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억바라기 May 25. 2020

아버지를 닮았으면 좋았을 텐데요

아버지의 넓었던 등이 좁게 보인 날

"아버님이 젊었을 때 굉장히 미남이시네요. 철수 씨는 어머니를 닮은 것 같네요.(아쉽게도)"




오늘은 아버지 이야기를 잠깐 꺼내볼까 해요. 아버지는 한창나이 때 꽤나 미남 소리를 들었어요. 오죽하면 아내가 연애 시절에 아버지 반만 닮았어도 잘났을 텐데 아쉽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였으니까요.


 30,40대 때 아버지는 사업 운과 수완도 좋으셔서 하시던 사업도 잘 되셨고, 논리적이셨고, 생각도 열려계셨고, 합리적이셨던 분으로 기억해요. 그 당시 제 친구들도 아버지가 신세대시고, 생각이 젊으시다고 많이 부러워도 했었죠. 하지만, 지금은 나이가 드셔서 그런지 고집도 세지시고, 합리적인 성향도 많이 없어졌어요. 아버지를 디스 하려는 의도는 아니에요. 이런 모습들은 저의 아버지에게만 나타나는 성향은 아닌 듯해요. 나이가 드시면 어른들이 스스로의 존재감이나 자존감을 높이는 형태인 거 같아요.


 예전엔 어머니가 아버지를 꽤나 걱정하셨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어요. 예전 아버지 사진을 보면 그럴 법도 한 게 80년 대면 아버지 나이로 30대 중, 후반 나이고 그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아버지의 패션은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을 정도예요. 세련된 체크 셔츠에, 구김 없는 면바지 그리고 지금 젊은 사람들이 많이 신는 스니커즈 신발까지. 멋쟁이셨더라고요. 저도 그 시절 아버지 모습이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머니 돌아가시고 사진 정리하며 예전 사진을 보고는 알게 됐어요. 아버지는 그런 분이셨더라고요.


 아버지가 40대 때에는 전 대학 생활과 군대 입대로 집에서는 꽤나 멀리 떨어져 있었고, 그런 이유로 아버지가 한참 사업하실 때는 함께 있지 못했지만 동생의 제보에 따르면 아버지가 밖에서 술이라도 한잔 하고 오는 날이면 그날 어머니는 바가지를 박박(?) 긁으셨고, 아버지가 벗어놓은 재킷이나 셔츠에 혹시나 있을 부정의 흔적을 찾고는 했다고 하더라고요. 남편이 잘 나서 어머니 딴에는 꽤나 걱정이 되셨나 봐요. 심한 날은 재킷에 향수 냄새 같은 게 날까 싶어서 코까지 가져가 맡고는 했다더라고요.


 어릴 때는 아버지가 무척 자상하셨던 기억이 있지만, 많은 시간을 아버지와 보내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어머니의 건강 문제로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정착하려다 보니 아버지 나름대로 많이 바쁜 것도 있었고, 30대의 남자면 친구들을 좋아할 나이여서 술자리도 종종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술자리 때문에 전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이가 좋은 줄 모르고 자랐어요.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오는 날이면 어머니가 싸움을 거는 통에 어린 마음에는 술 드시는 아버지가 미운 적도 있었죠. 사실 술을 드신다고 폭력적이거나 사람이 달라지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말이죠.


 그렇게 나이 드시며 40대가 되시니 어느 정도 지역에서 자리도 잡으시고 조금은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부모님은 사이좋게 부부 동반으로 함께 자리하는 일이 많아졌고, 그제야 저는 '우리 부모님이 원래는 사이가 좋았었나 보다'라는 쪽으로 생각이 미치게 됐죠. 이후로는 아버지가 사업이 어려워져도, 폐업을 했어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는 철옹성같이 흔들리지 않았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는 아버지는 자식들보다 더 오열하며 어머니를 쉽게 떠나보내지 못하시더라고요.


 올해로 일흔둘, 아버지의 지난 세월이에요. 저는 그 지나온 세월이 아버지 당신의 인생의 깊이로 고스란히 생각되네요. 아버지는 아직도 몸을 쓰는 일을 하세요. 요즘 백세시대라고는 하지만 일흔이 넘은 나이에 일주일에 4~5번씩 꼬박꼬박 일을 다니시는 아버지 소식을 들을 때면 대단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디 다치시지는 않을까 건강 걱정도 많이 돼요.

 아버지는 작년 한 해 동안엔 거의 일을 다니질 못하셨어요. 특히 어머니 돌아가시기 몇 달 전부터는 일 뿐만이 아니라 아예 어머니 옆에 딱 붙어 어머니 옆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셨죠. 그 시절이 제가 아는 아버지 얼굴에 그늘이 가장 드리웠던 시절이었죠. 가끔씩 어머니도 어머니였지만 아버지 건강이 더 걱정스럽기까지 했어요. 5년 동안 아프셨던 어머니가 버티실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든든하게 곁을 지키던 아버지 때문이셨을 거예요. 어머니의 마지막 1년은 곁에 없었던 자식도 힘들었는데 바로 곁에서 어머니의 손발이셨던 아버지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네요.


 그리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불평불만 없이 묵묵히 수발을 드셨는데 '인명(人命)재천(在天)'이라는 말이 맞나 봐요. 그리 완쾌를 빌며 아버지는 애썼는데 어머니는 아버지 곁을 떠나 먼 길을 가셨어요. 어머니를 마지막 보내며 오열하신 아버지를 보며 그 옛날 내게는 그렇게 넓어 보였던 아버지의 등이 이제는 칠순이 넘은 노인의 등으로 다시 보였고, 어느새 혼자가 되신 아버지가 그리고 당신의 어깨가 외롭게 들썩이는 게 무척이나 아파 보였어요.  20~30년 전만 해도 사랑하지만 어렵게 느껴졌던 아버지가 어머니 돌아가신 뒤부터 사랑하고, 걱정되고, 신경이 가는 존재가 된 것이 새삼 느껴지네요.


"아버지 가끔 고집 피우고, 저랑 티격태격해도 괜찮습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곁에만 있어주세요.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 끝날 때까지 끝난 거 아닌 거 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