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오래전부터 저의 적극적인 가사 도움으로 집안일 중 특별히 이건 누구 일이고, 저건 누구 일이라고 구분하여 일을 나눠하지는 않아요.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나열해보더라도 음식부터, 빨래, 청소, 설거지까지 집안일의 대부분을 하거나, 할 수 있죠. 평일 업무가 끝나고 퇴근하면 전업 주부인 아내가 저녁 준비를 전담하기 때문에 평일 저녁은 따로 준비할 일은 없죠. 하지만 저녁 식사 후 저녁 상을 치우는 것부터 설거지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제가 하는 일이에요.
이런 가사에 대한 제 역할은 주말에 더 역량(?)을 발휘하는 편이죠. 토요일 아침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평균적으로 세 끼에서 네 끼 정도는 제가 맡아서 준비하는 편이에요. 요리를 좋아하기도 하고, 평일 가족들 식사를 준비하느라 고생한 아내에 대한 배려의 마음도 한 몫하죠. 거기에다가 청소에, 빨래 정리까지 집안일을 아내와 함께하는 편이라 가끔 아내의 외출 시에도 아내의 짧은 빈자리 정도는 제가 매우는 편이죠.
가부장적인 아빠를 지양하는 제가 가끔은 대범하게 넘어가거나 모른척했으면 하는 일이 생길 때가 있어요. 아이들이나 아내 입장에서는 잔소리가 심한 아빠들은 인기가 없잖아요. 해서 가끔 한마디 하려다가도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들을 삼킬 때가 많죠. 그러다 참지 못하고 나오는 잔소리에 아내나 아이들은 가끔 서운해하거나, 삐치기가 일쑤죠. 거기에다 드라마 볼 것들은 요일별로 미리 정해두고 예약까지 해놓는 편이에요. 특히 드라마 나올 시간에는 TV 앞에 앉아 일체의 움직임도 없이 방해받는 걸 싫어하죠. 이런 모습들을 보면 아이들이나 아내는 우리 집에는 엄마가 둘 있다는 농담을 곧 잘합니다.
아내는 천상 여자까지는 아니어도 연애할 때나 결혼해서나 아름다운 여성이에요. 하지만 이런 아내가 저보다 남성적(?)인 매력을 뽐낼 때가 있어요. 집안일을 할 때가 그렇죠. 집에 못을 박을 일이 생기던가, 전등을 바꿔야 할 일이라던가. 보통은 집안에 남자가 해야 할 일들을 아내가 척척해 낼 때가 있어요. 물론 남자가 보통은 해야 할 일을 제가 잘 못하거나, 제가 한 일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 아내는 그런 모습을 자주 보여요. 거기에다 어릴 때부터 집안에서 농사일을 자주 돕던 아내는 호미나 괭이, 낯질이 익숙한 편이죠. 얼마 전에도 화단에 꽃씨를 심으려고 호미질하러 나갔다가 아내의 호미질을 하는 모습을 보며 전 기가 팍 죽어 버렸죠.
얼마 전 책에서 본 이야기가 생각나 퇴근해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얘기를 해줬어요.
"남자, 여자의 여성성, 남성성을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고 하네. 얘들아, 영희 씨 손바닥 펴봐요."
"어느 손? 오른손이요, 왼손이요?"
"당연히 오른손이지. 오른손 펴서 두 번째와
네 번째 손가락 길이를 재봐."
"어느 쪽이 길어야 되는데요?"
호기심에 아이들과 아내는 모두 제가 시키는 대로 했고, 전 그 결과에 대해 설명을 했어요.
"남성성이 강하면 두 번째와 네 번째 손가락의 길이가 거의 같거나, 네 번째 손가락이 더 길다고 하네요. 물론 반대로 두 번째 손가락이 길면 여성성이 강한 거겠지."
둘째는 확연히 네 번째 손가락이 짧아서 자신은 여성성이 강하다고 얘기했지만, 길이를 재보던 아내는 냉큼 손가락을 접더라고요. 슬며시 장난기가 발동한 저는 아내에게 다시 손가락을 펴 볼 것을 권했고, 이내 아내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한마디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