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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Oct 27. 2021

동성을 좋아했던 사실을
현재 연인에게 털어놓아야 할까?

잊고 있던 비밀, 이야기 해야 할까?

사랑과 우정 사이 어딘가


지금으로부터 약 10년도 더 전이다. 우울과 어둠으로 엉켜버린 A의 학창 시절은 앞으로 나아가는 데 아무런 원동력이 되어주지 못했다. 겨우 정신을 붙잡고 나아간 대학에선 한동안은 새로운 누군가와 인연을 만들어가는 것도 조심스러웠고 더뎠다. 그의 이야기를 진심 어린 마음으로 들어줄 친구가 필요하지도 않았고, 용기 내어 털어놓는 이야기가 결국 다른 사람들의 입을 타고 굽이굽이 다시 내 귀로 돌아와 외톨이가 되던 시절. 그저 본인 스스로만 믿자며 다독이던 때였다.


그럼에도 생겨난 인연은 있었다. 교양 강의에서 우연히 만나 옆자리 친구로 시작한 B와의 작은 인연은 어느덧 그 시절 A의 인생 한가운데를 차지할 정도로 커졌다. 둘은 오전 일찍 만나 카페의 문이 닫힐 때까지 함께 했다. A는 B를 통해 조금씩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고 또 다른 사람, 모임을 가져가며 상처와 아픔을 치유했다. 재미로 본 점괘에선 그 둘을 전생에 더없이 귀한 인연이라고 칭했다. 


"웃기는 얘기지만, 우리 정말 부부 아니었을까? 정말 귀인이었던 것 같아."
A와 B는 깔깔대며 웃었다.


JTBC <멜로가 체질> 스틸컷


어느 날부터 B에 대한 A의 마음이 조금씩 달라졌다. 흔히 말하는 친구 이상의 기분이 들기 시작했고 A는 겁이 났다.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감정이었기에 혼란스러웠다. 여태껏 누군가를 오래 사랑하고 의지하고, 좋아해 본 적이 없어 더욱 그랬다. 우정과 사랑 그 중간 지점 어딘가에서 A는 B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A의 행동을 눈치챘던 건 다름 아닌 모임 안의 C였다. B와는 대학 동기로, 그들 모두 B를 중심으로 우정을 줄다리기하는 보통의 친구들이었다.


“너 혹시 B 좋아해? 좋아한다고 해도, 그게 뭐 문제인가. 걱정 마. 내 앞에선 말해도 돼.”


C는 너의 마음을 잘 안다며 A를 격려했다. 어쩌면 인생에 한 번뿐인 첫사랑일 수도 있지 않느냐며 둘의 연애(?)를 응원하기도 했다. A는 그래도 되는 걸까, 여전히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졌지만 결국 그 마음은 쉽게 접혔다. B가 연애를 시작한 것이다. 친구로서 조금 섭섭했지만 그것도 잠시, B의 연애를 응원했다. A 또한 알게 됐다. B를 정말 친구로 아끼고 사랑했다는 것을 말이다. 한때의 감정으로 치부하며 그렇게 마음을 정리했다.


JTBC <런 온> 스틸컷


내가 동성애자라고?


이후 10년의 세월 동안 A의 삶도 조금씩 안정됐다. 해외도 다녀오고 연애도 하고, 남들처럼 취업도 하는 등 보통의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지금의 연인 D를 만났다. 따뜻하고 자상하고 함께 있다 보면 자연스레 미래를 기대해 볼 수 있을 만한 사람. 자신과는 다르게 활발하고 쾌활한 타입인 그가 좋았다. 결혼을 생각하며 두 사람은 굳건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어느날 A는 D의 회사 친구들을 소개받는 자리에서 10년 전 친구 C를 만났다. 세상 참 좋기라도 하지. 화장실에서 반갑게 만나 안부를 주고받았는데, C는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스타일이 바뀌어서 못 알아봤어. 반갑다. 그나저나, 난 너 동성애자인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소리지? 되려 반문하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보는 C를 보며 A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스틸컷


비밀의 범위와 관계의 끝


C의 말 한 마디로 온몸의 뼈마디가 쑤시는 것 같았던 A는 그날 잠에 들 수 없었다. 말 줄임표에서 느껴지는 자신을 평가하는 듯한 분위기가 신경쓰였다. 어린 시절 어설프고 미묘한 감정을 친구에게 털어놓았던 것이 실수였을까. C가 괜한 말을 하기 전에 D에게 말을 해야 되나 막막했다. 어딘가 억울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앞으로 C와는 얼굴 한 번 안 볼 사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과의 불편한 공존은 1%라도 자신이 없었다. 문득, D에게 이 이야기를 전할지 말지 고민하는 A의 마음속에 의문이 들었다. 이 정도로 우리 사이에 균열이 갈 거라 생각하는 내가 너무 얄팍한 것 같다고. 그럼에도 계속 거슬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비밀을 말했을 때 어떠한 파장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으니까.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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