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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딩해 Sep 17. 2021

결혼 후 첫 명절,
남편은 나보다도 더 부지런했다

명절, 다양해질 때도 됐잖아? 초보 며느리가 보는 시선


온 가족 친지가 모여 선물과 덕담을 나누고, 많은 음식을 만들고, 차례상을 차리고 치우고, 몇 번의 식사를 함께 하고, 사양하는 손에 남은 음식을 부득불 들려 주는 것으로 마무리 되는 명절의 모습. 내게 이런 스테레오 타입 같은 명절의 모습은 어린 시절 외가에서 잠깐 함께 살았던 때 밖에 기억이 없다.


여덟 살쯤 때였나, 고사리 손으로 산적에 이쑤시개를 꿰고, 동그랑땡도 빚고, 동태전에 밀가루와 계란을 입혔다. 그럼에도 어린 손녀가 도와드릴 수 없는 수많은 음식들을 만들어 내느라 명절 내내 할머니는 부엌을 벗어나지 못했고, 모든 친지가 떠난 후에야 고단함을 못 이겨 낮잠을 주무셨던 기억이 선명하다.


<리틀 포레스트>


제주로 이주한 후 명절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먹고 싶은 명절 음식 몇 가지에다 갈비찜이나 한우구이 같은 것을 놓고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는 정도다. 명절 당일엔 외식이 어렵기도 하고 기름 냄새가 좀 나야 명절 같다 해서 기분만 내는 것이고, 앞뒤로 붙은 연휴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장어나 중국음식을 먹고 예쁜 카페나 가서 푹 쉬며 보낸다. 과거에는 엄마에게도 며느리로서의 고충이 많았지만, 어쨌든 나에게 명절은 대체로 친지들과의 왁자한 만남이라기 보다 가족들끼리 보내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나의 명절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가 내심 두려웠다. 명절마다 비행기표를 끊던 아는 언니는 결혼 후 첫 명절에 비행기 안이 아니라 남편의 고향으로 가는 차 안에 있음을 깨닫고, 결혼의 실체를 절실히 느꼈다고 했다. 보다 일반적인 명절을 보내왔더라도, 이제까지 자기 집에서 보고 겪은 명절과 너무나 다른 결혼 후 명절에 충격을 받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명절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부부 간 갈등이 발생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며느라기>나 <82년생 김지영>까지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명절에 어디를 먼저 가서 얼마나 시간을 보내느냐’ ‘차례상과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고 치우는데 필요한 노동을 누가 얼마나 부담하느냐’는 부분에 있어 부부 간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82년생 김지영>


다행히 긴장했던 것에 비해 달라진 명절은 꽤 괜찮았다. 심지어 나름 재미도 있었다. 그렇다고 시가에서 보내는 명절이 이전과 비슷했냐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전혀 다른 명절 문화에 별다른 거부감 없이 적응할 수 있었던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결혼 전 몇 번의 명절을 겪으며 천천히 시가의 분위기를 파악한 것이 도움이 됐다. 처음에는 각자 명절을 보내고 연휴 마지막 날 만나 데이트를 했고, 다음 명절에는 간단한 선물을 들려 보냈다. 결혼을 염두에 두고서는 명절 다음 날 가서 인사를 드렸다. 다음에는 식사까지 같이 했고, 결혼 전 마지막 명절은 명절 전날 가서 음식 거드는 것부터 차례를 치르는 것까지 다 해보았다. 명절 분위기는 어떻고 보통 얼마나 시간을 보내는지, 음식 준비는 어느 정도 하고 가족들의 참여도는 어떤지, 아직 ‘손님’인 나를 어떻게 대해 주는지 등을 천천히 경험하며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특히 외할머니의 어마어마한 차례 음식만 생각하고 있던 내게 시가의 차례상은 간단한 편이어서 별로 부담이 없었다. 더욱이 동그랑땡도 새우튀김도 모두 냉동 제품을 쓰고 나머지 음식도 미리 재료 손질과 전 처리까지 되어 있어서, 내가 하는 건 패티를 뒤집는 스폰지밥처럼 그것들이 두루 기름에 익혀지도록 뒤집는 것 정도다.

다음은 시어머니의 성향이다. 시어머니는 좋든, 싫든 크게 말씀이 없으시다. 사실 시가 식구들이 다 말이 없는 편이라, 애써 화젯거리를 찾아내거나 살갑게 굴려는 감정노동 없이 그냥 편한 대로 해도 가장 사교적이고 다정다감하며 말도 재잘재잘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아들의 배우자가 되었다는 이유로 하루 아침에 과도한 친밀함을 원하지 않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천천히 다가가며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사이랄까. 한 편으로는 드시던 옥수수를 나를 보자마자 반으로 갈라 건네주시고, 맛있는 반찬이 있으면 내 앞으로 슥 밀어주신다. 싫은 말씀 안 하시고 맛있는 거 챙겨 주시니 명절에 함께 지낼 생각을 해도 마음에 불편함이 없다.


<완벽한 타인>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남편도 명절을 치열하게 보낸다는 것이다. 사실 남편은 명절 내내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움직인다. 음식 만들기를 거들면서 큰 상도 꺼내다 닦고, 차례 지낼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제기들을 정리한다. 이 지역 독특한 풍습을 따라 명절 전날 음료수나 식용유처럼 작은 선물들을 친척 집에 돌리기도 한다. 물론 설거지도 한다. 큰집에서는 남자들 중 막내 격이라 차례를 지낼 때 엉덩이 붙일 틈도 없을 정도로 왔다 갔다 하는데, 여기저기서 부르는 것을 보면 안쓰러울 정도다. 


아무리 별로 할 일이 많지 않고 불편하지 않아도 남편이 나를 시어머니 옆에 붙여 두고 본인은 TV만 보고 있으면 얄미워서 뒤통수를 때려주고 싶을 것 같은데, 나보다 더 바지런히 일하니 ‘부당하다’는 감정이 들지 않고 그저 명절 보내느라 고생한 서로를 토닥토닥 해주고 싶은 마음만 남는다.


새로운 명절 루틴이 큰 문제 없이 자리를 잡았으니, 앞으로의 변수도 잘 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언제까지 우리의 명절이 누군가는 일을 하는 모습이어야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조상을 기리고 기억하는 방법이 반드시 살아있는 누군가의 과도한 노동이 필요한 방식이어야만 하는 걸까. 지금은 쪼렙 유부녀이자 며느리지만 훗날 짬이 좀 차면, 가족여행을 기획한다거나 영화 단체 관람을 한다거나, 포트럭 파티처럼 한 가지씩 먹고 싶은 음식을 가지고 모인다거나 하는 식으로 조금은 색다른 명절 문화를 만들고 싶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명절 모습도 이제 좀 더 다양해질 때가 됐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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