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린 시절 바다가 있는 시골에 살았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 큰 해일로 동네가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은 적이 있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하굣길에 선생님의 당부가 있으셨다. 부두 근처에 사는 학생들은 특히나 해일에 피해를 입지 않도록 신신당부를 하셨고, 난 초등학교에 다니던 그 시절에는 우리 집도 부두 근처에 있다 보니 선생님의 당부에 시원하게 대답하였다.
그날은 오전에 바닷가에 해일이 일어서 항구에 배들도 바다로 나가지 못했고, 오전까지는 비도 오고, 바람도 많이 부는 좋지 않은 날씨였었다. 하지만, 하굣길은 어느새 바람도 잦아들고, 한쪽 하늘은 궂었던 날씨를 비웃기라도 하듯 파란 맨 얼굴을 드러냈다.
그래도 선생님의 당부가 있었던 터라 평소에 다니던 부두를 우측에 끼고 가는 하굣길 대신 작은 구릉을 끼고 바닷가를 높이서 바라보는 산길로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의 설득도 있었고,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해일의 광경을 호기심 가득 찬 내 눈에 담고 싶은 마음에 아이들 손에 못 이기는 척 이끌려 평소 가던 하굣길로 귀가했다.
집에 가는 내내 바닷물이 범람해 피해를 입은 부두 근처 점포에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연신 바닷물을 퍼댓고, 그리 퍼낸 물들이 도로 위를 빠져나가는 광경이 신기해 신발이 젖는 줄도 모르고 마냥 신나 했었다. 철이 없었던 어린 시절이라 점포에서 물을 퍼내는 사람들의 아픔은 안중에도 없이 아이들은 해맑게 웃으며 발에 차이는 짠내 나는 도로 물 위를 첨벙 대며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었다.
요즘은 건조주의보에 비가 와도 정말 눈곱만큼 내리기 때문에 비가 오더라도 길 위로 쏟아지는 물들을 좀처럼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쏟아지는 비와 눈으로 도로가 마비되고, 교통이 혼잡한 일들이 많았는데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태풍이 아니고서는 장마 때에도 그리 많은 비가 퍼붓는 걸 본 적이 별로 없다.
내가 어릴 적에는 집중호우도 잦았고, 폭설도 종종 있어서 심심할 틈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동네 이곳저곳이 비나 눈이 오면 놀이터였고, 그 당시에는 배수 시설이 좋지 않아 비가 조금만 퍼부으면 골목 따라 곳곳이 개천이 되고, 이렇게 생긴 빗물 개천 때문에 골목을 따라 흐르는 물 위를 첨벙거리며 동네 아이들과 뛰어놀았던 추억이 생각이 나곤 한다.
어쩌다 골목 위로 물이 넘쳐 우리 집 마당으로 물이 들어오는 날이면 아버지는 골목으로 물을 퍼대기 바빴지만 마당 안으로 들어온 물이 마치 자연이 만들어 준 수영장인 양 티 나지 않게 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바지를 적시고, 소매를 적시며 놀고는 했었다.
지금도 가끔은 도로 위 물이 고인 웅덩이나 맑게 흐르는 실개천을 볼 때면 어릴 적 추억이 생각나 입가에 미소가 번질 때가 있다. 지금은 그렇게 고인 물 위를 첨벙거리며 뛰어 놀 나이는 아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아이들이 그 옛날 내가 장난치고 놀듯이 그렇게 노는 모습이 좋았다.
지금도 도시 곳곳에 뿜어져 나오는 분수가 있는 곳에 가면 작은 아이들이 그 옛날 어릴 적 내가 뛰어놀던 그 웃음 그대로 물 위를 활보하며 즐겁게 뛰어노는 모습을 종종 본다. 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같은 웃음을 보이는 데자뷔 같은 일상이 보는 내내 웃음을 짓게 한다. 시간이 꽤 지났어도 달라지지 않은 행복한 웃음에 나도, 그 모습을 보는 모든 이도 행복해지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