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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Oct 01. 2021

결혼식을 막 끝낸 사람들만
느낄 수 있다는 '현자타임'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결혼의 잔혹한 진실


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입은 웨딩 사진을 SNS에 올리며, 결혼 소식을 알리는 사람들이 많다. 사진 속 두 사람은 걱정이나 근심따위는 없어보이고, 누구보다 행복하고 아름다워보인다. 두 사람의 앞날은 로맨스 영화처럼 늘 꽃길만 펼쳐질 것만 같다. 


tvN <이번생은 처음이라> 스틸컷


그렇게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가 끝까지 드라마같으면 좋으련만, 결혼식이 끝난 직후 일명 ‘현자타임'(이하 현타; 흥분 따위가 사그라들고 허무함이 몰려오는 시간)을 경험했다는 주변인들이 많다. 공들인 화장에 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입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신부신랑을 연기한 직후 바로 이어지는 것은 예식장 식수(밥 먹은 사람) 및 축의금 계산이다. 돈이 얼마가 들어오고 나갔는지, 특히 부모님이 그동안 뿌린 축의금이 얼마나 되돌아왔는 지를 계산기 두드려가며 정산하는 모습을 신랄하게 목격할 수 있다. 


예복을 대여한 사람이라면, 이보다 더한 현타를 경험할 수 있다. 결혼식을 도와주시는 일명 ‘이모님'의 미션은 식이 끝난 직후 의상을 수거하는 일까지다. 그 분들은 식이 끝나는 직후 사례금을 받고, 의상을 바로 걷어간다. 이 때문에 메이크업샵으로 갈 때 입었던 트레이닝복으로 그대로 다시 바꿔입고, 하객 친구들과 함께 결혼식장에서 퇴근(?)하는 부부도 솔찬히 많이 봤다. 헤어와 화장은 멋들어진 그대로 인데, 옷만 속세의 것으로 바꿔입은 모습이다. 고작 30분의 식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털어넣은 후, 어색한 몰골로 귀가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JTBC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 스틸컷


결혼식이 끝나고 대충 차에 몸을 구겨넣고서는 꾸역꾸역 집으로 돌아오니, 머리를 고정하기 위해 꽂은 실핀이 얼마나 많았는 지 셀 수도 없었다는 한 친구의 후기가 인상적이었다. 화장을 너무 짙게해서 2~3번 세안해도 지워지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러한 ‘현타’를 없애기 위해 다른 한 친구는 드라마의 어느 씬 처럼 식장에서 바로 공항으로 떠났고, 그 길로 신혼여행에 올랐다. 목적지는 로맨틱의 끝판왕이자 신혼여행의 성지인 몰디브. 불행히도 친구는 그 신혼여행을 자기 인생에서 가장 최악의 여행으로 남았다고 전했는데, 이유는 결혼식이 너무 긴장되고 고되었던 데다가 바로 여행길에 오른 탓에 그만 몸살에 걸려버렸기 때문이다. 몰디브의 아름다운 리조트에서 친구는 제대로 즐기지도 못한 채 내내 아팠고, 살이 3kg이나 빠져서 돌아왔다.


일룸


결혼식 이후 신혼여행까지 다녀오면 정말 현실만 남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다른 집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오던 타인과 같은 공간을 쉐어하고, 한솥밥을 먹고, 침대를 나눠써야 한다. 한 친구는 3년을 연애하고 결혼했는데, 남편의 발 뒤꿈치에 각질이 그렇게 두꺼운 지 처음 알았다면서 고통스럽다는 후기를 조용히 전했다. 심지어 그는 발 뒤꿈치의 각질을 무의식 중에 떼어내는 버릇이 있었는데, 티비를 보며 앉은 자리의 바닥에는 늘 각질이 수북했다. 제발 각질을 떼어내지 말아 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했지만 무의식에서 나오는 행동이라 고쳐지지 않는다고 했다. 또 다른 한 친구는 열애 끝에 초고속으로 결혼에 골인했는데, 신행을 다녀온 즉시 달라진 남편의 태도에 분노를 금치 못했다. 입 안의 혀처럼 굴던 행동들은 다 어디가고, 예민함의 끝판왕만 남았다. 그는 퇴근 후에는 무조건 조용히 쉬어야 한다며 저녁 9시 이후에는 불도 다 못 키게 했고, TV 소리도 시끄럽다며 눈치를 줬다. 연애 때는 그의 생활 방식이 이렇게 특이(?)한 지 몰랐다는 그녀의 말이 씁쓸함을 남겼다.


흥미로운 포인트는 이 모든 현타를 이겨낼 수 있는 건 바로 ‘사랑’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화려한 결혼식 후 집으로 돌아와 목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남편과 끓여 먹은 라면 한 개가 그렇게 맛나고 좋았다는 친구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큰 일을 치르고 돌아와 오는 현타에 몸부림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동지애가 더해져 진짜 가족같고 좋았다는 것이다. 결혼은 리얼한 현실이다. 화장실에 남은 잔여 냄새도, 아침에 으레히 풍기는 입냄새도 이겨낼 수 있는 건 사랑 밖에 없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현실판 지옥인 이유다. 결혼 적령기가 지났다며, 대충 조건 맞춰 결혼하라는 조언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가는 쉽게 후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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