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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Dec 06. 2021

동거가 죄는 아니잖아?

진실성이 의심되는 통계가 말해주는 불편한 진실


어느 날,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이었다. ‘02’로 시작되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마침 기다리던 전화가 있었기에 ‘혹시?’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 너머에서는 좋은 만남을 주선해드리고 싶다며 간과 쓸개까지 다 내어줄 것처럼 친절한 결혼정보회사 커플 매니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나처럼 자연스럽게 “내년 봄에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요~”라며 둘러댔고, 그분은 굉장히 당황해하면서 축하한다는 말만 남기고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일 년에 서너 번 정도 걸려오는 결혼정보회사로부터의 전화가 있던 그날, 나는 우연히 또 다른 결혼정보회사가 실시한 '미혼남녀 대상 동거 경험 조사'에 관한 내용이 담긴 뉴스를 접했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미혼 남녀를 대상으로 혼전 동거 경험에 관한 조사를 한 결과, 남자는 35.2% 그리고 여자는 17.2%가 동거 경험이 있다는 응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해당 글 아래에는 “그럼 남자끼리 동거한 거야?”라는 댓글이 달려있었다. 분명 ‘혼전 동거'가 주제인 만큼 이성끼리의 동거를 의미하는 것임에도 남성 응답자의 절반도 안 되는 비율의 여성 응답자만이 혼전 동거 경험이 있음을 밝힌 것이었다. 자유롭게 대답하면 되는 것이었기에 진실되게 말할 것을 강요할 수 없고, 강요했다고 하더라도 일일이 조사하지 않는 이상 진실을 알 수는 없다. 한 명의 남성이 여러 번 연애하면서 여러 명의 여성과 동거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제외한다면, 여성이 상대적으로 혼전 동거 사실을 당당하게 밝히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진실을 왜곡하도록 만들었는지. 아마 진실을 말했을 때 자신에게 쏟아질 비난의 눈초리와 날 선 목소리를 때문이었으리라. 진실을 말해야 함을 알지만, 진실이 세상으로 터져나갔을 때의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가능한 한 숨기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우리 사회가 동거에 관하여 이다지도 덮어놓고 부정적인 것일까? 그건 아마도 “순결하지 못하다" “과거가 있다" “한 번 결혼한 거나 마찬가지다” 등 부정적인 말로 동거 경험자들을 비난하기 때문일 것이다.


동거는 그 자체로 불순한 것이 아니다. 직접적인 혈연관계가 없어도 한 거주지 안에 살면서 함께 밥 먹고 이야기 나누면서 웃고 떠들며 사는 게 바로 ‘동거'다. 국어사전에도 ‘부부가 아닌 남녀가 부부 관계를 가지며 한집에서 삶’이라는 뜻 앞에 ‘한집이나 한방에서 같이 삶'이라는 일반적인 뜻이 첫 번째로 먼저 나온다. 우리는 두 번째 뜻에 너무나도 큰 의미를 부여하고 두 번째 뜻으로만 동거를 생각하지만, 그 이전에 일반적인 뜻도 존재함을 자주 잊곤 하는 것이다.



목적과 뜻이 맞으면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살 수도 있다. 물론 이 가운데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이성 간의 동거다. 다른 성별이 함께 거주하는 데서 오는 섹슈얼한 이슈들이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전 동거는 그 자체로 불륜처럼 비난받아야 할 일이 아니다. 법에서 정해놓고 금지한 범법행위도 아니다. 그렇기에 성인인 남녀가 뜻이 맞아 동거하는 데 무조건적으로 나쁘게 볼 일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순결'로 대변되는, 어떤 이에게 ‘흠’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타인을 대하기에 누군가 동거를 고백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거나 걱정 어린 말부터 하고 보는 것이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아픔이 있고 그로 인한 상처가 있다. 상처가 깊어 제대로 아물지 않은 경우에는 지워지지 않는 흉터가 남고 때론 그 상흔으로 오랜 시간 괴로워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품고 살아가는 아픈 기억들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끝내 깨져버린 사랑 때문에 아파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도전에 실패했던 기억으로 가슴 쓰라려 할 수도 있다. 이런 것들처럼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지 못하고 끝내 파한 과거의 동거 경험 또한 누구나 하나 혹은 몇 개쯤 가지고 있는 과거로부터의 상처, 흔적쯤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에 앞서 솔직하게 과거의 동거 사실을 밝히는 사람에게까지 비난의 활시위를 당기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동거를 결정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사랑해서 조금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기에 그런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사랑 앞에 솔직함을 넘어서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향해 조금 더 과감한 발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과거의 그 발자취를 두고 무조건적으로 비난하기보다는 용인할 수 없다면 말없이 떠나거나 떠나보내는 게 어떨까. 모두에게 나의 생각대로 살아달라고 강권할 수 없기에 용납할 수 없다면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때론 더 나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에디터 푸들

앞으로 여러분들께 저의 지나온 연애사를 비롯해 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현실감 있으면서도 공감 가는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여러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하고 연애하며 그 과정에서 결혼을 고민하고 가끔은 비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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