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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Sep 27. 2021

만약 영원히 살게 된다면,
영원한 사랑도 가능할까?

영원한 삶을 사는 뱀파이어의 인간적인 사랑이야기


인간은 영원히 살지 않는다. 그래서 고대 문명인들은 현세에서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세를 위한 준비에 일생을 바쳤다. 천하를 통일한 황제도 불로장생의 명약을 찾아나선 이들을 기다리다가 결국 죽음의 그림자를 피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로장생, 불로불사를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은 역사 속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생을 살다 간 많은 사람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쉬이 영원히 사는 것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우리가 영생할 수 있게 된다면, 절대로 죽지 않고 상처 입어도 쉽게 회복될 수 있고 늙지도 아프지도 않게 된다면 어떨까?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에도 사랑은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사랑하는 연인을 계속해서, 언제까지나 내 옆에 두고 변함없이 사랑해줄 수 있을까? 영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에서는 우리의 질문에 대해 나름대로의 답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완벽하고 완전한 답은 아니지만.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스틸컷


이름도 태초의 인간과 같은 뱀파이어 커플 ‘아담'과 ‘이브'는 수 세기에 걸쳐 사랑을 이어오고 있다. 미국과 모로코에 각기 떨어져 살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서로를 그리워하고 안고 싶어 한다. 몇 백 년이 흐르는 동안 서로에게 염증을 느끼고 새로운 사랑을 향해 눈을 돌릴 법도 하지만, 두 사람은 한눈 따위 팔지 않고 처음 약속했던 것처럼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 


가족도 떨어져 살면 애틋함이 더욱 샘솟듯, 부부도 마찬가지인 걸까. 지구 반대편에 각자의 터전을 마련해 따로 떨어져 살다가도 이들은 한 번씩 서로에게 무슨 일이 생기거나 문득 보고싶어질 때면 상대방을 향해 긴 여행을 떠난다. 한 마디로 뱀파이어계의 ‘롱디(long-distance) 커플'이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떨어져 지낸 시간 만큼 축적된 사랑을 서로에게 퍼붓는다. 하지만 애틋함도 잠시, 시간이 지나 다시 서로의 향취에 익숙해지는 순간, 두 사람의 낭만 수치도 조금씩 낮아지고 옅어진다. 마치 가족들이 오랜만에 만났을 때 ‘아 역시 이게 가족이지! 오랜만이다, 이런 느낌'이라고 생각하다가도 곧잘 투닥거리고 싸우는 것처럼.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에서도 마찬가지다. 뱀파이어들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이지만 정말 현실적이게도, 너무나 ‘인간적인' 일들이 이 다정한 커플 사이를 파고든다. 아내 이브의 여동생 ‘에바'의 등장과 함께 예민함의 폭발과 사소한 말다툼이 반복된다. 그래도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친동생을 옹호할 수밖에 없는 이브와 아무리 피를 나눈 가족이어도 싫은 건 싫은 거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아담의 모습이란. 아, 이 얼마나 현실적인 모습인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는 뱀파이어를 주인공으로 하는 판타지 로맨스 영화에서 형부와 처제의 갈등, 그리고 그 사이에 끼인 아내의 고군분투라니. 눈이 멀 것처럼 아름답기 짝이 없는 뱀파이어와 인간의 로맨스를 다룬 대표적인 작품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면서도 가족 간의 갈등을 비롯한 뒷이야기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가 제시하는 새로운 관점이 매우 흥미진진하게 다가왔다.


영화가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아담과 이브 커플은 제멋대로에 말썽꾸러기인 여동생 에바 탓에 자신들의 처지를 들킬 뻔 하기도 하고, 영원히 지속되는 삶에 환멸을 느끼고 자살을 계획하는 남편 아담 때문에 사이가 틀어질 뻔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이브 커플은 위태롭지만 단단하게 두 사람의 사랑을 지켜나가고자 노력한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스틸컷


노력. “사랑이 어떻게 노력으로 가능하니?”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나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누구를 선택하느냐의 문제를 두고 전자를 택하는 사람들이 흔히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할 때 자주 써먹는 말이다. 그들은 감정이 어떻게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노력'으로 가능하냐고 말하지만, 글쎄.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물론 처음에 아주 자연스럽게 어떠한 감정이 생겨나는 것은 노력으로 불가할 수 있지만, 관계와 만남이 지속된 이후에는 ‘노력' 또한 감정과 함께 가는 동반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력 없이 감정만으로는 유효기간이 짧은 사랑을 지속할 수 없고, 그렇다고 감정이 생겨나지 않음에도 꾸역꾸역 노력으로만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는 없다. 지속 가능한 사랑을 위해서는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로와 그에 따르는 노력이 동시에 필요하다. 그리고 이건 아마도 영원을 사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이리라.


살면서 지금까지 실제로 뱀파이어를 만나본 적도 없고, 영원한 사랑을 했다는 사람을 만나본 적도 없다. 그저 영원한 사랑에 가까운, 20대에 만나 결혼한 부부가 7~80년 넘게 살다가 한날한시에 손을 잡고 죽었다는 이야기 정도는 들어본 적 있다. 아마 한시적인 시간을 살다 가는 우리에게는 이 정도가 영원한 사랑에 속하지 않을까? 


누군가를 영원히,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한 평생 한 사람만을 사랑하기도 어려운데,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삶을 한 사람만을 사랑하며 보내야 한다니. 감히 엄두가 안 나는 일이다. 하지만 아담과 이브처럼 사랑한다면 ‘영원히 너만을 사랑하는 일'도 어쩌면 실현 가능한, 멋진 일이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해도, 내일 곧 죽는다고 해도 영원히 살 것처럼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축축하게 가을비가 내리는 날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를 보길 권한다.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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