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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May 18. 2020

오늘 난 그곳에 가고 싶다

행복은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다

내가 살았던 고향은 남쪽이었지만, 내 머리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어릴 때 기억은 바다가 있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동해안에 위치한 시골이었다. 난 5살 때부터 유치원에 다녔고, 내가 5살 때면 70년대 후반이니 차량도 많지 않았고, 사람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 기억 속의 5살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는 꽤나 활기차고, 유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에는 유치원 통학 버스 같은 게 있지도 않을 때여서 어린 나이에도 유치원까지 혼자 걸어 다녀야 했었다. 아마 이렇게 일찍부터 유치원을 다녔던 이유는 고향을 떠나 강원도 먼 땅으로 이사오며 아버지는 그곳에 자리를 잡기 위해 꽤나 열심히 셨고, 어머니는 몸이 많이 약하신 편이어서  24시간 돌보며 건사할 체력이 안되셨던 것 같았다. 당시 기억으로는 유치원까지 걸어서 얼마나 걸렸는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지금 지도상으로도 1.3~1.4Km 정도 거리에 도로 사정은 지금보다 더 안 좋았을 테고, 5살짜리 아이의 걸음으로는 40분 이상은 소요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 부모님은 무슨 배짱으로 5살짜리 어린 자식을 이 먼 거리 통학을 시켰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기는 하다. 하기는 그때엔 다 그랬을 것 같다.


   아무튼 이 먼 거리를 다니며 그래도 사고 한 번 안 나고 무사히 다닌 게 정말 신기하긴 하다. 집에 가는 길이 지금처럼 인도, 차도가 잘 구분된 길도 아니었고, 집까지 오는 길에 항이 있어서 걸어오는 우측으로는 400 ~500미터가 바다였다. 나도 자식 키우는 입장으로 생각해보면 내가 집에 오기 전까지 어떻게 살 떨리게 기다리셨는지 모르겠다. 부모님 말로는 그 당시에는 아이들을 모두 그렇게 키웠다고 한다. 아버지 얘기로는 하굣길 집에 돌아가는 나를 보고 동네 어른들이 몇 번을 쫓아와 흔들어 깨워서 보낸 적도 여러 번이라고 했다.

 

  "철수야, 유치원 끝나고 이제 가는 길이냐?"

  "......"

  "철수야~, 철수 이놈아!  아이코, 저 녀석 졸고 가네. 이봐, 김 씨 아들 졸면서 가네. 누가 얼른 가서 철수 좀 깨워서 보네."

  

   유치원을 2년 다녔으니 이런 일이 한, 두 번은 아녔을게 자명했다. 이렇게 유치원을 졸업하고, 7살부터 다닌 초등학교는 그 당시 우리 집과 초등학교 딱 중간지점에 다녔던 유치원이 있었다. 말인즉슨 초등학교(그 당시 국민학교)까지의 거리가 유치원 등하굣길의 곱절의 거리라는 사실이다. 지금 지도상으로는 2.2~2.3Km 정도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때만 해도 학교까지 40분은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만 해도 학교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집에까지 서둘러 뛰어간 적도 여러 번이었고, 등굣길에 화장대 위에 놓여있던 100원짜리 한 개를 엄마 몰래 가지고 나와 하교하면서 아이들과 군것질을 했던 기억도 많이 나곤 한다. 그때는 남자아이들도 반바지를 많이 입었고, 흰색 스타킹 위로 짧은 팬츠를 입고 다녔던 모습이 자꾸 생각나 그 당시야 트렌드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패션 테러리스트급 복장을 입고 다녔다는 생각에 갑자기 그리 입혔던 어머니가 조금은 원망스러운 생각이 든다. 사실 이런 복장(반바지 안에 팬티스타킹을 입은 구조)때문에 곤욕을 치른 적이 여러 차례였다.


  "철수야, 이제 집에 가냐? 많이 늦었네. 그런데 얼굴은 왜 그렇게 빨개. 어디 아프니?"

  "아, 안녕하세요. 아뇨. 화장실이 급해서요. 쌀 거 같아요. 안녕~히~(후다닥~)"


   동네 어른들이 지나가는 나를 보고 알은체를 했지만 정작 나는 화장실이 급한 나머지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얼굴이 벌게져서 집에까지 울상이 되어 급하게 뛰어간 적도 많았다. 정말 그 반바지, 롱스타킹 패션은 지금 생각해도 아니었다. 난 학교 운동장에서 놀다가 화장실을 못 가고 집에까지 40분을 뛰었으니 아마 싸기도 여러 번 쌌을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만 해도 몸이나 생각은 유치원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유치원 때에는 유치원 선생님들이 화장실부터 식사까지 전부는 아니어도 부모님 대신 많이 챙겨줬던 기억이 나는데, 초등학교 때에는 선생님이 마냥 어려웠고, 무서웠다.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손드는 일도 왠지 무언가 잘못해서 혼날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초등학교 때까지 그 동네에 살았고, 중학교에 입학하며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하고 나서는 좀처럼 자주 찾지는 않았지만 10여 년 전에 그곳을 가보고는 흘러간 시간만큼이나 그곳도 많이 변했음을 알았다. 오스카 레번트는 '행복은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추억하고 싶은 행복들은 내 기억 속에 있고, 그 행복을 떠올리는 지금 내게 찾아온 것은 그 하루하루의 기억 조각들이 모인 것임이 느껴졌다. 내가 살던 집이 있던 곳에는 횟집이 들어섰고, 그 옛날 아이들과 뛰어놀던 학교는 새단장을 해서 그때 모습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지금은 그 길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많지 않고, 그때와 같이 시골 바닷길 같은 모습은 남아있지 않지만 그 길을 바라봤던 내 마음에는 어린 시절 얼굴 빨개져 뛰어가던 내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아 괜스레 마음이 찡해지는 하루였다.


 나이가 먹어서일까, 오늘 난 그곳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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