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가끔씩 먹기는 했지만 그렇게 자주 우리 가족의 밥상에 올라오지는 않았던 어머니의 '홍새우무침', 어릴 때 입맛으로는 크게 호감 가는 음식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요리 자체가 새우를 날 것으로 간장과 고춧가루를 기본양념으로 무쳐서 내는 음식이라 식감도, 맛도 아이들 입맛에 적합한 음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부모님은 내가 중, 고등학교 시절 장사를 하시느라 두 분 모두 바쁘셨고, 아침을 제외하고는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 물론 집에는 어머니의 손길이 아직은 필요한 나와 동생이 있어서 어머니 대신 집안일을 봐주시는 이모님이 계셨고, 저녁은 항상 이모님이 차려주는 밥상을 동생과 둘이서 먹거나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혼밥 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두 분은 바쁘게 사셨고, 난 정작 어머니의 음식 솜씨도 잘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어머니가 챙겨주는 밥을 학창 시절에는 자주 먹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고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어머니가 하시던 점포도 자연스레 넘어가고, 아버지의 사업체도 강제 정리가 되었다. 하시던 일이 갑자기 없어져 어머니가 밖으로 도는 시간은 많이 줄었고, 어머니가 해주는 밥상을 당연하게 받는 날이 오게 되었다. 물론 그 당시 난 대학교 졸업과 취업으로 시골집에 내려가지 않고는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을 수가 없었지만 집에서 학교를 다니던 동생은 매일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는 호강을 누렸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머니의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했던 게. 아버지 말로는 어머니가 안 해서 그렇지 원래부터 음식을 잘했었다고 한다. 동생은 내가 집에 오는 날에는 어머니가 밥상을 더 신경 쓰는 것 같다고 질투 섞인 핀잔을 했던 기억도 난다. 자주 챙겨주지 못하는 아들이 마음에 쓰였는지 내가 집에 온 날이면 어김없이 어머니표 특제 소고기 찌개와 없는 살림에도 어시장에 나가 신선한 회를 떠서 오시고는 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단연코 붉은 빛깔에 고운 곡선의 자태를 뽐내던 강원도산 홍새우요리였다. 어릴 적에는 그다지 기호음식은 아니었는데 무슨 조화를 부리셨는지, 아니면 훌쩍 성인이 된 내 입맛이 변했는지 어머니표 '홍새우무침'이 나오면 밥 한 공기에 새우무침 한 접시가 후다닥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일 정도였다.
예전 같으면 난 새우 하면 삶아 먹던가, 구워 먹는 게 고작이었는데 어릴 때 물컹하다고 느꼈던 식감은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절로 나오게 했고, 비릿한 맛을 느끼게 했던 새우살은 고소하다는 표현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거기에 어머니표 특제 양념에 무쳐 적당히 간이 밴 매콤하고, 조금은 단짠스러운 맛은 글을 쓰는 지금도 침이 꼴딱 넘어갈 정도다. 먹을 때마다 느꼈던 거지만 자주 하는 요리도 아닌데 할 때마다 어쩌면 그리도 같은 맛을 내는지 참 신기했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부도가 나고, 집안이 어려워진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갈 때마다 밥상에 올리기에는 녀석(새우)의 몸값은 꽤나 비쌌다. 그래서 그랬을까. 어머니는 당신의 주머니에 조금의 여유만 생기면 어김없이 새우를 사서 결혼한 아들에게 양념까지 싹 해서 보냈고, 이런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아버지가 바통을 이어받아 지금껏 홍새우가 잡히는 겨울철이 되면 홍새우를 사다가 양껏 얼려서 아이스 상자에 보내신다.
아버지의 부도로 결국 우리 부모님은 오랫동안 터전이었던 강원도를 등지고, 경상도로 이사를 하셨다. 어머니의 홍새우무침은 경상도로 이사를 가서도 계속되었고, 오히려 강원도 음식임에도 경상도에서 더 자주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릴 적 챙겨주지 못했던 자식에 대한 사랑이었을까. 결혼 전에 홍새우무침을 잘 먹는 아들이 머릿속 깊게 각인이 되셨는지 당신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단연코 어머니의 홍새우무침이라고 믿고 계셨고, 돌아가시는 그 날까지 그렇게 기억하셨다. 명절 때 부모님 댁에 내려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 날 저녁상에 홍새우무침을 내어놓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천재지변이나 집안 대소사가 있어서 새우를 못 먹여 자식을 보내는 날이면 무슨 큰일이 난 것처럼 당신 스스로 자책하며, 아파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하셨다.
어머니의 이런 고집스러운 새우 사랑은 아들이 결혼을 하고도 계속되었고, 결국 아내에게 어머니표 '홍새우무침' 레시피를 전수해서 당신이 없어진 빈자리에서도 좋아하는 새우를 가족이 그리고 당신의 자식이 먹을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까지 해놓으셨다. 어머니에게 홍새우무침 요리법을 전수받은 아내는 꽤 오래전부터 어머니를 대신해 우리 집 밥상에 추억과 그리움이 담긴 '홍새우무침'을 내어놓는다. 아내는 아직은 부족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양념이 벤 새우를 먹는 내 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새우살의 고소함, 부드러운 식감 그리고 적절하게 벤 양념의 조화를 느끼며 오늘도 크게 외쳐본다. 식전 기도나 주문과 같이 말이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오늘도 밥 한 공기, 새우 한 접시는 기본이겠네."
아주 맛있게 요리한 아내의 '홍새우무침'은 어느덧 어머니의 맛을 닮아가고, 어머니가 알려준 매콤 달콤한 양념은 아내의 손을 따라 적당한 그리움으로 무쳐지는 듯하다. 작년 연말 세상과 가족을 등지고 하늘로 올라가신 어머니도 맛있게 조리해서 내어놓은 아내의 '홍새우무침'을 보면 흐뭇해하실 것 같다.
레시피는 매거진 특성상 그리고 제가 요리한 게 아닌 아내의 요리라 약식으로 넣었어요.
진간장, 고춧가루, 설탕, 다진 마늘, 참기름, 쪽파, 앙파, 청양고추 그리고 당연히 머리 뗀 홍새우를 넣고 잘 무쳐주면 요리는 끝이에요. 양념의 비율은 가족들 입맛에 맞게 간을 맞춰가면서 넣으면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