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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Nov 29. 2021

끊어진 인연,
청첩장으로 다시 이어 붙이기

종이 한 장으로 끊어지고 이어지는 인연들에 대한 소회


인생을 살다 보면 인간관계가 정리되는 몇 번의 순간이 온다. 취직, 결혼, 출산, 승진과 같이 좋은 일을 두고 몇 번, 금전적 어려움이나 실직, 병환, 장례 등 힘든 일들을 두고 몇 번. 여러 가지 사건을 맞이하면서 내 곁에 남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으로 나누어지게 된다고들 한다. 2-30대의 경우에는 특히 결혼을 앞두고 인간관계가 정리되는 일이 많다. 기존에 이어지고 있던 인간관계의 틀 안에서 걸러질 사람은 걸러지고 남을 사람은 남는 모양새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결혼식은 단순히 누군가를 초대해서 행복한 순간을 함께 한다는 개념을 넘어서서 금전적인 이해관계도 얽혀있기 때문에 인연을 계속 이어갈 것인지 끊어낼 것인지가 명확해지는 이벤트이기도 하다.


실제로 나도 데면데면하게 알고 지냈던 사람 혹은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청첩장을 받았을 때 참석하지 않고 약소하게 축의만 한 경우가 많다. 상대방을 내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을 예정이고, 그렇기 때문에 낸 축의금을 돌려받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있다. 나도 사람인지라 낸 돈이 아깝긴 하지만 체면치레 했다고 생각하면 그리 비싼 값은 아니라며 합리화하곤 한다. 그런데 얼마 전, 이런 내 생각이 바뀌는 일이 일어났다. 오랫동안 연락 없이 지냈던 친구의 결혼을 앞두고 오히려 끊어졌던 인연이 다시 이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때는 코로나 패닉으로 접어들기 직전의 어느 날. 입춘이 지난 건 한참 전 일이요, 달력상으로도 봄기운이 완연했어야 마땅한데 여전히 추워 옷깃을 여미던 날이었다. 오랜만에 동창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족히 5년 이상은 만나지 못한 것 같아 흘러가버린 날들에 놀라면서도 반가운 마음이 컸다. 고등학교 때 매우 친하게 지냈던 친구였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1년에 한두 번은 꼭 만났었다. 하지만 사회에 진출하면서부터 점차 연락이 뜸해졌고, 어느새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었다.


무심한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아도 생일, 명절이면 항상 먼저 안부를 묻던 친구였다. 그렇기에 나는 왜 그렇게 하지 못했었나 아쉬운 마음에 자책하면서도 그에 앞서 다시 온 연락에 기뻤다. “이번엔 꼭 좀 보자!”라는 말과 함께 내친김에 약속을 잡으려 했을 때 친구가 말했다. “부담스럽지 않으면 J랑 셋이 같이 만나는 건 어때?”



당시 친구의 말에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오랜만에 연락해온 친구 H와 함께 만났으면 한다는 친구 J 그리고 나는 학창 시절 1년 동안 꽤 친하게 지냈다. J와 나는 무려 2년 동안 같은 반이었지만, 대학 진학 후 두 번쯤 친구들 모임에서 얼굴을 본 게 다였다. 그때 이후로 10년 넘게 개인적으로 연락하지 않았다. 싸웠다거나 오해가 쌓여 서서히 멀어지게 된 것은 아니었다. 정말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저 단순하게 추측해보면 사는 동네, 진학한 학교, 관심사 등 모든 게 너무 달라져서 그랬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어쨌든 H의 제안이 왜인지 모르게 부담스러웠지만 수락했고, 우리 셋은 그렇게 11년 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11년 만의 조금은 어색한 만남 후에도 우린 다 같이 2번 정도 더 만났다. 그 사이에 친구들 각자에게 연인이 있다는 사실과 결혼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J로부터는 청첩장까지 받았다. 어렵게 다시 이어진 인연인 만큼 초대해주었음에 고마움을 느꼈다. 기꺼이 결혼식에 참석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축하와 최대한의 축의를 했다. 결혼식이 끝난 후 친구에게 따로 메시지를 보내 정신없는 와중에 할 수 없었던 축하의 말을 전했다.



그저 “와줘서 고마워! 다녀와서 꼭 보자!” 정도의 답장이 올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친구의 메시지에 금방 마음이 뭉클해졌다. 친구는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도 못했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그리고 신혼집으로 들어가면서 예전에 썼던 일기들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그때 우리가 함께 했던 추억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읽으면서 참 좋았다고 했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인연을 이어오며 좋은 날을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사이라서 감사하다고도 했다.


학창 시절 2년 동고동락한 것 외에 떨어져 지내며 연락하지 못한 기간이 더 길었다는 생각에 나는 섣불리 친구를 부담스러워했다. 청첩장을 받았을 때는 ‘내가 이걸 받을 자격이 되나? 이 자리에 가서 축하해줘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에 고민이 깊었다. 하지만 나의 고민이 우습게도 J는 나와 우리의 관계를 여전히 10대 때 철없이 함께 장난치며 놀던 그때의 순수한 마음으로 봐주고 있었다. 친구의 속 깊은 답장에 고마웠던 나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한낱 종이 한 장이다. 그 종이 한 장으로 어떤 인연은 끊어지기도 하고 어떤 인연은 다시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어짐과 끊어짐, 정반대의 갈림길에서 나의 인연이 이어짐의 방향으로 선회할 수 있었음에 감사를 느꼈던 기억으로 오래 남을 것 같다.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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