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표면적으로는 능동적이고, 활력이 꽤나 있어 보이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보인다.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더욱더 그렇게 생각들을 많이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먼저 보면 인사하고, 안부를 묻고 그리고 밥 한 끼 하자고 제안하는 게 나에겐 버릇처럼 되어있다. 누가 시킨 적도 없고, 가르쳐 준 적도 없지만 그냥 사회생활을 하면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고, 이게 몸에 익숙해져 버린 듯 습관처럼 몸에 뵌 것이다. 나는 함께 일하는 동료나 협력업체, 고객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함께 일하는 사이끼리 불편하거나 어색함을 참지 못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일부러 먼저 인사하고, 친한척하고, 밥이라도 한 번 먹어야 조금은 어색함을 지울 수 있어서 이런 행동들을 해왔다. 사실 이렇게 행동하는 패턴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얼마 전에도 재직 중인 회사 대표님과 식사를 할 자리가 있어서 밥을 먹으러 갔는데, 대표님도 외향적인 성향이 아니고, 함께 동석한 관리자나 동료들도 대표이사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자리가 자리인 만큼 편하게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고, 이런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레 무거운 분위기 연출이 되고 있었다. 난 자리도 대표님 맞은편이고 이 무겁고, 어색한 분위기가 싫어서 밥 먹는 내내 그 어색한 분위기를 벗어나려고 꽤나 입을 놀렸고, 마지막에는 오히려 매니저가 김 부장은 참 말을 많이 해서 심심할 틈이 없다는 칭찬(?)을 할 정도였다. 식사 자리가 끝나고 동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불편하고, 어색할 자리에서 그래도 내가 끊임없이 얘기한 덕에 본인들이 어색할 일이 최소화되었다고 감사함을 표했다.
이렇게 나를 업무적으로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표면적으로 나타난 나를 본다. 적당히 수다스럽고, 사람들을 잘 챙기고, 능동적이라고. 하지만 난 요즘 이렇게 사회생활을 하는 내가 피곤해졌고, 나이가 들어서 그러는지, 아님 갱년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회식자리에 가서도 곧잘 입을 닫고, 함께 차 한잔, 밥 한 끼 먹자는 사람들의 제안도 다른 핑계를 대고 피하기 시작했다.
이게 단순히 일시적인 증상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이런 귀찮음은 이제 일상이 되어가고 있고, 업무에도 영향을 미칠까 조금은 걱정이 된다. 관계가 있는 모든 사람들은 어떤 형태이든 연결이 필요하다. 이게 정말 끈끈한 연결고리로 맺어진 관계이든, 아니면 같은 목적을 갖고 함께하는 관계나 업무적으로 함께하는 관계이든 간에 꾸준히 혹은 비정기적이더라도 연결은 필요하다. 하지만, 난 지금 이런 연결고리들이 귀찮고 피곤해지고 있다. 이게 단순히 업무적인 관계에서뿐만이 아니라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스스로 자부했던 연결고리로 맺어진 인간관계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이런 나태함으로 예전만 못한 듯하다.
난 현재 바뀐 업무로 부서가 변경된 지 이제 2년 차에 접어들었다. 사실 고객이나 채널을 자주 만나던 부서에 있다가 연구개발 조직으로 부서가 변경될 때부터 가장 걱정했었던 일이 바로 19년 가까이 가져왔었던 외향적 성격의 업무 커리어와 스타일에 대한 변화로 인해 생존을 위해 끓어 올렸던 표면상 외향적 성격의 내가 조용히 사라지거나 위축될 것을 무척이나 걱정했었다. 그러나 걱정했었던 게 현실이 될지는 몰랐고, 그것도 스스로의 게으름과 나태함이 이런 관계를 끊어나가는데 영향을 끼치고 있으니 정말 귀찮으면서도 스스로가 안타까울 때가 많다. 요즘 말로 '손절'에 들어간 것도 아니면서, 스스로 가지 치기 정도가 아닌 나무를 베고 있으니.
물론 사람과의 관계는 단방향일 수가 없다. 항상 쌍방이 필요에 의해서 관계가 이어져 나가고, 이런 관계의 연속성을 유지하려면 꾸준히 서로 간에 노력이 필수적이다. 박수도 손뼉이 맞아야 소리가 나듯이 혼자 아무리 허공을 휘둘러 봤자 시원한 소리는 기대하기 어렵다. 관계라는 게 관계의 주체자들끼리 딱 잘라 5:5로 맞춰서 노력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적어도 3:7, 2:8의 균형은 이루어줘야 관계는 꾸준히 이어질 수 있다. 아무리 가족 간이라도 이 인정하기 싫은 진실은 피할 수 없으며, 난 이런 이유로 형제, 가족 간의 관계가 끊어진 혈육을 본 적도 있다. 일부러 찾아서 만나던 관계도 이제는 귀찮음과 나태함으로 이 핑계, 저 이유로 사람과의 연결을 스스로 쳐내고 있는 내가 위태로운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정작 내가 회사에서 입지나 여력이 좋을 때에는 열심히 관계를 유지하려던 노력이, 오히려 내 상황이 어렵고, 힘들고, 도움이 필요할 때 회피하고, 위축되는 나를 보면서 스스로의 '손절'이 내가 만들어 온 21년 사회적인 관계에 뼈 아픈 후회와 상처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고 한다. 특별한 직업군에 있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인 활동 영역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일부러 외부 커뮤니티나 취미를 갖지 않는 이상은 이런 협소해진 활동 영역에서 기존 관계라도 집중을 해야 그나마 구축해 놓은 인간관계의 감소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나태함이나 게으름은 치명적일 수 있고, 이런 태도로 인해 기존 관계의 손절은 피할 수 없게 되니 더욱더 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