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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Jan 21. 2022

자기? 여보? 오빠?
남편을 어떻게 부르고 계신가요?

남편을 이름으로 불러서 생긴 고부갈등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쉬는데 진동이 울렸다. 시어머님 전화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내게 직접 전화를 하지 않으시는데, 무슨 일일까 싶어 얼른 받았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네, 어머니~”
“응 그래~ 잘 지내지? 김치 담갔는데 다음에 들러서 가져가렴”
“네! ..... 준호씨 스케쥴 확인해서 화요일쯤 찾아 뵐게요. 감사해요~”


반갑게 대답을 해놓고 내가 느끼기에도 티가 나는 침묵이 잠시 흘렀다. 나야 아무 때나 퇴근 후라면 시간이 있지만, 남편은 스케줄 근무를 해서 근무를 확인해야 한다. 일정 맞춰 찾아 뵙겠다는 간단한 말이 선뜻 나오지 않은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시어머니 앞에서 남편을 지칭하는 게 아직도 좀 어색해서다.


남편은 나보다 2살 어리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는 남편을 그냥 이름으로 지칭한다. 예를 들면 ‘준호가 퇴근이 늦어서~’ ‘준호도 괜찮대~’ 하는 식이다. 연애 할 때부터 내내 그래왔던 터라 부모님도 그러려니 하고 성을 붙여 ‘0서방’ 하는 대신 이름으로 부른다.


그런데 왜 시부모님 앞에서 남편을 이름으로 부르려면 껄끄러운 마음이 드는 걸까. 아무래도 결혼 준비를 하면서 보고 들은 게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시부모님 앞에서 연하 남편을 이름으로 불렀다가 눈치를 받거나 한 소리 들었다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열 살 어린 연하 남편과 결혼한 개그우먼이 남편을 이름으로 불렀다가 고부갈등을 겪는 모습이 방송됐다. 개그우먼의 시어머니는 ‘호칭을 잘 해줬으면 좋겠다’며 눈물까지 쏟는다.


MBN <속풀이쇼 동치미> 캡처본


물론 방송은 재미를 위해 과장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예비 신부들이 많은 웨딩 커뮤니티에서도 남편에 대한 호칭, 지칭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라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댓글에는 아내가 연상인 경우라도 이름보다는 남편, 신랑 등으로 부르거나 어색하다면 ‘00씨’가 적절하다는 의견이 많다.


그럼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호기심에 한 직장인 커뮤니티에 설문조사를 올려 보았다. 기혼 남성에게 아내의 부모님 앞에서 아내를 어떻게 지칭하는지 물었는데, 짧은 시간에 85명의 사람들이 답변을 했고 80%가 ‘이름’으로 부른다고 답했다. 00씨나 아내라고 부르는 경우는 둘 다 10% 미만이었다.


여자의 나이가 많은 부부가 꾸준히 늘고 있어도 작년 기준 18.5%라는 것을 감안하면, 답변자의 대부분이 아내보다 나이가 많은 남성일 것이다. 남편이 연상인 경우에는 대부분 큰 어려움 없이 아내를 이름으로 부른다는 뜻이 되겠다. 물론 앞으로 여자가 연상인 부부가 더 많이 늘어나면, 연상 아내의 호칭을 놓고 고민하는 남성들이 더 늘어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배우자를 부르는 호칭에 관련된 어떤 사회적 규율들이 ‘여성이 배우자를 부르는 경우’에 좀 더 엄격하게 작용하는 듯하다. 최근까지도 아내가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것을 떨떠름해하면서 ‘여보’나 ‘당신’, 아이 이름을 붙여 ’00아빠’라고 부르도록 교정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나마 남편에게 아내’만’ 존대를 쓰도록 권하는 경우는 거의 사라진 듯 하다.)


사전적 의미로 보자면 ‘~씨’가 누군가를 높이거나 대접하여 부르거나 지칭하는 말이니 가장 그럴듯한 것 같다. 물론 ~씨는 그다지 가깝지 않은 사람에게 쓰다 보니 배우자, 연인 간의 호칭으로 자리를 잡은 ‘여보’나 ‘자기’보다는 거리감이 있고 어색한 느낌이 든다.


영화 <해피 뉴 이어> 스틸컷


우리 부부의 호칭 변천사를 생각해 보면, 서로를 ‘~씨’로 부른 것은 소개를 받아 처음 연락하던 며칠이 다다. 연애를 시작하며 서로 자기라고 불렀고,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이름을 부르거나 ‘야' '너’ 하기도 했다. 농담처럼 "누나가 호강시켜줄게!"하고 큰소리를 치는 날도 있었다. 결혼을 하고는 ‘여보’라는 호칭이 뭔가 부부의 특권 같아 보여 ‘여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남편은 여전히 ‘자기’가 더 애정이 있는 것 같다고 그렇게 부른다. 그리고 굳이 따지자면 이름으로 불리는 게 가장 좋단다.


어떻게 부르든, 존중과 애정의 마음을 담고 당사자 두 사람이 만족한다면 충분하다. 남편, 신랑이든, 아내, 와이프든 아님 그 외 다양하고 다정한 애칭이든 말이다. 혹시나 어른 앞에서 배우자에게 예의를 갖춰야 한다면 상호 동일하게 적절한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맞지,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에 좀 더 주의해서 일방적으로 정중한 호칭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고로 소심하게 전해 봅니다. 어머니, 제가 간혹 ‘준호는’이라 한다고 혹여 서운해 마셔요. 준호는 ‘준호’라고 불러주는 게 가장 좋대요! 그리고 준호도 저희 부모님 앞에서 저 이름으로 불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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