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관계 거부 사태
부부가 된다는 건 다른 이성과의 관계는 접어두고 서로에게만 충실한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결혼의 의미가 예전과는 달라지고 앞으로도 크게 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 약속 하나만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만 같다. 이 약속에는 섹스 역시, 평생 한 사람과만 하겠다는 맹세가 암묵적으로 따른다. 인간의 3대 욕구 중 하나인 ‘성욕'을 평생 배우자, 한 사람으로만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들 입 밖에 잘 꺼내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섹스리스’는 부부 문제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메인 아이템이다. 이혼 사유 중 ‘성격 차이'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여기에 성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대부분 아는 사실이다. 워낙 우리나라에서는 성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많아서 입 밖에 잘 꺼내지 않을 뿐. 확실한 건 섹스를 많이 해서 문제가 되는 일은 잘 없지만, 섹스를 안 해서 갈등이 되는 일은 굉장히 흔하다.
1년간 성관계 횟수가 월 1회 이하를 섹스리스라 할 때, 부부의 36%가 섹스리스라고 한다. 해외 논문에서 발표된 세계 섹스리스 부부 비율은 20%로, 한국은 일본에 이어 세계 2위다. (2015년 강동우 성의학 연구소. 1,090명 대상 설문조사) 그 이유는 다양한데, 출산 때문에 시작된 금욕 생활이 섹스리스로 곧바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고 소통 부재, 경제적 어려움 등도 손에 꼽힌다. 결혼 전에는 거의 ‘동물의 왕국’이었으면서 결혼을 기점으로 서서히 횟수가 줄어들다가 나중에는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라는 말로 퉁쳐지는 게 대부분이다.
흥미로운 건 일반적인 부부의 평균 섹스 횟수가 ‘주 1회’라는 근거 없는 데이터가 일반적으로 널리 통용된다는 사실이다.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주 1회는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수치인데 말이다. 섹스리스가 오히려 평범하고,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뇌피셜이 진짜 현실이라고 본다.
섹스에 관심없는 남편 때문에 속을 썩는 한 지인이 있었다. 본인은 성욕이 없지 않은데, 남편은 도통 관심도 없고 욕구 자체가 없는 게 문제였다. 그렇다고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두는 것도 아니었다. 여러 번 대화를 시도해 보고, 어떤 날은 야한 속옷을 입어도 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반응뿐. “피곤해"라는 말과 함께 뒤돌아 눕는 남편이 야속하기만 했다. 결혼 8년 차가 될 쯤에는 “이렇게는 못 살겠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이혼을 결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합의하에 헤어졌다.
이혼한 지 한참 지난 지금, 지인은 다른 남자를 만나 연애만 하고 살고 있다. 이와 비슷한 속사정은 주변에서나, 커뮤니티 같은 데서 너무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지인처럼 극단적으로 이혼을 결심하느냐, 포기하고 맞춰 사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섹스리스가 일반적’이라는 가정을 하고, 이혼하느냐-마느냐의 기로에서 각기 다른 결론을 내리는 이유가 뭘까 들여다보면, 결국 평소 관계에서 갈리는 것 같다. 평소 성 문제 외 부부 관계가 좋은지, 대화가 잘 되는지,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는지 등이다. 정서적인 면이 어느 정도 충족이 되면 성욕의 불균형은 어느 정도 포기하면서, 양해하며 살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서로 소홀함을 느낀다거나, 성향이 맞지 않거나, 경제적으로 부족함을 느끼는 등 좋지 않은 상황에서 성적인 문제까지 겹친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부추기게 된다.
앞서 사례로 언급한 지인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떠한 대화도 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고 했다. 남편은 거의 무반응으로 일관했기 때문에 오해가 점점 커졌고, 나중에는 복수심으로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된 것이 부부 사이를 파국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여러 사례를 봐도, 관계를 되돌릴 수 있는 ‘골든타임'은 부부간의 성 문제에서 만큼은 반드시 존재한다. 돌이킬 수 있는 그 시간을 붙잡지 않으면, 그 관계는 사망과 다름없다. 병원에서 환자의 생사를 가르는 골든타임을 놓치면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결혼 관련 칼럼을 2년 가까이 쓰며 늘 느끼는 것이지만, 부부 사이에는 대화가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