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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Dec 01. 2021

탁구 대회와 결혼식이 한자리에?!

역대급이었던 최악의 결혼식


그동안 웬만한 결혼식은 다 경험했다 해도 무방한 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결혼식이 있다. 


SBS <펜트하우스2> 캡쳐


결혼식 당일 아침부터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조금씩 왔다. 메이크업샵에서 곱게 화장을 한 뒤,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비를 동반한 미친 강풍이 불었다. 방금 화장했는데 몇 초 만에 다 망가질 정도로 비가 세차게 내렸다. 거기다 한복 치맛자락이 바람에 나부끼며 뒤집어지고 펼쳐지고 난리가 났는데 얼른 차에 탈 수가 없었다. 하필 폭이 풍성한 한복을 입었던 터라 강풍 때문에 흐트러져서 정리가 안돼 차에 도무지 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치맛자락을 정리하는 동안 비를 계속 맞았던 것은 물론이다.


가까스로 예식장에 도착하자마자 지옥이 펼쳐졌다. 보통 예식장은 특별 주차석이 따로 있는데, 주차요원에게 물어보니 딱 잘라서 없다고 했다. 궂은 날씨에 몰려드는 하객에 주차요원도 힘들었던 것인지 “아무데나 멀리 대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결국 주차를 한 곳이 결혼식장 입구와 멀어서 이때 또 2차로 비를 다 맞을 수 밖에 없었다.


식장에 들어서자 마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도무지 결혼식에 온건지 수영장이나 헬스장에 온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 이 예식장은 시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 건물 안에 있었다. 1층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수영장 등 헬스시설 티켓팅 창구가 크게 있었고, 운동을 마친 사람들이 머리가 젖은 채로 파우치를 들고 왔다갔다 했다.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 사이 한복을 입고 메이크업을 곱게 한 우리들이 웃기고 이상했다.


다양한 복장의 사람들 사이로 어울리지 않게 자꾸 음식이 카트에 실려서 왔다갔다 했다. 피로연장에 음식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는지 1층 어딘가에서 만들어서 자꾸 실어서 옮기는 중이었다. 아비규환 속에서 들고온 짐을 두기 위해 폐백실을 겨우 겨우 찾아냈는데, 정말이지 놀라웠다. 헬스시설의 티켓팅 창구 옆에 폐백실과 탈의실, 그리고 웨딩 사무실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 이렇게 엉망일 수가!


tvN <연애 말고 결혼> 스틸컷


이게 끝이 아니었다. 결혼식장이 있는 3층에 가려는데 그 큰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1개, 그마저도 몇 명밖에 탈 수 없는 작은 것이어서 도무지 탈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불편한 한복을 입고 계단으로 오르락 내리락 다녀야 했다. 자- 이제 결혼식장에 도착했고, 무사히 마치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식장에 도착하자 마자 엄청난 인파가 있는 것에 놀랐다. 예식장 치고는 과하게 많은 사람들이었다. 알고보니 예식장 바로 옆에 대규모 탁구장이 있고, 그날 하필이면 탁구대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었다. 주차 대란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 예식장 바로 앞에서 탁구대회의 열기로 “와아~" 지붕을 뚫는 함성과 공치는 소리가 “똑딱똑딱" 계속 들려왔다. 엄청난 진풍경이었다. 결혼식과 탁구대회라니…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놀라운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날 예식이 하나가 아니었던 것. 바로 앞 예식이 하필이면 하객이 정말 많은 식이었다. 앞전 식이 예정보다 한참 밀린데다가, 다른 손님으로 너무 붐볐고, 하필 앞전 식의 축의금 창구가 늦게 닫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앞 선 예식 때문에 축의금 창구를 열 수 없어서 동선에서 벗어난 저 멀리 구석에 간이 창구를 배정받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손님들은 축의금 창구를 찾느라 애를 먹어야 했고, 오는 손님마다 주차가 너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식이 끝나고 밥을 먹으러 갔는데 식당에서 혼주석이 없다고 했다. 서빙하는 분에게 “혼주석이 어디에요?” 물어보니 “그게 뭐에요?”라고 되물어왔다. 자리가 없어서 일반 손님들 사이 겨우 끼어서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음식의 퀄리티는 내가 먹어본 곳 중에 가장 최악이었다.


tvN <이번생은 처음이라> 스틸컷


식사가 끝나고 예식에 참석한 하객의 식수를 정산하는 데 문제가 또 생겼다. 경상도의 결혼 문화는 식사를 안하고 가는 하객에게 식사비를 돌려주거나, 식권으로 선물을 바꿔갈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식사없이 선물을 바꾸러 간 사람들에게 예식장 직원이 선물이 없다며 안주고, 식권만 수십장 받아간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식장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고 식사비만 챙기게 되는 것이다. 친언니가 직접 목격하고, 다른 지인들까지 이야기하자 문제가 커졌다. 결국 식권을 받아간 직원이 와서 삼자대면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직원은 본인이 식권을 받은 적 없다고 발뺌하기를 시전했다. 모든 진실은 CCTV에 담겨있을 테지만, 좋은 날을 마지막까지 망치기 싫어서 거기까지는 가지 않고 좋게 끝냈다.


모든 상황이 정리되고 나와보니 아직도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그 비를 바라보며 외쳤던 게 생각난다. “이건 역대급이다. 이 결혼식을 넘을 수 있는 건 없을거야.” 그리고 그 말은 현실이 되서 여전히 최악의 결혼식으로 남아있다.

더 믿을 수 없는 건 그 게 내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의 결혼식이라는 거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몇 년전 오늘’을 알려줬는데, 그 환장할 결혼식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고 모든 상황이 어제 일 처럼 다시 생각났다. 다행인 건 동생 부부가 너무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 그래 결혼식이 엉망이면 어떠하리, 두 사람이 잘 살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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