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케키와 어머니의 연탄집게

난 그 날 필사적으로 뛰었다

by 추억바라기

초등학교, 아니 그 옛날은 국민학교였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을 보면 한 반에 기껏 많아야 30명이 넘지 않는 학생 수지만 나 어릴 때에 한 학급의 학생수는 50명은 기본이고, 많게는 60명 가까이 되는 반도 있었다. 그 시절에는 남학생, 여학생의 성 비율도 비슷했고, 지금처럼 사교육이 활성화되어 있지도 않아서 수업이 끝나면 다들 삼삼오오 모여 축구도 하고, 땅따먹기, 구슬치기도 하고, 여자 아이들은 주로 고무줄을 하며 놀았다.


이렇게 한 학급마다 많은 수의 학생들이 어울리다 보니 반마다 말썽쟁이들이 한 둘이 아닌 5~6명씩은 되었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말썽을 피우는 레벨은 함께 단계별로 진화하는 것 같았다. 저학년 때에는 고무줄 하는 아이들 사이로 들어가 고무줄 끊기는 기본이었고, 좋아하는 여학생들 신발 감추기 등 지금 생각하면 귀엽다는 생각이 드는 장난을 많이 쳤고, 고학년이 되어갈수록 좀 더 짓궂은 장난들을 해서 장난의 타깃이 되는 친구들을 꽤나 곤혹스럽게 하곤 했었다. 화장실 벽에다 "누구는 누구를 좋아한대요"는 귀여운 정도였고, 조금은 야한 그림을 그려 그림의 주인공들이 누구라고 써 놓기도 했었다.


이런 여러 장난들 중에 말썽꾸러기 저학년 남학생들이 가장 즐겨했었던 장난은 치마를 입고 오는 여학생들을 노려 갑자기 치마를 들추는(?) 일명 '아이스케키'. 지금 생각해도 꽤나 짓궂은 장난인 듯하다. 그렇게 아이스케키를 당한 여학생은 두 가지 타입으로 반응이 나뉘었다. 주저앉아 우는 타입이 있는가 하면, 장난을 친 아이를 끝까지 쫓아가 응징하는 타입. 이렇게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만 되면 이런 장난, 저런 싸움으로 항상 학급은 전쟁터였고, 이런 학급의 모습이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운 추억의 책장 속 한 페이지로 남아 있다.


난 그 시절 활달했지만 말썽꾸러기는 아니었고, 아이들이 하는 짓궂은 장난에 동조하지 않는 몇 안 되는 남학생이었다. 일명 '바른생활 어린이'. 하지만 아무리 짓궂은 장난을 싫어했던 나였지만 가끔씩은 그런 장난을 하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가 있었고, 특히 '아이스케키' 장난은 그 시절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어 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아이들과 학교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부엌(주방)에 계셨다. 옛날 시절 우리집은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한옥집이었고, 그러다보니 우리 집 부엌과 방은 전체 세대의 마당으로 입구가 되어 있었고, 마당에서도 부엌에 계시는 어머니가 잘 보일 정도로 부엌 안은 마당에서 훤히 보이는 구조였다. 난 부엌으로 가서 '학교 다녀왔습니다' 인사하려다 어머니가 평소에는 잘 입고 있지 않는 넓은 주름치마를 입고, 연탄불을 보고 있는 모습에 학교에서 해보지 못한 짓꿏은 장난이 생각이 났다.


머릿속에서는 '하면 안 돼'를 외쳤지만 난 이미 어머니의 주름치마 끝자락을 잡고 상기된 얼굴로 손을 위로 번쩍 들고 있었다.

"엄마, 아이스케~키!"

순간 어머니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았고, 그 당황스럽던 표정도 잠시 후 내가 보아왔던 어머니의 얼굴 중에서 가장 무서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순간 난 살려면 여기를 벗어나야 된다는 생각을 했고, 정말 무서운 속도로 부엌을 나와 대문 밖으로 줄행랑을 쳤다. 잠깐 눈에 안 보이면 괜찮겠지 했지만, 방심도 잠시였고 어머니는 연탄집게를 한 손에 들고 정말 무서운 얼굴로 나의 이름을 부르며 쫓아오고 있었다.

"철수 너 거기 안서. 어디서 못된 건 배워가지고... 붙잡히면 혼날 줄 알아."

난 어머니의 필사적인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통보한 대로 붙잡히지 않으려고 정말 죽을 둥 살 둥 뛰었다. 결국 붙잡히지는 않았지만 난 아버지가 들어오는 시간까지 집에 들어가지 못했고, 다행히 아버지의 중재(?) 아래 어머니에게 야단만 맞고 그 날의 일은 일단락이 되었다.

학교 친구들이 같은 반 여학생들에게 아이스케키 장난하는 걸 보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친구들의 장난이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하필이면 연탄집게를 들고 있던 어머니를 대상으로 하다니 말이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곁에 없지만 어머니의 그때 모습을 떠올리면 한창 활력이 넘쳤던 30대였고, 건강했던 어머니의 그 시절 모습이 느껴지는 듯해서 지금도 가끔씩 그 날의 추억이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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