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냉혹함이 평화를 가져온다는 걸 기억하자
저는 제 시부모님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게다가 저는 꽤나 괜찮은 며느리이며 시부모님과 무척이나 원만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 매우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시부모님이 반찬을 너무 많이 보내주신다는 겁니다. 얼마나 자주 보내주시냐고요?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이었지만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보내주십니다. 그것도 엄청 큰 아이스박스예요. 제가 살만 조금 빼면 아마 그 아이스박스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겁니다.
그 음식들이 맛있냐고요? 맛있는 것도 있고 맛없는 것도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죄송합니다. 저도 시부모님이 만들어주신 음식은 다 맛있다고, 정말 입맛에 찰떡이라 음식을 섭취할 때마다 천상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도 그렇게 말함으로써 여러분들에게 제가 좋은 며느리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도 인간입니다! 어떻게 모든 음식이 다 맛있을 수 있을까요? 제 혀는 불행하게도 너무나도 평범하게 설계되었으며, 그 결과 가끔 시부모님이 해주시는 음식도 맛없다고 느낍니다. 그러니 제가 좋은 며느리가 아니라면 저를 탓할 것이 아니라 저를 이렇게 만든 신을 탓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시부모님이 해주시는 음식은 맛있는 게 맛없는 것보다 많습니다. 저와 제 신랑 모두 일을 하기 때문에 시부모님이 보내주신 음식으로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후에 저는 시부모님께 전화를 드리죠.
“어머니, 이번 음식 정말 맛있게 잘 먹었어요. 신랑도 좋아해요. 저는 특히 이번에 보내주신 총각김치가 그렇게 맛있더라고요. 짜파게티가 저절로 생각나는 맛이랄까? 음식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이렇게 매번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덕분에 몸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저는 한치의 거짓 없이 진심으로 시부모님께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음식 만드는 게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일인가요? 시부모님은 그 귀찮음을 사랑으로 극복하고 음식을 보내주시는 겁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저는 가끔씩 결혼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죠. 삶 자체가 문제 투성 이이고 삶은 그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입니다. 문제없는 삶은 없습니다.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삶과 그렇지 못한 삶이 있을 뿐이죠.
저의 문제는 저희 집 냉장고가 시부모님이 보내주시는 음식을 담기에는 너무 작다는 겁니다. 제가 돈이 많아서 커다란 냉장고를 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랬다면 이런 고민도 하지 않았을 텐데요. 분명 돈이 삶의 전부는 아닙니다. 돈은 단지 삶의 99.9% 일뿐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제 냉장고에는 시부모님이 보내주신 음식들이 쌓여있습니다. 저와 제 신랑의 입맛에 맞는 음식은 다 먹었고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들만이 남아있습니다. 이 음식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분들이 분명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나요?
저는 신랑과의 심도 있는 토론 끝에 이 음식들을 그냥 버리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어떻게 시부모님이 정성스레 만들어주신 음식을 버릴 수 있냐고요? 저도 여러분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저 역시 손도 대지 않은 음식들을 쓰레기통에 넣을 때 꽤나 큰 죄책감을 느꼈으니까요.
하지만 이것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시부모님께 음식을 조금 보내달라고 말하라고요? 오, 이런! 시부모님은 저희에게 음식을 해주는 기쁨으로 살아가시는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음식을 조금만 보내달라고 하는 건 정말 가혹한 일이며 그분들이 삶을 이어나가는 이유 중 하나를 없애버리는 겁니다. 실제로 신랑이 음식을 조금만 덜 보내달라고 전화를 드렸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맛이 별로였니?”라는 한숨 섞인 말씀뿐이었습니다.
시부모님은 왜 음식을 만드시는 걸까요? 물론 저희를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시부모님은 음식을 만드는 자기 자신이 좋은 겁니다. 그런 기쁨을 제가 빼앗을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그저 해주시는 음식들 중 맛있는 것은 먹고 입맛에 맞지 않은 것은 버릴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고는 시부모님께 다 맛있게 먹었다고, 정말 감사하다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음식을 많이 해주시라고 전화를 드리는 것뿐입니다. 그게 시부모님을 가장 기쁘게 하는 길입니다.
음식이라는 건 결국 서로의 기쁨을 위한 것이지요? 대한민국처럼 GDP가 높은 나라에서 오로지 영양을 위해 음식을 섭취하지는 않지요? 따라서 저는 시부모님께 기쁨을 드리는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그게 바로 먹을 건 먹고 먹지 않을 건 버리는 겁니다.
제가 잘못하고 있는 걸까요? 그렇다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틀렸다면 행동을 바꿀 생각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고견을 얻고자 이렇게 글을 쓰는 겁니다.
물론 아프리카 아이들에게는 미안합니다. 아프리카를 가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TV를 보면 그곳에 사는 아이들은 굶어 죽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굶어 죽는데 저는 음식이 남아돌아서 버리고 있으니 약간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들 저처럼 살고 계시죠? 식당 가서 음식 남기지 않고 카페에 갈 때도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해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며 동물과 인간이 동등한 존재라 생각해서 육식을 하지 않으시는 분은 없으시죠?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 내가 쓰는 에너지가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지 확인하고 굶주리는 아이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기부를 하며 아프지만 피가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꾸준히 헌혈을 하시는 분은 없으시죠? 넘쳐나는 쓰레기 문제가 걱정되어 음식 배달을 시키지 않고 직접 포장 용기를 매장에 가져가 음식을 포장해오시는 분은 없으시죠?
저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아프리카 아이들을 생각하라는 비판은 없을 거라 생각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세라입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소설과 예술 작품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서, 언젠가 아마존에 상품 검색을 하듯이 스튜디오 크로아상에서 예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는 날이 오도록 만들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연애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낭만적인 연애를 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