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좋아하세요?

정태현 님의 『여행은 결국, 누군가의 하루』 소개드려요

by 추억바라기

사무실 근처 YES24 중고서점에 방문해서 책을 보고, 책을 사는 것이 월례행사처럼 나의 루틴이 된지는 이제 수개월쯤 된 듯하다. 예전에는 집 근처 알라딘에 자주 가서 책을 샀지만, 최근에는 가끔 이리 업무시간에 답답한 머리를 조금 식히며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보며 고르는 이런 일탈 아닌 일탈이 짜릿하고 즐겁다.


오늘 소개할 책을 만난 것은 작년 8월 말. 사려던 책을 고르고, 다가오는 계절이 가을이라 시집 아니면 에세이 한 권을 더 고를 생각으로 에세이를 모아놓은 책들 앞에 섰다. 워낙 이름 있는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이름이 낯익은 에세이 제목들이 많이들 책장에 꽂혀 있었고, 그 책들 대부분도 주인을 기다리듯 다소곳이 꽂혀있는 모양들이 이뻐 보였다. 하지만 중고책의 묘미인 가성비가 조금(?) 아쉬웠고, 가격대가 맘에 들어 고르려던 책들은 책을 펼쳐보고 조금 읽는 순간 나의 마음을 조금 서운하게 했다.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온 책 제목이 있었고, 책을 펴보는 순간 여행이라는 테마로 써졌지만 이야기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조금 설레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책을 집었을 때 종종 있는 일이지만 이 익숙함은 항상 나를 기분 좋게 한다.


나는 눈을 감고 긴 여행의 처음을 떠올렸다. 그리고 집착을 벗어던진 내가 여행길들을 걸어가는 걸 상상했다. 마지막으로 바라나시에서 만난 남자의 말을 떠올렸다.
"집착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나는 한없이 홀가분해진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불안은 내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자 어디선가 나타난 환한 빛들이 나를 감싸는 것 같았다. 황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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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날 기분 좋은 설렘으로 인도한 책의 제목은 『여행은 결국, 누군가의 하루』이다. 책에서도 읽히듯이 저자는 큰 결심을 하고 긴 여행을 떠났지만 여행을 끝낼 무렵 비로소 깨달은 그 무엇이 여행을 통해 무언가 성장하려고 하고, 깨달으려 하고 그리고 뒤처지지 않으려고 한 자신을 내려놓으며 여행은 그냥 나에게도, 그 누군가에게도 하루, 하루 일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들었고, 일반적인 여행 에세이와 차이가 있었던 것은 저자는 500일간의 세계 여행을 하며 여행지에 대한 소개나 역사에 치중하는 일반적인 여행 에세이와는 다르게 방문한 나라에서 생겼던 일상이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 읽으면서 느끼지 못했을 만큼 여행 에세이라기보다는 그냥 단편소설을 읽은 느낌을 받았다.




"이보게, 젊은이. 내가 영국에서 안나푸르나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렸을 거라고 생각하나?"
"글쎄요. 12시간 정도 걸리지 않았을까요?"
내 대답에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이곳에 오기까지 30년이 걸렸다네."
할아버지가 안나푸르나에 와야겠다고 생각한 건 30년 전이었다. 잡지에 소개된 아름다운 안나푸르나에 반해 그 사진을 오려 액자에 넣어두고 저곳에 가야지라고 생각한 게 30년이 되었다는 것이다. 오랜 소원을 이뤘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튿날 만난 할아버지는 한없이 슬퍼 보였다. 도대체 할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할아버지, 왜 그렇게 슬퍼하세요? 평생 오고 싶던 곳에 오셨잖아요."
"다리가 움직이질 않아. 이젠 너무 늙었어. 더 이상 올라가는 건 무리야. 방금 짐꾼과 이만 내려가기로 결정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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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나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의 전체의 내용은 이렇다. 젊은 시절에는 올 수 있는 기회가 많았는데 휴가 때마다 안나푸르나에 가자고 하면 와이프가 항상 반대하고 간 곳이 지중해의 근사한 호텔이 있는 따뜻한 섬이었다고 한다. 시간이 좀 날까 싶을 때면 회사에서 꼭 중요한 일이 생겨서 못 오고, 다시 결심이 섰을 때는 자식들이 결혼을 해서 못 오고. 결국 은퇴를 하고, 지중해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와이프와 이혼하고 나서야 소원을 이루었지만 결국 나이가 너무 들어서 왔더니 눈앞의 소원을 두고는 오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삶과 너무도 닮고, 아프다는 생각이 든다. 살면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바로 우리들의 삶 말이다. 나중에 여유가 되면, 시간이 되면 등등과 같이 자기 합리화와 타협을 통해 우리는 이 할아버지와 같은 인생의 회환을 느끼는 어느 날 비슷한 후회를 할까 두려워진다.


"그럼 시가는 어떤 식으로 피워야 해?"
"아이고, 이 친구야! 시가를 피우는 데 방법이 뭐가 있겠어? 자본주의식 멋을 버리라고. 어떠한 일을 어떠한 식으로 해야 한다는 규정 따위는 버리라는 말이야. 시가는 말이지. 어떻게 피우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야. 그냥 시가 자체를 즐기면 되는 거지."
아, 이게 바로 쿠바의 멋이구나. 나는 조심스럽게 셔츠 단추를 잠갔다. 쿠바의 멋을 알기에 나는 덜 섹시했고, 스페인어도 잘 못할뿐더러 어울리지도 않는 멋을 부리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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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배우 이재훈과 류준열이 쿠바 배낭여행을 하면서 촬영한 예능이 방송에 나왔었다. 사실 쉽게 가볼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고, 여행에 대한 동경이 항상 크던 나는 이런 여행 관련 방송이 나올 때면 마치 내가 여행을 함께 다니고 있는 양 매우 설레 하고, 흥미로워하는 경향이 있다. 위 글은 작가가 쿠바에서 만난 어떤 나이 든 사람과의 에피소드다. 저자는 불을 빌려달라고 하는 현지 쿠바인에게 라이터를 줄까 하다가 시가를 피울 때는 성냥으로 피워야 맛도 좋다고 아는 체를 하다가 현지인에게 제대로 면박을 당하는 상황이다. 쿠바는 아메리카 대륙의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이다. 이런 쿠바는 귀한 것들이 참 많다. TV에서 봤을 때 올드 카들의 천국인 것을 보고 참 재미있고 신기한 나라구나 싶었다.


위에서 얘기한 쿠바 현지인의 이야기는 작가뿐만이 아닌 나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틀에 박힌 생각, 옳고 그름의 기준을 살아온 관념, 사회적 통념을 가지고만 바라보는 시각들에 일침을 가하는 한 마디였다. 작가의 말처럼 이 책에서 쿠바의 멋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말이죠. 여행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두 분도 이렇게 여행을 떠나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 결정에도 책임이 따른답니다. 아마도 그게 지금 그쪽 마음속에 있는 고민들과 두려움들이겠지요. 여행을 하면서 그걸 이겨낼 방법을 찾아보세요. 여행을 마치기 전에 어떤 것이든 좋습니다. 이전보다 굳건해진 용기도 좋고, 새로운 사업 아이템도 좋고, 그저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깨우치는 것도 좋습니다. 저 역시 아직 여행을 마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생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요. 참 그거 아세요? 여행은 시작하는 것도 어렵지만 끝마치는 것도 무척 어렵다는 사실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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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공감이 되었다. 정말 여행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여행인 거 같다. 쉬운 결정은 아니지만 결심만 서면 여행은 특정인의 특권이 아닌 누구에게나 주어질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여행은 삶에 있어 큰 축복이고, 큰 배움이다. 여행을 자주 다니지는 않지만 여행을 갈 때마다 항상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렘이나 경험해보지 못한 곳의 음식, 자연 그리고 역사 등의 물질적인 것만을 동경하고 쫓았다면 이제는 작가와 같이 새로운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사람들 사는 이야기나 사람들과의 인연을 쫓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여행은 결국 우리의 하루이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였지만 작가가 이야기하고 느꼈던 깨우침이 온전히 이 책을 통해 전해오는 것 같다.

http://m.yes24.com/Goods/Detail/1290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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