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대화하는 만큼 명절 스트레스는 줄어든다
아무리 좋고 편한 시부모님이라 해도
'시댁은 시댁'
결혼 후 첫 명절,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 큰집과 작은집, 성묘까지 3군데를 거치며 대대적으로 진행하는 차례를 보고 순간 ‘내가 결혼을 잘한 게 맞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가족끼리 돈독한 건 알았지만 차례까지 이렇게 돈독하게 할 줄이야.
게다가 첫째 형님은 결혼도 늦으셨고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되지 않아 일을 도우지 못하셔서 둘째 형님이 큰어머니들과 차례 준비를 하고 있었다. 둘째 형님은 결혼도 아주 어린 나이에 하셨다는데 알아서 척척 준비하시는 걸 보니 이 집에 들어와서 혼자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었다.
연휴 내내 당연하듯 음식을 만들고 상을 내오고 치우고, 쌓인 설거지를 하는 여자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우리 집 차례도 이렇게까지 안 하는 데 지방까지 내려와서 남이나 마찬가지였던 이 집의 조상들을 모시기 위해 이렇게나 일을 해야 하는지가 의문이었다. 앞으로의 명절이 너무나 두려워지는 순간이었다.
며느리발톱이
왜 며느리발톱인지 알아?
TV를 보다가 새끼발톱 옆에 조그맣게 갈라져 붙어있는 어정쩡한 발톱을 며느리발톱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고 남편에게 며느리는 대체 무슨 존재인지 물은 적이 있다.
왜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사이가 좋을 순 없는 걸까? 며느리도 친정이 있고, 본인 가족들이 있는데 명절에는 친정보다 시댁이 우선순위가 되어버리는 건지 참 아이러니 하다.
첫 차례의 충격을 뒤로 한 채,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조건 싫다, 힘들다, 못하겠다가 아니라 내 기준을 말하고 조율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 : 명절에 대해서 3가지 기준을 세워봤어. 첫 번째로 서운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오빠가 우리 부모님한테 하는 만큼 똑같이 할 거야. 나도 우리 가족이 소중해.
그리고 두 번째, 명절에 시댁을 먼저 가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을 갖지 않을게. 대신 명절 당일 점심 전에는 나왔으면 좋겠어. 그래야 좀 쉬고 우리 집에 갈 시간도 생기니까.
마지막으로 시댁에서 일하는 건 크게 부담스럽지 않아. 다만 나를 혼자 두는 상황만 만들지 않아줬으면 해. 내가 힘든 건 일하는 게 아니라 많은 시댁 식구들 사이에서 감정 소모를 하는 게 낯설고 힘든거니까.
이렇게 내 기준을 먼저 말하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니 생각보다 수월하게 서로를 존중해 주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남편은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겪지 않았고, 나는 명절이 다가와도 스트레스가 크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
바로 '코로나'
코로나가 점점 심해지다 보니 작년은 설날과 추석을 모두 명절에도 큰집에 내려가지 않았다. 그런데 안 간다고 마냥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시부모님만 따로 내려가셨기 때문에. 시부모님과 우리 부부를 제외한 모든 시댁 식구는 지방에 모두 모여 살고 있어 결론적으로는 우리만 안 간 게 되었다. 안 가고 마음이 불편한 것보다 가서 하루만 고생하고 맘 편한 게 낫지 싶어 남편과 또 다른 기준을 세워보았다.
�♀️ : 시부모님이 내려가시면 우리도 같이 내려가고, 안 내려가시면 우리도 가지 않는걸로 하자. 대신 명절 당일 같이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는건 어때?
그렇게 설날이 다가왔고, 올해도 역시 코로나 때문에 가지 않는 걸로 결정이 났다. 그리고 시부모님의 선택을 기다렸고, 가지 않기로 하셨다기에 함께 점심을 만들어 먹자고 먼저 말씀을 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셨다. 심지어 시댁에서는 점심을, 친정에서는 저녁을 먹으며 하루만에 명절을 끝낼 수 있었다.
어쩌면 배려를 많이 해주는 남편과 시부모님을 만나 운이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큰 충격이었던 첫 명절에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면 지금 나의 명절은 어떤 그림이었을까.
결혼은 부부 당사자들을 넘어 서로 다른 집안의 만남이기에 대화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화의 방법도 중요하다. 무조건 요구하기보다는 하나의 기준을 정하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며 대화한다면 앞으로 만날 결혼생활의 어려움들도 지혜롭게 헤쳐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즐거운 명절, 모두가 즐거울 수 있도록 말이다.
(수정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