는 한동안 인연을 끊어내는 데 시간을 많이 썼다. 잠깐 싸운 건데 다시 잘 지내보라는 그의 어머니 연락까지. 그와 헤어진 것일뿐 그의 어머니는 내게 잘못한 게 없다. 하지만 이로 인해 인연을 정리해야만 한다.
어른 연락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걸까봐 고민이 많이 들었지만 결국 난 처음으로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서로가 덩굴처럼 얽혀있는 우리 사이, 심지어 같은 업계에서 근무해야 했기에 얼굴을 마주쳐야만 했던 우리였다. 결국 서양인처럼 ‘쿨’한 사이를 유지하는 걸로 선택했다.
우리는 연인이면서도 친구였던 거야. 조금 멀어진 거야. 이렇게 별다를 것 없는 이성친구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거라며, 서로를 착각 속에 가둬두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별 후 서로의 연인이 생기기 전까지는 가끔 잘못 눌린 전화에도 받아주고, 업계 동료로서 조언도 해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내가 먼저 결혼을 했다. 그는 결혼 전날 축하한다는 짤막한 메세지를 보내왔다. 그 뒤 그는 SNS에서 자취를 감췄고, 나 또한 전화번호를 바꿨다.
다시 알게 된 너의 근황
이제는 정말 안녕
21년 8월 현재. 수 많은 친구들 속 피드에서 내 눈에 띄었던 그의 웨딩사진은 참 기묘하게 느껴졌다. 남들, 아니 나와 별 차이 없는 웨딩 사진이었을 뿐이다. 코로나 시국인지라 하객을 정중히 모시고 싶으나 그럴 수 없어 죄송하다는 말씀과 잘 살겠다는 담담한 글귀. 아주 오랜만에 직접 마주한 그의 일상은 평범했으니까. 그런데도 그가 약혼녀와 웃고 있는 사진을 제3자로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피드를 보고 나니 계정이 눈에 보여 들어가보니 그 후로도 두어장 더 올라와있었다. 비교적 최근에 다시 계정을 열고 활동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최상단 두세장만 보다 말다 했으니 알 턱이 없었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내 계정을 팔로우 하고 있는지도 찾아봤다. 없었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정말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옅은 한숨이 나왔다. 그의 미래에 축복을 진심으로 빌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의 계정을 차단했다.
참 웃기는 일이었다. 인연을 정리하는 일은 눈에서 보이지 않고 그 다음 마음이 멀어지면 다인줄 알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 두 사람은 0과 1 두 숫자로 만들어진 세상 속에서 점선처럼 이어져있었던 것이다.
징했다. 그렇게 과거와 인사하고 결별했다. 끝.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