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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Sep 15. 2021

내 뱃살에 은근한 경고를 날리기
시작한 남편

남편에게 절대 듣고 싶지 않은 한 마디


본식스냅 원본이 도착했다. 잊을 때쯤 도착한다는데, 생각보다 빨랐다. 앨범에 들어갈 사진을 고르려고 한 장씩 넘겨 보는데, 결혼식장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에서 찍은 사진이 눈에 띄었다. 사진에 담긴 남편의 모습이 너무 멋져서였다. (결혼한 지 반년도 채 안된 신혼임을 양해해 주세요.)


친구들이 찍어 준 사진이나 서브스냅 원본은 실물이랑 비슷해 감흥이 없었는데, 확실히 전문가의 실력에 색감 보정까지 들어가니 느낌이 달랐다. 


<결혼전야>


사실 나는 딱히 외모를 따지지 않는 편이다. 취향도 뚜렷하지 않아 이전 연인들은 공통점이라고는 없이 제각기 개성 있게 생겼고, 주변에서 “너는 외모가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그런데 남편은 소개팅 제의가 들어와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염탐할 때부터 그리고 약속 장소에서 실물을 처음 본 순간부터 “오, 괜찮네” 하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뒤돌아 볼 정도로 훈남이라는 건 아니고, 키 크고 슬림한 남자를 좋아하는 취향을 저격했다는 편이 맞겠다. 외모야 제 눈에 안경인 거니까. 어쨌든 빈말로라도 “남편이 훤칠하게 잘생겼다”거나, “선남선녀다”라는 류의 덕담을 들을 수 있는 남자와 결혼을 했으니 나름 성공한 셈이다.


아무튼 ‘적당히 내 취향으로 생긴’ 남편과 함께 사는 것은 꽤 만족스럽다. 아침마다 사정없이 부은 얼굴과 제멋대로 자란 수염, 까치집을 진 머리카락이 삼위일체를 이룬 모습을 보아도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무쌍에 조그맣고 처진 눈이 본인에게는 콤플렉스인 듯 한데, 그마저 귀엽게 보이니 콩깍지의 위력이 대단하다고 하겠다. 누가 결혼 상대자의 외모 때문에 고민하며 상담 요청을 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중요하다’고 진심 담아 조언을 할 것 같은 정도랄까?


<엑시트>


물론 ‘결혼하면 다 살찌고 늙어서 아줌마, 아저씨가 된다’, ‘그러니 배우자의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늙는 것이야 거스를 수 없다지만, 결혼 후 체중이 늘어나 외모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기는 하다. 


다행히 우리는 요리와 술을 좋아하는 것 치고 둘 다 체중에 별 변화가 없다. 최근 남편이 날이 갈수록 말랑해지는 내 뱃살에 은근한 경고를 날리고 있지만 말이다.


내가 슬림한 체형의 남자가 취향인 것처럼, 남편도 날씬한 쪽을 선호한다. 이제까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도 적당히 날씬한 상태를 유지해왔고 팔다리가 가는 편이라 살이 쪄도 몸통만 가리면 그럭저럭 티가 나지 않았었는데, 남편에게는 뭘 숨길 수가 없으니 차곡차곡 적립해 온 뱃살이 제재를 받을 수준이 된 것이다. 먹는 거야 남편이 훨씬 더 먹는데도, 직장에서 움직임이 많다 보니 여전히 배가 탄탄하다. 반면 나는 내내 앉아서 일하고 운동이라고는 하루에 30분쯤 하는 강아지 산책이 전부니 살이 붙을 수 밖에 없다.


평생의 파트너, 고정적인 애정의 대상이 있다는 생각에 내가 좀 해이해졌나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서운하다. 체중이 확 늘어서 건강이 문제가 될 정도도 아니고, 그저 뱃살이 좀 생겼을 뿐인데 은근슬쩍 동네에 필라테스 학원이 있더라는 이야기를 흘리거나, 안 하던 운동을 같이 하자고 꼬드기니 말이다. 


“왜 나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지 않아?”라고 항변하면, “사랑하니까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 지금부터 노력하자는 거지”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체중이 확 늘기 전에 꾸준히 관리하는 게 더 쉽다”거나, “지금부터 운동을 시작하면 10년, 20년 뒤에도 건강할 수 있다”는 말은 너무 맞는 말이라 반격조차 어렵다.


<판소리 복서>


결혼 후 외모 관리, 특히 체중 관리 문제는 방심하면 걷잡을 수 없고, 개인의 자존감 뿐만 아니라 원만한 결혼생활에도 꽤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임에 틀림 없다. 주변만 봐도 결혼 후 체중이 많이 늘어 팔자에 없던 다이어트를 하느라 고생하는 지인도 있고, 결혼 전 한약과 PT, 필라테스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인생 최저 몸무게’를 찍었는데, 결혼 5개월 만에 ‘인생 최대 몸무게’가 되었다며 한탄하는 지인도 있다. 결혼 후 남편 혹은 아내가 체중이 심각할 정도로 늘어 이혼까지 고민한다는 사례들은 익명의 온라인 상의 이야기라 진위 여부가 불분명하다지만 말이다.


일상이 반복되며 서로에게 익숙해지더라도 어느 순간 문득, 상대를 설레게 할 수 있도록 나의 몸과 마음을 꾸준히 관리하는 것. 그 것 역시 배우자의 의무 중 하나인가 보다. 딱히 내세울 것 없는 나의 외모를 예쁘게 보아 주었으니, 처음 그를 반하게 만든 그 모습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 노력하는 수밖에 없지 싶다. “살 빼!”라는 직설적인 한 마디만큼은 남편에게 절대로 듣고 싶지 않으니까. 반대로 남편 역시 “오, 괜찮네.” 라는 처음 인상을 가능한 오래 느끼게 해줬으면 좋겠다. 나의 뱃살도 귀여워 해달라는 의미 없는 저항은 그만 두고, 필라테스 학원이나 같이 다니자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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