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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Nov 26. 2021

'설거지론'으로 보는
사랑 없는 결혼 생활

당신의 결혼 생활은 행복한가요?


최근 며칠간 설거지론이 뜨거운 감자처럼 오르내렸다. 무엇인고 살펴보니, 일명 ‘설거지남’은 공부나 취업 준비를 우선시하느라 연애 경험이 적은 공대 출신의 대기업 혹은 전문직 남성이어야 하는듯 하다. 가사를 전담하며 남성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려는 여성과 결혼 했다는 것이 또 다른 조건이다.

남성이 두 사람 이상의 몫을 벌어 오며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상황인데, 경제권은 모두 여성에게 있어 남성은 아주 적은 ‘용돈’만 쓸 수 있고, 여성이 가사를 소홀히 해서 설거지를 비롯한 가사노동마저 남성의 몫이 된다는 게 설거지론이다. 여성의 외모가 비교적 출중해서 그렇지 않은 남성에 비해 연애 경험이 많았다거나, 배우자를 전혀 사랑하지 않아서 스킨십을 피한다는 부수적인 조건이 있기도 하고, 혹은 이것이 핵심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설거지론이 온라인을 강타하자 자아성찰의 글이 뒤를 이었다. 월 700만 원을 번다는 전문직 남성은 ‘현자 타임’이 왔다며 자신의 결혼을 회고했다. 자신은 한 달 용돈 40만 원을 받고 2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며 12시간씩 일하는데, 아내는 명품 가방이 늘어가고 골프를 시작했단다. 결혼 생활 7년 동안 모은 돈이 얼마냐 물으니 8천만 원 밖에 되지 않는다는 아내의 말에 이혼을 고려하고 있다는 사연이었다.


KBS2 <쌈 마이웨이> 스틸컷


진위 여부를 알 수는 없지만 사실이라면 마음 아픈 일다. 가정에 소홀하고, 경제권을 틀어쥐고 사치를 일삼으면서, 남편까지 무시하는 여자, 악처의 조건을 모두 모아 놓은 것 같은 배우자라니. 물론 주변에서 본 적은 없지만, 이혼전문 변호사의 홍보용 게시물에서 비슷한 케이스를 본 적 있으니 실존 인물도 없지 않을 것이다.

사랑 없는 결혼이라는 걸 깨닫고 오는 회의, 배우자에게 기대할 수 있는 애정과 돌봄을 받지 못한다는 소외감, 내가 가진 경제력을 배우자만 누린다는 박탈감 등등이 쌓여 ‘설거지론’으로 터져 나온 것 같다. 표현만 달리했다 뿐이지 면면을 살펴보면 이전부터 계속 이야기되어왔던 ‘취집’이라는 개념과 큰 맥락에서 차이가 없긴 하다. 이전에는 취집한, 혹은 하려는 여성들을 비난해 왔다면, 이번에는 취집의 ‘대상이 된 남성’을 설거지남, 퐁퐁단이라며 조롱조의 별명을 붙인 것이다.


하지만 이제껏 우리 사회가 ‘10분 더 공부하면 아내 얼굴이 바뀐다’ ‘남자는 능력, 여자는 외모’ 따위의 말들로 남성을 독려해왔다. 일부 남성들이 그에 열심히 호응해서 여성과 인간 대 인간으로 교류하고 관계를 맺어나가려 하기보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경제력을 얻으면 여성과의 관계는 마치 트로피처럼 자연히 따라올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는가.


이런 인식의 연장에서 배우자를 찾을 때 자신의 장점으로 다른 어느 것보다 경제력을 내세웠다면, 경제력을 제1 조건으로 원하는 여성과 맺어지게 될 확률이 높다. 그렇게 함께하게 된 배우자가 가정 내 역할을 분담해 맡으면서 서로 존중하고 사랑과 애정을 주고받으려는, 좋은 배우자 감이었다면 다행이지만, 내세운 경제력만 골라 취하고픈 나쁜 배우자 감이었다면 불행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KBS2 <고백 부부> 스틸컷


애초에 사랑과 존중을 충실히 주고받던 관계에서 부부가 되었다면 가정을 어떻게 꾸려 갈지 논의하며 함께 만들어 나갈 테니, 설거지론에서 말하는 사랑 없는 결혼에 따른 불행한 문제들은 발생할 가능성 자체가 희박하다. 서로의 노고와 희생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서로 격려하고 배려하면서 험난한 세상을 함께 헤쳐나가는 것, 혹 조금 아쉬운 점이 있어 다툼이 생기더라도 믿음과 존중으로 조율하고 맞춰나가는 것이 부부니까 말이다.


이런 이야기가 이상적인 판타지같이 들리고,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로 눈을 돌려보면 평범하게 결혼한 대다수의 부부들은 비슷비슷하게 만나서 소소하게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소소하게 지지고 볶으며 산다.


결혼은 현실이라는 이야기가 주변에 가득해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따뜻하게 사랑할 만한 사람과 결혼한 부부들 말이다. 그런 부부들에게야 기사가 몇 십 개씩 쏟아지는 이런 열띤 이슈도 강 건너 불구경일 뿐이다. 내 배우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혹시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가도, 서운한 것 없게 잘 챙겨야겠다 다짐하고 지나칠 것이다.


혹시 이 난리를 계기로 결혼에 있어 잘못된 선택을 했음을 깨달아 절절히 후회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100세 시대고 인생은 기니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도 분명 있을 것이다. 아직 선택의 기회가 있다면 단단한 애정 관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또 배우자를 신중하게 선택하고 건강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 노력하면 될 일이다. 혹시 그게 너무 어렵거나 번거롭게 느껴진다면 맘 편히 혼자 살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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