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동생 내외가 오랜만에 집에 놀러 와 저녁을 먹고, 맥주를 한 잔 하고 있을 때 바닥에 내려놓은 폰에서 갑자기 진동음이 울렸고, 주말 늦은 시각이라 잘못 걸렸거나 혹시나 과거 지원했던 고객사에서 긴급해서 전화를 걸었을까 해서 조금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예, 김철수입니다."
"어, 나 형인데."
짧게 답하는 생소한 목소리에 난 조금 놀랐고, 목소리에 약간의 취기가 있길래 술 취해서 혹시나 잘못 번호를 누른 것이 아닐까 해서 다시 확인차 누구냐고 물었다.
"누, 누구세요?"
"야! 나 형이라고 새꺄!"
난 잘못 걸어서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을 기대하다가 갑자기 '새꺄"라는 욕설을 들었더니 더 당황했고, 조금 흥분되는 상황이 되었다. 난 조금 짜증 섞인 목소리로 재차 확인을 요구했고, 수화기 너머에 있는 상대방에게 조금은 예의를 갖춰달라는 말투로 쏘아붙였다.
"아니, 이 늦은 시간에 제가 아는 번호도 아니고, 신원도 밝히지 않고 다짜고짜 욕을 하시는 분은 뭡니까?"
"후~, 이 새끼 나랑 통화하기 싫은가 보다."
수화기의 목소리는 조금 멀게 느껴졌고, 수화기 너머의 상대방도 조금은 짜증이 났는지 아마 수화기를 떼고 옆사람에게 전화기를 넘기며 한마디 한 것 같았다. 조금은 익숙한 목소리로 들렸고, 머릿속 기억 속을 헤집고 떠오른 한 사람이 맞을 거라는 생각이 미쳤다. 조금은 미안했고, 그래서 더 당황스러웠다.
"어, 철수야. 민철이 형이야. 밤늦게 미안해. 정호 형하고, 정태하고 같이 있는데 형들이 옛날 생각도 나고 너 많이 보고 싶다고 해서 전화했어."
"아이, 뭐야 형. 아는 번호도 아니고 오랜만인데 전화해서 대뜸 형이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말은 이렇게 했지만 마음으로는 못 알아들어서 미안했고, 술 먹던 자리였지만 보고 싶다고 전화해줘서 고마웠다.
어릴 적 난 지방 작은 중소 도시에 살았고, 방학이면 가끔씩 서울에 사는 이모 댁에 놀러 가곤 했었다. 이모집이 서울이라서 좋았지만, 더 좋았던 건 나보다 2살(정태 형), 5살(정호 형) 많은 형들이 있어서 더 좋았다. 글에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시골에서 구경 못하는 곳이 많다고 놀이동산도 데리고 갔고, 그 시절 거의 없던 멀티플렉스 극장(서울 극장)에 가서 첩혈쌍웅 등과 같이 누아르 영화도 함께 보러 다녔던 기억이 난다. 차도 많고, 사람도 얼마나 많은지 시골에 살던 나로서는 서울 구석구석을 형들 때문에 많이도 구경 다녔다.
하지만 이모집에 놀러 오면 제일 기대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큰 형이 이야기하는 귀신 이야기가 제일 기대됐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뿐이지만 그 시절에는 순진하게도 정말 형이 이야기하는 건 모두 사실이라는 생각에 이야기를 듣고 나면 화장실도 혼자 가기가 무척 힘들었었던 생각이 난다.
형의 레퍼토리는 정말 다양하고 무궁무진했다. 형이 다니는 학교에 귀신부터 밤에 거울 보며 귀신을 불러오는 방법으로 자신은 귀신을 봤다는 이야기, 그리고 지금 사는 이 동네가 예전 6.25 전쟁 때 사람들이 많이 죽어서 지금도 이 집 저 집 귀신들이 나온다는 이야기 등등. 그중에서 형이 자주 자다가 맞닥뜨리는 귀신이 있는데 몸이 너무 피곤해 기가 허해지면 어김없이 자신을 찾아오는 녀석이라고 했다. 난 어디 다른 곳도 아닌 지금 형을 찾아오는 귀신이 있다는 이야기에 '설마'하는 표정으로 형에게 놀리지 말라고 얘기했고, 형은 며칠 전에도 그 귀신을 봤다는 이야기를 하며 나를 긴장시켰다. 형의 눈빛은 너무 진지했고, 난 그 순간 오늘 나의 몸상태나 컨디션을 걱정해야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귀신 이야기를 하며 형은 꽤나 자세히 녀석의 모습을 묘사했고, 어떤 자세로 자면 귀신이 딱 좋아하는 자세이니 그 자세로 잠이 들지 않게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한여름이었지만 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시간이 늦었지만 잠이 쉽게 올 거 같지 않았다. 이모가 애 너무 놀리지 말라는 이야기에 형은 더 이상 귀신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난 형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눈은 감았지만 잠이 오지는 않았고, 방의 불을 끄고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를 무섭게 만든 장본인은 코까지 골며 잠이 들어버렸고, 난 잠깐이지만 이런 형이 얄미워 형을 때릴까도 생각해 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느껴지지 않았지만 내 눈꺼풀에도 어느덧 긴장을 이겨낸 피로 덕에 잠이 오기 시작했고, 눈꺼풀이 무겁게 닫히려는 순간 난 눈 앞에 무언가가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 뜬 실눈 사이로 검은 무언가가 창문 밖에 서있다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여름이라 방의 창문을 모두 열어놓았고 열린 창문 밖에서 바라보는 무언가를 봤다는 두려움에 난 눈을 질끈 감고 조용히 옆에 자는 형을 흔들어 깨웠다.
"형, 형! 창문 밖에 뭐가 있는 거 같아. 형, 일어나 봐."
"으응, 아직 안 잤니? 아이 뭐가 있다고 그래. 여기 3층인데 창밖에 있을게 뭐가 있다고 그래. 얼른 자."
"으으으..."
난 형의 잠꼬대 같은 소리에 더 놀랐고, 무더운 여름 날씨임에도 이불을 콕 덮고 창문 쪽으로는 눈도 돌리지 않고, 밤을 지새웠다. 아침이 되자마자 난 형을 깨워 밤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고, 내가 본 게 꼭 형을 찾아온다는 그 귀신이 아닌가 싶다고 이야기했다.
"뭐? 하하하!!!"
난 정말 무서웠는데 웃는 형의 얄미운 모습에 또 한 번 화가 났고, 아무리 서울이 좋지만 이건 아니다 싶어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갑자기 들었다. 하지만 이내 형의 말에 모든 게 꾸며낸 이야기인걸 알게 되었고, 난 조금은 허탈하지만 남은 서울에서의 밤은 무탈하게 잘 잘 수 있게 되었다. 형의 말인즉슨 3층은 맞지만 우리가 잠이 든 방의 창은 통로로 나있는 창이었고, 검은 무언가는 옆집 아저씨가 지나가는 걸 내가 봤다는 이야기였다. 옆집 아저씨는 술집에서 일하는데 늘 늦게 귀가하고 남들 자는 시간에 들어오다 보니 여름에는 이렇게 오해를 살 때가 있다곤 했다.
'난 지금도 귀신을 무서워한다. 하지만, 그 당시 내가 봤던 무언가는 귀신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