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전임신, 어떻게 생각하세요?
친구가 ‘속도위반’ 했다
코로나 시국으로 얼굴 보기가 힘들어진 친구 A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항상 밝은 분위기로 친구들 사이를 주름 잡던 A. 자못 비장함까지 느껴지는 그녀의 카톡에 우리 모두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조금 뜸을 들이던 것도 잠시 A는 우리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이야기를 꺼냈다.
“애들아, 나 할 말 있어... 나 3달 뒤에 결혼해. 그리고 임신했어.”
“헉 축하해! 좋은 일이 두 가지나 생겼네.”
친구들과의 단톡방에서는 축하 인사가 연거푸 오갔다. 말 그대로 경사였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이 사실을 말하기까지 비교적 큰 결심을 했어야 했던 것 같았다. 사귄 지 반년 되었다던 남자친구와의 결혼. 배가 더 부르기 전까지 결혼식을 잘 치룰 수 있도록 빠르게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A는 말했다.
결혼과 임신은 정말 축하할 일은 맞지만 어째서인지 A는 기쁨보단 얼떨떨함과 놀라움, 당황스러운 감정이 더 커보였다. 축하받을 일인데, 왜그렇게 마음을 졸이는 건지 A를 직접 만나 심경을 들어봤다.
갑작스러운 변화로 인한 혼란
A 커플은 굳이 따지자면 혼기가 꽉 찬 편에 속했다. 양가에서 ‘결혼하라’는 잔소리가 쏟아지는 때이기도 했다. 결혼은 너와 할거라는 남자친구의 고백을 듣고, A도 결혼을 결심했다. 하지만 마음 속 한편에선 이성적으로 생각해보고 싶었다. '혹시 금방 사랑이 식어버리면 어쩌지?' '만약 내가 남자친구를 더 많이 사랑하게 된다면?' 신중히 생각해보려던 것도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새생명이 생겨났다.
'최악이다.' 갑작스레 찾아온 임신 소식에 A의 첫 반응은 그랬다.
몸이 안 좋아 털어먹었던 항생제, 절제를 모르던 음주와 흡연. 안 좋은 환경은 다 갖춘 상황에 아이가 찾아왔다. 그뿐만 아니라 아이가 뱃속에 자리 잡고 커가는 과정은 지독히도 힘들었다. 극심한 입덧과 체력 저하로 컨디션은 급격히 나빠졌다. 평소 같았으면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회사 일도 예민하게 대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어지는 일이 많았다. 회사에서 하도 구역질을 하느라 주변에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날도 늘었다.
결국 예상보다 일찍 육아휴직을 써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회사에도 알릴 수 밖에 없었다. 그 날 A는 문을 잠가놓고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울었다.
“왜 피임 안 했냐고 하시더라. 일 잘했다고. 다시 돌아오는 거 맞는지 여쭤보셨지만 결국 결혼도 안 한 처녀가 대책 없이 임신했다는 말처럼 들렸어. 그게 마음이 너무 아프고 자존심이 상해.
상견례에서 남자친구 부모님께서 ‘둘이 사이가 워낙 좋았던 모양인지 복덩이가 생겼다’고 말씀하셨는데, 엄마가 뭐랬는 줄 알아? 애를 잘못 가르쳐서 라더라. 그게 무슨 말이겠어. 우리 엄마도 나를 정숙하지 못한 사람으로 봤다는 말 아니야? 그리고 임신은 내가 혼자 한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만 화살이 돌아오는 걸까..."
"어차피 결혼할 사이였으면 가정에 생긴 축복이니 이왕 행복하게 잘 살면 됐지"하는 내 말에 A는 또다시 서럽게 울었다.
아이 계획은 철저하게
보통 혼전임신의 단점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1. 체력 저하, 드레스 선택 제약, 신혼여행지 제약
2. 둘만의 신혼생활이 없는 채 바로 가족이 생긴다는 것
3. 서로를 잘 모른 채 ‘아이’때문에 평생을 함께 해야하는 것
A가 힘들어했던 것처럼 아이가 생기면 극심한 신체 변화가 온다. 그뿐인가. 결혼 후 함께 살며, 온전히 서로를 이해할 만한 시간이 부족하다. 안 그래도 '헬'이라는 육아 전쟁에 서로를 온전히 파악할 시간없이 바로 뛰어들 수 밖에 없다.
물론, 혼전임신의 단점을 극복할 만큼의 장점도 있을 것이다. 아이는 축복이자 천사 아닌가. 아이가 주는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축복인만큼 안정된 기반이 뒷받침해줘야 되기 때문에 아이를 낳는 문제는 신중해야 한다. 아이가 생긴 이상 모든 것은 돌이킬 수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