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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Dec 15. 2021

통신사 가족할인 받으려고
혼인신고한 친구

친구가 갑자기 멋있게 느껴지는 이유


“오빠 우리 비행기 마일리지 같이 쓸까?”

“그거 가족 아니면 안 되잖아”

“그럼 우리 해버릴까? 결혼?”

“무슨 마일리지 같은 걸로 결혼을 해?”

“마일리지 같은 거라니? 내가 공항 노숙해가면서 모은 금쪽같은 마일리지야. 마일리지를 같이 쓰겠다는 생각이 쉽게 생기는 줄 알아?” 


tvN <이번생은 처음이라> 스틸컷


몇 년 전 종영한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수지’가 남자친구에게 프러포즈 하는 장면이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던 수지가 모난 자신을 많이 사랑해주는 남자친구와 결혼하기로 마음을 돌린 장면이어서 의미 있기도 했지만, ‘비행기 마일리지’라는 현실적인 이유를 댄 것이 재미있어서 오래 기억에 남는다. 무엇보다 '그 정도면 결혼을 할 만한 꽤나 로맨틱한 사유인 것 같다'라고 생각이 든 나 자신이 신기했다. 


생각해 보면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비행기 마일리지 같은 현실적인 이유가 결혼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보다는 더욱 거룩하고 신성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환상이 남아 있었다. 결혼의 가장 큰 이유는 무조건 ‘사랑’이어야 한다고, 그것도 거대한 사랑일 거라고 믿었다. 너무 사랑하는 두 사람이 결혼하여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를 믿었던 기간이 꽤 길었다. 아마 어릴 적부터 미디어에 노출되어온 영향이 가장 클 것이다.


영화 <어쩌다, 결혼> 스틸컷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이가 점차 들어가면서 눈에 들어왔던 건 부모님과 주변인들의 결혼 이유나 결혼생활이 그다지 로맨틱하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자식들을 키우다 살다 보면 자아를 잃고 늙어버린 자신을 거울 속에서 발견한다는 내용의 리얼리티 물이 해피엔딩 동화보다는 훨씬 와닿았다는 것도 고백한다. 


이를테면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는 “뉴욕에서 주거 문제가 해결되면 결혼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는 비싼 주거비 때문에 동거하거나 결혼하는 커플이 많다는 현실을 말한 것이다. 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고 여기에 같이 저축하면 더 빨리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에 결혼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싱글이면서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어 있다면 결혼할 이유는 줄어든다는 뜻도 들어있다.


국내 통계는 오히려 그 반대인데다 더 잔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비자발적으로 연애와 결혼 시장에서 밀려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는데, 지난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소득이 적어서’ 결혼을 안 한다는 사람이 남자가 15%, 여성이 2.6%로 기록됐다.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2025년에 남성의 생애 미혼율을 20%를 넘고, 2035년에는 29.3%로 전망되고 있다. 여성의 경우 12.3%, 19.5%로 예상됐다. 즉 2035년 무렵에는 남성 셋 중 한 명, 여성 다섯 중 한 명이 평생 결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tvN <이번생은 처음이라> 스틸컷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이번 생은 처음이라> 드라마 속에서 마일리지를 같이 쓰자며 제안하는 ‘수지’의 프러포즈가 꽤나 로맨틱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사실, 드라마 속에서 수지는 여자 주인공들 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다. 돈이 필요해서 최악의 회사를 견뎌내왔고, 아픈 어머니 때문에 결혼을 포함한 본인의 행복같은 것을 포기했다. 이후 남자친구를 만나 용기를 얻게 되고, 안정적인 회사를 걷어차고 나와 여성 사업가로 꿈을 이룬다. 마일리지는 수지가 이룬 꿈이고, 빛나는 결과물이기에 그것을 공유하자는 제안은 ‘이보다 사랑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혼이라는 구시대적인 제도를 굳이 선택한 것도 수지의 큰 사랑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혼은 정말이지 복잡 미묘한 것이어서 팍팍한 통계로 규정할 수 없는 무엇이다. 득실만을 따졌을 때는 결혼하지 않을 이유밖에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 일이 어찌 덧셈 뺄셈만 있는가. 뻔히 아는 길이라도 그 길을 굳이 선택하는 것도 인생이다. 이렇게 어려운 시대에 결혼을 하겠다고 나서는 커플들은 정말이지 용기 있는 사람들이고, 많은 응원과 축하를 받을 만하다. 


그러고 보니 “통신사 가족할인을 같이 받으려고 혼인신고하고 왔다”라고 했던 친구가 갑자기 멋있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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