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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May 27. 2020

예의는 어디 쌈을 싸 드셨어요?

가와사키는 바이크가 아니다

코로나에 이어 어린이 괴질로 시끄러운 요즘 병증이 가와시키와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뉴스에 종종 나오고. 아래 글은 15년 전 큰 아이에게 찾아왔던 가와사키에 얽힌 가슴 쓸어내렸던 씁쓸한  우리 가족의 이야기다.



큰 아이 세 살이 되고, 우리에게 육아가 현실이 된 지 어느덧 삼 년이 되었다. 결혼하고는 5년 차, 육아로는 3년 차였던 우리는 이제야 육아라는 이름에 걸맞은 부모가 돼가고 있었다. 첫 아이였고, 조금은 예민했던 큰 아이를 키우며 첫 두 해는 밤마다 잠을 설쳤고, 부모로서 아직은 모자라고 서툴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는 잊지 못할 많은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큰 병치레 없이 세 살까지 잘 지내온 큰아이였지만 가끔씩 오는 아이의 감기는 우리 부부에겐 매번 오는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아이가 세 살쯤 되니 아이의 아픈 증세만으로도 '열이 나겠구나', '며칠을 더 아프겠구나', '병원에 한 번 더 가야겠구나' 등의 경험치가 생겼고, 그 무렵 아이에게 온 병증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었다. 아이는 열이 나기 시작했고, 열감기로 생각해서 저녁에 해열제를 먹여봤지만 밤새 열은 떨어졌다 올랐다를 반복하기만 했다. 다음날 소아과를 찾았고, 소아과 선생님은 진찰을 하고서는 감기 진단을 내렸다. 우선 2일 치 처방전을 줬고, 우리 부부는 그 날 이후로  두 번이나 병원을 더 내원해야만 했다. 열은 계속되었고, 혀와 피부에도 발진이 일어 좀처럼 병세가 호전되지 않았다. 세 번째 병원에 갔을 때 선생님이 여기저기 진찰을 하시더니 우리에게 조심스레 얘기를 꺼냈다.


 "민수, 단순 열감기 같지는 않아요. 어머니. 아니길 바라지만 조금 의심이 가는 병증이 있는데,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봐야  할거 같아요."

 "......."

 아이를 키우며 좀처럼 놀라거나 흥분하는 일이 없던 아내는 선생님의 말에 너무 놀라 말을 할 수 없었다.

 "선생님, 의심이 가는 병증이라면. 어디 많이 안 좋은 병인가요?"

 아내 대신 내가 선생님에게 아이의 병세를 물었고, 선생님이 얘기한 병증이 너무도 생소해 아이의 병명을 잘못 들은 것 같은 생각까지 들었다.

 "민수처럼 아주 어린아이들에게만 발생하는 병인데, 심하지 않으면 대부분 약을 먹고 치료가 되는데 간혹 안 좋은 사례가 있기는 해요. 민수가 보이는 증세가 제가 생각하는 그 병의 증세와 많이 일치하거든요."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죠? 당장 치료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난 마음이 급했고, 선생님의 다음 말이 나오기 전에 선생님에게 부모로서의 다급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제가 세브란스 병원에 예약을 알아보고 오늘 저녁에라도 전화를 드릴게요. 아마 빠르면 내일이라도 검사를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진찰실을 나오며 내 품에 안긴 아이를 잠시 바라봤고, 아이가 아픈 것도 왠지 우리 책임인 것 듯 죄책감까지 들어 마음이 무거웠다. 병원을 나오며 아내와 집에 들어오기 전 잠깐 이야기를 했고, 내일까지 우리 마음의 여유가 있을 것 같지 않아 서울대 병원에 전화를 걸어 예약문의를 했다. 다행히 지금 오면 소아과 검진은 받을 수 있다는 전화 너머 목소리를 듣고, 아내와 난 그 길로 택시를 타고 혜화동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내내 아이는 몸이 불편한지 계속 보챘고, 칭얼거리는 아이를 보며 더 마음이 아프고 무거웠다.


 대학병원에 가서도 바로 진료를 볼 수 없었고, 종합검사라는 명목으로 아이에게 기본 검사, 피검사, 심전도 검사 등 다수의 검사를 했다. 피검사를 할 때는 세 살짜리 아이의 혈관을 찾지 못해 2번이나 바늘을 찔러대는 간호사 선생님이 너무도 미웠다. 첫 번째 바늘을 찌를 때는 본인들끼리 이야기를 하느라 잘못 찌르는 모습에 정말 눈이 돌아갈 뻔했었다. 또, 아이가 너무 어려 심전도는 수면마취를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에 동의는 했지만 마취 후에 늘어져 일어나지 못하는 큰아이를 안고는 정말 아무 일도 없기를 기도하고, 기도했었다.


 이렇게 어렵게 검사까지 끝내고 대기하는 동안 나와 아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진료실 앞을 지켰다. 우린 시간이 지나 담당교수의 진찰실에 들어갔고, 우연히 앞에 환자도 민수와 같은 가와사키로 진료를 보고 있었고, 환자 보호자 중 아이의 엄마는 눈물을 떨구며 울고 있었다. 진찰을 담당하고 있는 의사 선생님은 어머니의 우는 모습에 한마디 호통을 치며 위로(?)했다.  

 "애 죽었어? 왜 울어. 약 먹으면 나을 테니 울지 말고 나가봐."

 의사의 위로도 아닌 호통에 아이의 부모는 아이를 안고 진찰실을 나갔고, 다음 환자 호출에 우리는 담당 선생님 앞에 조용히 앉았다.  

 "음, 민수 부모님? 민수 검사 결과 가와사키가 맞고, 심장초음파 결과 괜찮으니 아스피린 2주 먹으면 괜찮아질 거야. 다음 환자"


 1시간이 넘는 검사와 2시간 가까이 대기하고 들었던 결과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걱정할 상태는 아니라는 결론이 섰지만 아이의 병 앞에 너무도 무거웠던 부모들의 심정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 담당의의 말에 어이도 없었고, 분하기까지 했다. 나이가 꽤나 있었던 의사로 기억나지만 그 세월의 흔적에는 오랜 세월이 주고 간 선물 같은 따뜻함이나 인간적인 여유가 전혀 없어 보였다. 씁쓸한 마음이 들었지만 아이의 병이 곧 완치될 거라는 기대만큼은 듣기가 좋았다. 약을 복용 후 2주가 지나 아이는 말끔히 털고 일어났고, 우리도 쓰디쓴 대학 병원의 추억을 말끔히 잊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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