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난 아내와 자주 하지도 않는 감정싸움을 벌였다. 요즘 들어 부쩍 아내나 난 많이 예민하게 서로를 대하는 것 같다. 마음으로는 항상 아껴주고, 예뻐해 주고, 사랑해줘야지 하면서도 정작 말 몇 마디 주고받다 감정선을 살짝 스치는 말들로도 표정이 어두워지고, 조금씩 말이 아파지는 일이 자꾸 생긴다.
아내와 난 이제 20년을 바라보는 중년 부부다. 난 남들이 이야기하는 갱년기가 그리 두렵지 않았고, 무엇보다 내가 더 아껴주고, 사랑해주면 어떤 감정싸움도 잘 이겨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나에게 찾아온 갱년기를 간과했고, 그냥 듣고 넘길 수 있었던 아내의 가벼운 말들도 그 날의 기분에 따라 일희일비 요동치는 내 감정에 난처할 때가 많아졌다.
어제도 아내를 칭찬해야 할 일이 있었지만 요즘 부쩍 서운한 감정이 많이 있어서 그런지 고맙고, 애썼다는 말이 입 안에서만 맴돌고 입 밖으로 나오지가 않았다. 때마침 아내의 투정 섞인 잔소리에 고맙고, 감사한 감정은 마음속 깊이 숨어버리고, 표정은 이내 굳어서 입을 닫아버렸다. 그나마 입을 닫아 뱉으려고 했던 나쁜 말들을 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조용히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며 마음을 잡았고, 스스로의 감정을 추스르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남아있던 감정까지 훌훌 털어내지는 못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내에게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을 건네려 했지만, 서스름 없이 털어버리기엔 6시간이 부족했던지 아니면 어제의 일이 부끄러웠는지 식탁에서의 서먹한 시간은 출근할 때까지 이어졌다.
털어내지 못한 찜찜한 기분을 안고 출근길에 나섰고, 이런 내 감정을 잘 아는 아내는 나에게 아내만의 사과 방법으로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출근길 보던 책도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쯤 아내에게 카톡이 왔고, 메시지를 여는 순간 난 내 못난 감정에 부끄러웠고, 어제보다는 밝은 모습으로 아내의 카톡 메시지를 들여다봤다. 아내가 보낸 메시지에는 예쁜 분홍빛 카네이션이 담긴 화분과 정성스레 쓴 딸아이의 편지 한 장이 있었다. 손글씨로 꼭꼭 눌러쓴 편지 내용에는 우리 가족처럼 행복한 가정에 태어나고, 자라게 해준걸 감사한다는 내용과 딸아이의 사랑한다는 따뜻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딸아이의 몰래한 이벤트에 출근하는 아침에 남아있던 모든 서운한 감정이 녹아내렸고, 아이 보기가 부끄러워진 마음에 아내에게 이내 사과하고 마음을 열었다.
"이런 예쁜 내 새끼들 봐서 우리 더 예쁘게 살아요.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영희 씨"
아내도 진심 어린 내 마음을 알고, 정말 물로 칼 베기 아니 칼로 물 베기 같은 부부싸움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네~'라는 짧지만, 우리 부부만의 사랑과 평화의 모스 부호 같은 메시지로 내 출근길을 더 가볍게 해 줬다. 기특한 딸아이가 힘들었을 하루를 가볍게 해 줬다는 생각에 입가에 번지는 행복함이 쉽게 떠나지 않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