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애주가이다. 그것도 집을 좋아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그런 애주가이다. 집과 가족을 좋아하는 애주가이다 보니 난 혼술도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원래부터 혼술을 좋아하는 부류는 아니었다. 내 첫 혼술의 역사를 돌아보면 처음 직장에 입사해서 첫 월급을 타고나서 그 기쁨에 조금 도취되어 시작한 게 혼술의 시작이었다.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잘 나가는 성공한 직장인들이나, 낭만을 알고, 외로움을 즐기는 샐러리맨들이 곧 잘하는 혼술 방송을 보면서 가끔씩은 그 멋짐을 동경할 때가 있었다.
지금은 혼술, 혼밥족이 트렌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일반화되어 있지만 그때 당시에는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먹는 데는 꽤나 큰 용기가 필요했었다. 어찌 되었든 처음 자취하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은 목살 소금구이 식당이 있었고, 처음 가서 2인분을 시키고 혼자 앉아있을 때 사장님이 와서 술을 따라주고, 다음부터는 혼자 오면 1인분을 시켜도 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날 정도로 나의 첫 혼술 기억은 따뜻하게 그 날을 추억하고 있다. 가끔 가는 단골 식당이었지만 그것도 채 1년이 되지 않아 결혼과 동시에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면서 기억 속에만 머무는 식당으로 추억하고는 한다.
어찌 되었든 이렇게 혼술 한 적을 빼고는 대부분 직장 동료들과 아니면 친구들과 만나서 술 먹는 게 대부분이었고, 주말에만 아내와 가끔씩 한 잔 하는 게 보통이어서 혼술은 내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고, 나이가 들면서 사회적 활동도 많이 줄고, 행복한 가정만큼 편한 장소가 없다 보니 난 퇴근할 때면 한 손에 맥주병이나 맥주 페트를 들고 퇴근하기 일 쑤였다. 1일 1병이 기본이 된 지가 꽤나 오래전 일이었다. 처음엔 700ml 용량의 병맥주를 마셨는데, 아내가 한 잔씩 뺐어 먹다 보니 조금씩 양이 아쉬워지기 시작했고, 어느샌가 1,000ml 페트병을 마시기 시작했다. 가끔씩 잦은 음주 때문에 아내의 잔소리가 있었지만, 아내도 과음을 하지 않는 음주 스타일 때문이었는지 잠깐 잔소리하고 나면 더 이상 길게 얘기하지 않아 내게는 크게 스트레스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급성 췌장염에 무릎, 발목, 팔꿈치 염증 제거 수술까지 하면서 건강에 적신호를 받다 보니 개인적으로 건강을 우선하여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꽤나 긴 시간 동안 술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술을 완전히 멀리하긴 어려웠고, 1년이 넘는 긴 시간의 금주를 깨면서 요즘 부쩍 혼술이 늘고 있다. 이런 혼술 습관을 아내는 늘 걱정하는 말을 했지만, 재작년부터 회사에서 힘들었을 남편을 생각해 그렇게 심한 말로 잔소리를 하진 않았다.
최근에는 1주일에 5번은 혼술을 하는 것 같아 스스로도 나름 줄여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지만 매번 이런 생각들은 잠깐의 유혹에 넘어갔고, 이렇게 하루하루 보낸 시간이 꽤나 길어져 가는 어느 날이었다.
딸아이는 젤리를 너무 좋아한다. 마트를 가거나 외출을 하거나, 여행을 가거나 항상 한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젤리. 좋아하는 젤리도 다양하고, 젤리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갖고 있다. 하지만 어느 날엔가부터 젤리를 집에 사 오라는 얘기도, 자신이 사 오는 일도 없어서 궁금한 나머지 난 딸아이에게 물어봤다.
"지수야, 요즘 젤리 안 사 먹어?"
조금은 뚱한 표정으로 딸아이는 내게 답을 줬다.
"아빠, 나 요즘 째째(딸아이는 젤리를 이렇게 부른다) 끊었어."
"왜? 갑자기... 젤리가 이제 입에 안 맞아? 아니면 어디 안 좋다고 TV에 나왔어?"
"응, 칼슘 흡수를 방해한데, 나 요즘 살 찌우기, 키 키우기 하고 있잖아. 잘 참고 있는데 아빤 생각나게 왜 얘기하고 그래."
난 딸아이가 한 편으로는 대견하고, 또 한 편으로는 부러웠다. 이렇게 참고, 견뎌낸 지 한 달이 지난 어제 딸아이는 내게 제안을 했다. 물러서기 어려운 무거운 제안을.
" 아빠, 나 이제 째째(젤리) 완전히 끊었으니 아빠도 술 줄이자. 아빠 건강 생각해서."
아이의 진심 어린 걱정이 따뜻했고, 아이의 제안이 고마웠다.
"그래, 지수도 그 어려운 걸 했으니 아빠도 일주일에 두 번으로 줄일게."
"아빠, 약속했다. 근데 정 참기 힘들면 얘기해. 그럼 두 번 반 정도로 가끔은 봐줄게."
아내의 걱정 어린 잔소리도 나의 혼술에 대한 의지(?)를 꺽지 못했는데, 젤리 먹는 습관을 스스로 바꾼 아이의 의지 앞에서는 어른으로서 더 할 말이 없었다. 딸아이와의 무거운 약속 앞에 스스로가 절주를 결심하게 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