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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Sep 20. 2021

돈은 내가 다 낼테니
전신성형을 권하던 남자친구

너는 나의 트로피 연인

 

바야흐로 개성 전성시대다. 전형적으로 예쁘고 아름답고 멋진 외모에 대한 동경은 여전하다. 하지만 동시에 어느 한편에서는 나만의 ‘개성'을 갖추고 또 가꾸기 위한 저마다의 노력들이 반짝거리기도 한다. 누군가는 동경하는 연예인, 셀럽의 사진을 가지고 성형외과, 미용실, 피부과에 찾아가 ‘이렇게 되고 싶다'라고 말한다. 한편 또 다른 누군가는 남들과 같은 건 죽기보다 싫다는 생각으로 ‘죽기 살기로' 조금이라도 더 특이한 것을 찾아 나선다.


이렇게 스스로 기준을 정해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모습은 참으로 긍정적으로 느껴진다. 어쨌든 ‘의지'라는 걸 가지고 ‘노력’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외모, 외형을 가꾸기 위한 노력의 화살표가 자신을 향한다면 참 좋은 일이지만, 자칫 화살표의 방향이 타인을 향하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그런 행위를 마냥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요즘 ‘트로피 연인'이라는 단어를 자주 들었다. 연애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라던지 관계에 대해 말하는 심리학 책, 그리고 실제 주변의 사례까지. 여기저기에서 ‘트로피 연인'이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 상황들을 많이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단어인 '트로피 연인'. 자신이 만나고 있는 연인의 외모, 학벌, 직업, 경제적 능력 등이 곧 자신의 능력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여 연인을 자신의 트로피처럼 여기는 것을 말한다. 원래는 ‘트로피 와이프'라는 단어로 쓰였지만, 근래에 들어서 인종, 나이, 성별과 관계없이 쓰이게 됨으로써 ‘트로피 XX’으로 변용되어 쓰이고 있다. 그 기원이 어떻게 되고, 본래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와 관계없이 어쨌든 지금에 와서 ‘트로피 연인'이라는 단어는 그다지 좋지 못한 뜻으로 쓰이고 있음은 분명하다. 결국에는 남녀 불문하고 자신의 연인을 하나의 수단 혹은 도구로 이용해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단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인의 지인은 자신의 연인에게 “일단 쌍커풀이랑 코 먼저 해보는 게 어때? 이참에 자기가 콤플렉스라고 했던 허벅지랑 팔뚝 지방흡입까지 했으면 하는데… 한꺼번에 여러 군데 손대는 게 안 내키면 일단 얼굴만이라도 조금씩 해보자”라고 하며 돈은 자신이 다 낼 테니 너는 수술대에 누워서 눈만 감았다가 뜨면 된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와 주변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분명 무언가 상식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 일이었음을 우리 모두 잘 알았기에 오히려 더 입을 떼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100억 받고 3년간 대신 감옥에 가기 vs 아무것도 안 하고 1억 받기'처럼 극단적인 밸런스 게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닥전'을 외치는 사회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연인이 자기 마음대로 조립할 수 있는 레고나 이쪽 팔 떼어다가 저쪽 다리에 마구잡이로 가져다 붙일 수 있는 장난감 로봇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휘두를 수 있는 건가? 연인의 외모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헤어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되는 거 아닌가? 자신의 외모나 여러 가지 능력적인 면에서는 자신의 이상형에 부합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으니,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자신의 마음에 쏙 들게 바꾸겠다는 건가?


이야기가 끝나고 우리들 사이에는 별의별 생각과 추측이 난무했다. 어쨌거나 이런 제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정확한 사유는 당사자만이 아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허공을 떠도는 말들을 헤치고 나아가 우리가 도달한 결론은 “나 같으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나한테 이런 얘기 꺼낸 순간에 바로 헤어지자고 한다"였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해도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곧바로 “감히 나한테 그따위 말을 지껄여? 헤어져! 헤어지고 네 맘에 드는 사람 만나면 되겠네! 꺼져!”라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지만 말이다. 함께 해온 시간과 추억을 곱씹으며 헤어짐을 고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이번 기회를 붙잡아서 환골탈태해볼까 하고 생각하다가도 또다시 내가 전신성형을 해야 할 만큼 그렇게 못났나 하는 생각에 좌절하는 시간들이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듯 괴로운 시간을 거치고 나면 어찌 되었든 자신만의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인의 지인 사례에서처럼 극단적으로 수술까지 권하지는 않더라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연인이나 주변인들에게 “자기는 살만 조금 더 빼면 정말 멋있을 텐데!” 혹은 “머리를 좀 길러보는 게 어때? 웨이브 펌 같은 것도 해서 좀 여성스럽게 말이야.” 같은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때가 있다. 내 딴에는 상대방을 더 멋있게, 더 예쁘게, 더 세련되게 만들어주고 싶은 의도를 가지고 하는 말이라지만, 이런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은연중에 나의 취향을 상대에게 강요하고 상대의 개성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무시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면 상대를 내 입맛에 맞게 바꾸려 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멋지고 아름다운 트로피 정도로 생각하지 말고, 서로에게 변함없는 그 모습 그대로 항상 곁에 있어주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고 이에 만족하자. 그리고 기억하자. 지금의 연인을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그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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