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내는 20대 후반에 결혼을 했다. 요즘 젊은 세대에서 보기에는 조금 서둘러 간 결혼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혹시나 속도위반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나이다. 하지만, 우린 연애기간도 6년이나 되어서 주변에서는 '이러다 헤어지는 거 아닌가' 우려 섞인 목소리도 있었고, '연애기간이 너무 길어도 안돼'라는 현실 섞인 조언들도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결혼을 하게 된 이유는 내가 너무 아내를 사랑했고, 대학 생활을 가족과 떨어져서 홀로 하다 보니 외로움도 좀 커질 때여서 얼른 내가 울타리가 되는 가족을 서둘러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크게 작용했었다.
그렇게 우린 결혼을 하게 되었고, 결혼 후 1년이 조금 넘어서 큰 아이를 갖게 되었다. 그 당시 아내가 다니던 회사는 어려웠었고, 임신을 한 아내도 회사에 눈치도 보이고, 출산 준비도 해야 해서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전업 주부의 길을 가게 되었다. 서울에 연고도 없었고, 요즘에는 어린아이들도 맡길 시설이 잘 되어있지만, 그때만 해도 1~2살 어린아이를 맡아서 잘 보육할 만한 시설이 흔하지는 않았었다. 또 요즘은 육아 휴직을 내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했지만, 그때만 해도 육아휴직을 낼 거면 퇴사를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만연했을 때였으니 아내는 이참에 아이를 잘 키울 목적으로 엄마라는 평생직장에 올인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렇게 큰 아이를 키우고, 4년 뒤에 둘째도 낳아 키우면서 진정한 전업주부의 힘, 엄마의 포스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두 아이의 엄마라는 게 아빠들은, 아니 우리 남자들은 좀처럼 잘 모를, 그 이해하지 못하는 힘이 생겨난다고 한다. 하나 챙기기도 바쁘고 버거운데 둘을 키운다는 게 많이 힘이 들었을 것이다. 그것도 우리 남자들, 아빠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내가 전업주부로서 아이들 육아에 전념하느라 '의도했던 사회로부터 자발적 격리'의 날은 꽤나 길어졌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아이 학교에서 준비해 오라는 준비물이 늘고, 이런 준비물을 하나하나 챙기면서 그동안 사회와 단절되어 살아왔음을 종종 느낀다고 했었다.
어느 날, 아내는 큰 아이 학교에서 투명 테이프를 준비해 오라고 해서 집 근처 문구사에 가게 되었다. 자주 다니는 문구사지만 자주 사는 품목만 사다 보니 아내는 낯선 물건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날은 학교에서 준비해 오라는 준비물이 자주 사는 물품은 아니었고, 문구사가 조금 넓었던 관계로 문구사에 들어가면서 사장님에게 투명 테이프 위치를 물어봤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투명 테이프 어디에 있어요?"
"네, 안녕하세요. 우측 진열대 맨 끝에 가시면 테이프 있어요." 사장님은 아내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고, 투명 테이프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아내는 문구사 사장님이 알려준 위치에 가서 투명테이프를 발견하고 이것, 저것 뒤적이다 투명 테이프 하나를 집어 들고는 사장님께 물었다.
"사장님, 이 테이프는 3미터짜리 밖에 없나요?" 아내는 문구사 사장님이 보이지 않을까 봐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물었고, 아내의 손에 들린 테이프를 자세히 보려고 눈을 찌푸리며 바라보던 사장님의 시선은 이내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바뀌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잠시 당황하는 표정이 되었다.
다들 예상은 하셨겠지만, 아내가 들었던 투명테이프는 '쓰리엠(3M)' 투명 테이프였고, 아내는 브랜드명을 길이인 줄 알고 그렇게 물어본 것이다. 마침 학교 앞 문구사라 선생님들도 자주 오는 곳이었는데 아내가 알고 있는 선생님 한 분도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 인사하려다 아내의 손에 들린 테이프를 확인하고서는 아내가 민망해할까 싶어 아내를 알은체를 못하고 다시 문구사 밖으로 나갔다고 한다.
아내는 엄마라는 귀하고, 소중한 직업을 선택하며 생긴 '사회로부터 자발적 격리'가 이렇게 가끔 해프닝을 만들곤 했었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의도하지 않은 자발적 격리'로 답답해하고 힘들어하는 요즘 그 옛날 육아를 위해 스스로 사회로부터 격리를 선택한 '아내'가 요즘 더 대견하고, 고맙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