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에 대한 속설, 정말일까?
결혼 후 집에서 요리를 많이 하게 되어서 장을 자주 본다. 제철 식재료 위주로 바로 먹을 찬거리를 사고, 조미료나 라면, 냉동식품 같은 것들도 떨어지지 않게 챙긴다. 짭짤한 과자류를 좋아해서 간혹 한 봉지 담기도 하는데, 그 날은 어쩐 일인지 카트에 과자가 미리 담겨 있었다. 꽈배기 모양에 꿀을 발라 달콤한 맛이 나는 과자였다.
“과자 자기가 담은 거야?”
혹시 다른 사람이 카트를 착각해 담은 것인가 싶어 물었는데, 돌아오는 답은 ‘제일 좋아하는 과자’란다. 어라, 이런 아저씨 같은 취향이 있었나 싶다가 갑자기 마음이 뭉클하다. ‘우리 아빠도 은은하게 달달한 맛이 나는 과자를 아주 좋아했는데, 그 중에서도 이 꽈배기 과자를 많이 드셨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남편은 참 아빠를 많이 닮았다. 식성은 말할 것도 없다. 남편 또래에 양갱을 즐겨 먹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텐데, 양갱을 사다 찬장에 넣어 놓고 입이 심심할 때마다 한 개씩 꺼내 먹는 모습이 아빠랑 너무 비슷해서 놀란 적도 있다. 해산물이나 고기는 가리지 않고 맛있게 잘 먹지만, 별로 좋아하지 않는 패스트푸드는 식사 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렇다.
천성이 부지런해서 쉬는 날에도 집을 두루 보면서 손볼 곳을 찾는 것이나, 손재주가 좋아 어지간한 건 직접 고치거나 만들면서 즐거워하는 것도 닮은 점이다. 많은 남자들이 그렇기는 하지만 낚시를 좋아하고, 저녁을 먹을 때 반주로 한 잔을 곁들이는 습관이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단독주택을 선호해서 언젠가 내 집을 짓고 싶어 하는 것도 비슷하다.
외관상으로야 키가 크고 마른 편이라는 것 말고는 비슷한 점이 별로 없다. 기억하는 아빠의 얼굴도 남편과 전혀 비슷하지 않다. 당연히 성격도 완전히 똑같은 건 아니다. 그저 사람의 성향이랄까, 취향이랄까 그런 것들이 놀랍게 비슷한 점이 있다. 여자는 자신의 아버지와 비슷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는데, 그런 속설이 맞아 떨어지는 것일까 싶다.
호기심이 발동해 인터넷을 뒤져 보니 정말로 사람은 부모와 닮은 이성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온다.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 부모고, 그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들이 각인되어 부모의 특성과 비슷한 사람을 찾는다는 설명이다.
반대로 만약 어린 시절이 행복하지 않았다면, 부정적인 각인이 남아 오히려 부모와 비슷한 이성을 무의식 중에 피하게 된다고 한다. 이 연구 결과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나름 어느 정도는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비슷하게 알려진 속설 중 하나인 “딸은 엄마 팔자를 따라간다”는 말도 근거가 있을까? 왜 그런 말이 생겨난 건지 원인을 엄마와 딸의 관계 측면에서 분석한 글들은 많지만, ‘팔자’라는 것 자체가 모호한 개념이기도 해서 반드시 그렇게 된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내 좋을대로 해석하는 것 같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 엄마는 아빠와 불 같은 연애를 하고 결혼해서 아들, 딸 낳아 행복하게 살았지만, 안타깝게도 오래오래 백년해로는 못했기 때문이다. 아빠가 젊다면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하늘로 가신 것이다.
남편이 아빠와 닮아 보일 때나, 아빠와 비슷한 점을 새롭게 찾아낼 때마다 잠깐 멈칫하게 되는 이유다. 물론 다음 순간 바로, 아빠와 남편이 다른 사람인 것처럼 엄마와 나도 아주 다른 사람이고 다른 삶을 살아왔으니 내가 우려하는 그런 일은 당연히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괜한 걱정을 사서 하면서 우울해 하는 것보다, 엄마가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아 나도 좋은 배우자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려 살게 됐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사랑하는 사람들 간의 비슷한 모습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 누구에게나 으레 한 두가지쯤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 법이니까. 그렇게 찾아낸 공통점들을 통해 이제는 많이 흐려진 아빠에 대한 기억을 잠시나마 추억해볼 수 있다는 것도 좋다.
생각이 삶을 만들어 나가는 것인 만큼, 긍정적인 것만 생각하려고 노력하면 긍정적인 미래가 열릴 것이다. 함께 즐기는 취미처럼 되어버린 저녁 반주는 그래도 좀 줄이고, 운동을 함께 시작하는 걸로 그 ‘팔자’라는 것을 힘차게 거슬러 가보려 한다. 건강검진도 꼬박꼬박 받게 하고. 어쨌든 유비무환이니까.
이런 바보 같은 걱정을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긴 하지만, 혹시라도 아빠와 비슷한 배우자를 만나게 된다거나, 엄마 팔자를 따라가게 된다거나 하는 말 때문에 걱정하고 있다면 그런 말들이 내 생각과 삶을 점령하게 두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나는 부모의 삶을 대신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나의 선택은 부모의 것과는 다른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 특히 결혼이라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 앞에서 속설인듯 아닌듯 세상에 떠도는 말 때문에 판단력을 잃는 일은 부디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