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출장이 잦았던 업무 때문에 난 일주일에 한두 번은 항상 지방으로 출장을 다녔다. 그날도 평소와 같은 일상이었고, 대전에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어서 나는 대전 출장 중이었다. 업무를 보고 점심시간이 지났을 때쯤 서울 지역번호로 전화가 왔고, 처음 보는 번호였지만 워낙 클라이언트들과 통화가 많았던 시절이라 당연히 고객이라고 생각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XXX의 김철수입니다. 어디십니까?"
"안녕하세요, 민수 아버님이시죠? 저 민수 담임 선생님입니다."갑작스러운 학교 전화에 난 많이 당황스러웠고,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혹시 민수에게 무슨 일이 있나요? 민수가 어디 다쳤나요?"급한 마음에 입에서는 조바심 섞인 말들이 쏟아져 나왔고, 조금은 크고 높은 톤으로 말하고 났더니 지나가는 주변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 아니요. 아버님, 민수가 다쳐서 전화한 건 아니에요?"아니나 다를까 전화 속 선생님도 조금은 놀랐는지 처음 말하는 톤보다는 높은 톤의 목소리를 냈고, 다행히 아이가 다쳐서 전화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선생님이 전화한 용건을 요약하면 민수가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과 놀다가 교실 뒤에 주차되어있는 차의 뒷 유리를 깼다는 것이고, 지금 차주가 나와 통화를 원해서 전화를 한 것이라고 했다. 아내와 통화를 하려고 했으나 어쩐 일인지 아내가 전화가 되질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나에게 전화했다고 했다. 이 당시 아들이 다니던 학교는 교실 증축 공사로 아이들이 뛰어놀 운동장이 없었고, 그나마 학교 안에서는 교실 뒤 공터 같은 곳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의 전부였었다.
우선은 선생님께 아들이 많이 놀라지 않았는지, 다친 데는 정말 없는지 등의 상태를 물었고, 괜찮다는 말에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어 차량 주인을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뒤에 차주는 전화를 받아서 아이의 아버지냐고 재차 확인을 했고, 우선은 난 아이가 차 창문을 깬 것에 대한 사과를 드렸다. 사과를 받고 난 차주는 자신이 지금 학교 건물 증축 사업에 인부인데, 아들이 깬 차 유리 때문에 다른 곳 공사를 가지 못한다고 생떼를 쓰기 시작했고, 아이가 잘못했다는 얘기를 하지 않은 것에 언짢은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난 자초지종을 모르니 무작정 그의 얘기를 들을 수는 없었고, 그의 전화번호를 나에게 알려달라고 하고 선생님을 다시 바꿔달라고 말했다.
선생님께 차가 어디 주차되어 있었는지, 아이가 유리를 깬 게 맞는지, 그리고 차주가 더 이상 아들을 혼내지 못하게 애는 집으로 보내달라는 부탁을 드렸다. 선생님은 차는 주차장이 아닌 아이들이 놀고 있는 학교 건물 뒤 공터에 주차되어 있었다고 하고, 아들이 뒷 유리를 깬 것은 차주가 이야기해서 그렇게 알고 있고, 민수가 깬 것을 본 사람은 없다고 했다. 거기에다 차 주변에는 아들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여럿 있었는데 다른 아이들은 내버려 두고 아들만 데리고 온 이유는 차주가 직접 민수가 깼다고 주장해서 이렇게 연락을 드렸다고 했다. 난 자초지종을 제대로 파악도 안 하고 아들의 잘못으로 이야기하는 선생님에게도 조금 서운했지만, 따로 표 내지는 않고 아이의 귀가를 다시 한번 부탁드렸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난 차주에게 전화를 했고, 뒷 유리가 작은 구멍이 난 정도인데 왜 차량 운행이 어려운 건가를 따져 물으며 주차장도 아닌 학교 건물 뒤 공터에 차를 놔둔 것도 과실 아니냐고 몰아세웠다. 조금 강하게 이야기했더니 차주는 다음 일할 곳이 여기서 멀지 않아 그냥 갈 테니 차 유리값만 달라고 해서 학교 근처 카센터에 맡겨 놓으면 내가 그리로 가서 결제하겠다고 못을 박았다. 그는 더 이상 얘기하진 못했고, 나는 그 길로 대전역에서 KTX를 타고 서울로 이동해 차 수리를 맡겼다는 카센터로 갔다.
카센터에 도착했을 때 차주가 있었으면 한 바탕 쏘아붙이려고 했더니, 그 차주는 차만 맡겨놓고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고, 다행히 차는 경차라 차 유리 값도 10만 원에 수리가 가능했다. 정비 담당자 말로는 차 뒷유리에 작은 구멍이 났다고 하고, 아마 작은 돌멩이를 맞아 깨진 것 같다고 하면서 처음 차가 들어왔을 때 사진을 내게 보여주었다. 정말 작은 돌멩이로 뚫린 구멍, 그게 전부였다. 차 수리비를 지불하고 집에 들어가면서 아들이 걱정도 되었고, 어떻게 이야기해야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알아들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집에 들어와 아내에게 아들의 상태를 물어보니 평소와 크게 다른 점이 없다고 이야기했고, 난 반성하지 않는 모습에 조금은 화가 나 아들을 불러 야단을 쳤고, 어떻게 된 일인지 아들에게 그때 상황을 설명하라고 했다.
하지만 아들은 입을 닫았고, 내가 야단도 치고, 타일러도 봤지만 굳게 닫힌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민수의 행동에 더 화가 났고, 아이의 버릇을 고쳐야 되겠다는 생각이 앞섰지만, 아내는 아이를 안고 다독이며 따뜻하게 말했다. "엄마는 다 알아. 민수 잘못 아니야. 아빠는 민수가 잘못해서 화난 게 아니고, 민수 혼낸 아저씨한테 화가 나서 그러는 거야."
아이는 꼭 다문 입을 씰룩거리더니 눈망울에 눈물이 고였고, 금세 울음이 터져 버렸다. 당황한 나는 아이를 몰아세운 것에 미안했고,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아이를 안아줬다. 한참을 울고 난 아이는 그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했고, 얘기를 다 듣고 난 후, 난 아들에게 미안했고, 차주에게 전화해 한 바탕 쏟아부을까도 생각했지만 아이가 다치지 않고, 이렇게라도 아들과의 신뢰를 지킨 것에 만족해야 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민수는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과 함께 교실 건물 뒤에서 놀고 있었고, 같이 놀던 아이들 중 일부가 작은 돌을 던지며 놀고 있었는데 자꾸 차 뒷 유리에 돌이 맞아서 아이들을 말리던 중 아이들이 던진 돌 중에 하나가 차 유리를 깼고, 차 근처에 있던 차주가 아마 아들을 지목해 억울하게 교무실까지 끌려갔다는 것이다. 아들은 결국 누가 깼는지는 많은 애들이 던진 돌 중에 하나여서 정확히 알 수 없었고, 자기가 아니라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믿어주지 않는 아저씨 때문에 입을 닫았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많이 억울했을 아들에게 미안했고, 끝까지 다른 누군가를 지목하지 않았던 아들의 의리에 대견했다. 9살밖에 안된 녀석이 이렇게 대견하긴. 이날은 아들에게서 인생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