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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May 20. 2020

아들 끝날 때까지 끝난 거 아닌 거 알지?

아들과의 소중한 시간은 덤이죠

우리에겐 끝나기 전에 끝나길 원했던 경기였다. 하지만 거짓말같이 그 경기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경기가 아니었다.




우리 가족은 프로야구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아니 좋아했다. 나의 팬심으로 아이들은 커가면서 사실 세뇌 아닌 세뇌가 되어 프로야구를 좋아하게 되었고, 특히 큰 아이와 난 야구를 이야기할 때엔 꽤나 많은 나이 차이를 넘어 친구같이 신나 하며 곧잘 소통하고는 했다. 우리가 그리 야구에 빠졌던 여러 해는 우리가 응원하는 삼성 라이온즈가 우승팀다운 면모로 수차례 우승도하고, 전성기의 강호 같은 모습을 보일 때였다.


  해마다 경기장은 여러 차례 찾아가는 편이었지만, 우리에게는 프로야구 관람 중 경험하지 못한 두 가지가 있었고, 항상 그 두 가지에 갈증 나 있었다. 물론 이 글을 쓰는 현재 시점 기준으로는 그 두 가지 모두 경험한 상태이고, 그 두 가지 중 한 가지 이야기를 지금 써 내려가고 있다. 그 첫 번째가 응원하는 홈팀인 삼성 라이온즈의 홈구장에서 관람하는 것과 나머지가 가을 야구를 직접 야구장 가서 구경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3년 전 아내의 결혼기념일 깜짝 선물로 라이온즈 파크에 가서 관람을 했고, 두 번째는 2012년에 아들과 함께 꿈을 이뤘다.


   2012년 인천 문학 경기장에서 SK 와이번스와 삼성 라이온즈 간의 한국시리즈 3차전 경기가 바로 그 꿈을 이룬 경기였다. SK 그룹사에 다니던 동생 덕에 아들과 둘이서 문학 경기장을 찾았다. 경기장을 가는 내내 커지는 긴장감과 기대감은 아들의 얼굴에도 고스란히 비쳤고, 내 얼굴도 아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했다. 경기장을 입장하면서 그 열기와 흥분은 고스란히 몸과 마음으로 전달되었고, 가을 야구 특히 한국시리즈를 하는 경기장을 찾은 건 처음이라 더욱 그 흥분과 열기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들과 난 좌석을 찾아 들어갔고, 자리에 앉고 나서야 그 생동감 있는 현장에 우리가 앉아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요일 낮 경기라 10월 말임에도 따가운 햇볕은 우리를 더위에 빠트리기에는 충분한 날씨였다. 하지만 그리 따가운 날씨도 이내 잊힐 만큼 흥미진진한 경기가 경기장에서는 펼쳐졌고, 우리가 홈팀에 와서 원정팀을 응원한다는 것을 망각할 정도로 삼성의 초반 경기력은 뜨거웠다. 3회 초 경기에서 6점을 내며 6대 1의 상황을 만들었고, 아들과 난 흥이 한껏 올라 '살살해라', '내일은 져야지 재미있겠다'는 등의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이내 이런 흥분된 분위기는 불안으로 바뀌었고, 야금야금 점수차를 좁히던 SK가 결국 6회에 6점을 몰아내며 역전에 성공했다. 아들의 표정은 이내 어두워졌고, 난 아들을 위해서라도 삼성이 다시 한번 경기를 뒤집기를 간절히 바랐었다. 하지만 우리의 첫 한국시리즈 관람기엔 또 다른 이변이 생기지는 않았다.  결과는 쓰디쓴 참패 12-8로 경기는 마무리되었다.


   이 경기를 보면서 우리를 포함한 삼성팬들과  SK를 응원한 팬들은 모두 대단한 경기를 관람했으면서도 상반된 감정을 느꼈다. 우리는 초반 우세했던 경기 분위기를 지켜내지 못한 답답함을, SK 팬들은 초반 열세였던 경기 분위기를 후반 뒷심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몰아붙여 결국은 결과를 뒤집은 통렬함을.  하지만 양측 응원 팬들 가슴에는 한 가지 공통된 문구가 떠올랐을 것이다.


   "경기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아들과 난 일요일 1시간 30분이란 긴 시간을 할애해 지하철을 타고 간 경기장에서 실망스러운 결과 때문에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그날 우리에겐 세 가지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첫째가 그리 가고 싶어 했던 한국시리즈 경기를 관람한 것이고, 둘째가 포스트 시즌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그리 큰 점수차의 역전 경기를 관람한 것이고(물론 우리가 응원한 팀이 이겼으면 더 좋았겠지만), 마지막은 경기 과정과 결과에서 보여주듯 '모든 일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경기였다.  그 날의 결과가 어찌 되었든 난 그 날 아들과 뜨겁던 가을 하루, 자주 오지 않을 아들과 둘 만의 데이트를 했다. 밖에 나와서 한 목소리로 크게 응원했고, 치킨에 피자를 먹으며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음에 더욱 감사했던 하루였다.


  시리즈는 우리가 본 경기 다음날(4차전)에도 삼성이 패해 2승 2패로 연패를 한 삼성이 분위기가 더욱 열세였지만 2연패 이후 2경기를 연승하며 결국 삼성의 4승 2패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사실 집에서 4차전을 응원하던 우린 그해에 우승을 놓칠 줄 알았지만, 그 날 경기장에서 배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의 결과가 시리즈 전체에서도 그 의미를 여실히 보여주며 2012년의 프로야구의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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