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내 출생기록을 지웠다

46년 함께한 또 하나의 나를 청산했다

by 추억바라기

대한민국에서는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다. 물론 출생에 따른 이중국적일 경우에는 제한적으로나마 허용을 한다.



아직도 주민센터 직원 분이 하셨던 얘기가 생각난다. "어떻게 지금까지 이렇게 사셨어요? 이건 거의 이중 국적이나 다름없어요. 혼인 신고하신 게 용하시네요. 기회 되실 때 정리하세요."


사람들은 살면서 여러 가지 거짓말을 한다. 남을 속여서 골탕을 먹이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며 자신에게 이득을 취하는 악의적인 거짓말, 속칭 사기와 같은 나쁜 의도의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나쁜 의도는 없었으나 자신에게 올 피해를 최소화하거나 다른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맞추려는 선의의 거짓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간 내가 해온 거짓말은 어떤 범주에도 들지 않는 회색 거짓말쯤 되지 않을까 싶다. 나쁜 의도는 없었으나 어떤 이에게는 피해를 입혔을 수도 있고, 나의 이해관계를 생각해보면 나의 사익 추구는 아니더라도 손해보지 않기 위한 의도하지 않은 거짓말을 해왔다.


나의 거짓말의 시작은 대학 시절부터이다. 사실 그전까지는 나의 출생 연도에 대한 불편함을 인지하기에는 중, 고등학교의 선, 후배 관계는 나이와는 전혀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이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학번을 따지는 대학교에 다니면서 재수나 삼수생이 신입생으로 들어왔을 때 항상 선배이면서도 왠지 재수나 삼수를 하고 입학한 후배들을 볼 때면 조금 찔리는 구석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난 소위 이야기하는 빠른 생일로 인해서 남들보다 학교를 빨리 들어갔기 때문에 가급적 생년월일을 노출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후배들, 특히 재수, 삼수한 후배들이 주변에 있을 때는 많이 경계를 해왔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노출이 되면 강하게 "빠른 생년월일"을 강조하며 빈틈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이런 일은 대학을 졸업하고 첫회사에 입사해서도 계속되었다. 나이가 많은 게 장점도 아닌데, 나이차가 없는 회사 선배들에게 우습게 보이지 않으려고, 나이로나마 조금은 대접받으려고 그리 "빠른" 출생일을 강조했었다. 사실 이렇게 주민등록상에 나온 빠른 생년월인 2월을 강조하고는 있었지만 정작 원래의 생년월일은 이것보다 2달이나 늦은 4월이었다. 결혼 전 아내와 연애할 때도 이 생년월일 때문에 혼자 고민을 많이 했었다. 아내와 나는 같은 지역 출신으로 주변에 진학 가능한 고등학교가 많지 않아 한 다리 건너면 알만한 사람을 다 안다는 아주 작은 동네에 살았다. 난 아내와 졸업 연도가 1년 차이가 난다. 20대에 아내를 만나 연애를 하며 아내에게는 특별히 나이를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아내는 자신보다 1년 먼저 졸업한 선배니까 당연히 자신보다 1살이 많은 걸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당시 나를 '오빠'라고 불렀고, 그 오빠 소리를 듣지 못할까 봐 난 언젠가는 이야기해야 할 고민을 혼자 꽤나 오랜 시간 끙끙됐었다. 사실 아내에게 이 사실을 고백하면서도 속여왔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고, 아내가 당장 '야', '철수야' 등으로 말을 놔버릴까 봐 두려웠었다. 하지만 걱정을 한 내가 어리둥절할 정도로 아내는 쿨(?)하게 '몇 달이라도 더 일찍 났으니 오빠는 오빠지'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정확히 어느 순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마흔이 넘어서면서 그 나이의 경계, "빠른"을 강조하는 버릇은 사라져 갔고, 오히려 한 살이라도 덜 먹는 게 이제는 더 이점이 있는 듯해서 빠른 년생이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이렇게 실제 출생일과 주민등록상의 출생일이 달라서 불편한 점은 자주는 없었다. 다만 내가 이 글을 쓰며 이중생활이라고 표현한 것과 같이 나의 실제 출생일은 '가족관계 증명원'에 남아있는 기록이어서 해마다 날 한 번씩은 귀찮게 했었다. 1년에 한 번씩은 소득이 있는 납세자라면 모두 한다는 '연말정산 소득공제' 서류를 낼 때 어쩔 수 없이 출생일의 내가 본임임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불편함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가족관계 증명원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일만 아니면 출생일을 잊고 살했다.

하지만 얼마 전 난 나의 두 신분 중 하나의 신분으로 정리해야 할 일이 생겼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상속문제를 처리하면서 법원에 넣어야 할 서류에 가족관계 증명원의 번호와 주민등록 등본의 번호가 일치하지 않아 두 개의 번호를 하나로 정리해야 법원에 상속 관련 정리 절차가 가능하다는 법무사의 통보였다. 한참을 고심 끝에 난 나의 출생년월일이 기재된 가족관계 증명원의 번호를 정리하기로 결정했고, 이 과정에서 47년을 함께 지내온 나의 신분 하나를 정리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하는 것은 거주지 주민센터에 가서 서류를 작성, 신청하면 일반적으로 1주일 이내에 주민등록번호가 가족관계 증명원의 번호로 변경된다. 하지만 이럴 경우 공공기관에 등록되어 있는 등록 번호는 자동으로 변경되지만, 금융 기관이나 생명 보험사 등 개인적으로 거래, 등록한 기관은 개인이 모두 변경해야 하는 아찔한 수고를 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난 이런 번거로움도 번거로움이지만 47년을 함께 지내온 주민등록번호를 바꾼다는 게 못내 아쉬웠고, 마지막까지 단순히 번호로만 생각했던 주민번호에 그 순간 많은 게 느껴졌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말이다.

난 가족관계 증명원을 바꾸기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가 많았고, 서류를 뗄 수 있는 장소도 제각각이었다. (기본증명서, 가족관계 증명서, 제적등본, 구 개인별 주민등록표 원장, 세대주가 아버지로 되어있는 주민등록표 원장 사본, 최초 주민등록 번호부여 대장 사본 등) 이 서류들 중 일부는 단순히 주민센터에서 신청 가능한 것이 아니었고, 출생지 주민센터와 2010년 살던 연고지의 주민센터에서 신청해야 할 것들이 있어서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 우여곡절 끝에 2개월 가까운 시간이 걸려 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났고, 판결문을 들고 구청에 가서 신청 서류를 작성하였더니 변경까지는 1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난 나의 출생일에 대한 기록을 지웠다. 이젠 하나의 번호로 남은 생을 살아야 한다. 번거로웠던 일도 많았고,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에게 숨겨야 하는 번호였지만 나에게만 의미 있던 그 번호가 이젠 막상 세상에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하니 왠지 마음 한편이 비워진 듯 허한 느낌이 든다. 난 나의 기록 하나를 지웠고, 이렇게 나의 이중생활을 청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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