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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un 05. 2020

한밤중에 울리는 우리 집 도어록 소리

아들 아직까진 넌 품 안의 자식이구나

아빠, 아빠!!! 밖에서 누가 비밀번호 누르고 있어요. 벌써 두 번째예요.




큰 아이는 고등학교 2학년, 18살이다. 작년부터 키도, 어깨도 나보다 커서 육체적으로는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이 성장한 듯하다. 부모 마음이 다 비슷하겠지만, 품 안에 있을 때가 자식이라는 말이 언제인가부터 마음에 와 닿는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아직은 애 같더니 요즘 옆에 서보면 부쩍 큰 느낌이다. 몸만 그런 게 아니고 요즘은 아내나 날 생각하는 마음이 가끔은 다 키웠구나 싶을 때가 종종 느껴진다.


  작년 가을 TV를 보고 있는 나에게 아들은 갑자기 얼굴을 들이밀고 자기 콧수염을 봐달라고 해서 자세히 보고는 웃었던 적이 있었다. 이유인즉슨 17살 한창 성장기에 맞춰 아들의 코와 입 사이, 인중에는 조금 길게 자란 솜털(본인 말로는 수염이란다)이 길게 자라고 있었고, 이건 엄마에게 얘기할 게 아닌 아빠와 아들 간에 풀어야 할 대화라는 걸 아들도 알았는지 기회가 되었을 때 말을 꺼낸 것이다. 아빠로서 조금 신경 써서 아이가 고민하기 전에 미리 알려줬어야 했는데, 아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빠, 나 수염이 이젠 제법 길었어요. 다른 친구들은 벌써들 면도하는데 저도 면도해야 되지 않을까요."

 "아들, 그건 수염이 아니고 그냥 솜털인데. 하긴 솜털도 많이 났더니 수염 같네. 하하. 알았어. 아빠가 주말에 면도기 사줄게."


  주말 장 볼 때 아들에게 G사 면도기를 사줬고, 나조차 써본 적이 없는 쉐이빙 크림도 함께 구매했다. 자그마치 아들의 소중한 수염을 위해 면도기, 면도기 날과 쉐이빙 크림까지 구매한 금액은 4만 원 정도를 사용했다. 아내는 아들 수염을 너무 소중히 생각하는 게 아니냐고 농담을 건넸고, 면도가 서툰 아들에게 피부 트러블을 최소화하는 솔루션을 제공해 줘야 하는 게 아빠의 몫이라고 아내에게 얘기했다.


  이렇게 구매한 면도기와 쉐이빙 크림으로 주말에 아들에게 면도하는 법을 알려줬고, 아들은 친절하게 면도법을 알려준 아빠 덕에 요즘은 제법 수염 같은 털이 자라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수염까지 얼굴에 나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는 이젠 다 키웠다는 생각에 더 뿌듯하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들었고, 아이들에게 이젠 부모의 손길이 점점 더 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서글퍼졌다.




  올해 초 코로나 유행 전 아내는 딸아이의 친구 어머니들과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1박 2일의 여정이라 여행 가기 전부터 모녀는 들떠 있었고, 아들과 나는 아내와 딸아이가 없는 주말을 둘이서 보내야 했다. 요리는 내가 곧 잘하고, 아들은 특별히 손이 필요치 않을 만큼 장성(?)해서 아내와 나는 큰 걱정이 없었다. 난 아들과 둘이서 저녁을 먹고 주말 저녁이라 늦게까지 TV 시청을 했다. 난 샤워를 하고 자려고 아들에게 씻는다고 이야기했고, 늘 그렇듯이 안방에 있는 욕실에서 샤워를 시작했다. 항상 머리를 먼저 감는 터라 열심히 샴푸를 짜 머리를 감고 있었다. 머리에 거품을 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들의 발소리와 함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고, 난 아들의 다급한 목소리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빠, 아빠! 다 씻었어요?"

 "응? 왜? 아빠 지금 머리 감는데..."

 "밖에서 누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어요. 벌써 두 번째예요."


  난 그제야 아들이 많이 놀란 것을 알았고, 몸에 있는 물만 얼른 닦은 체 옷을 입고 거실로 나왔다. 거실에 나오니 아들이 얘기한 대로 밖에서는 도어록을 여는 소리가 다시 들렸고, 역시나 여러 번의 시도를 하고는 다시 도어록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자정을 넘었는데 나 또한 조금 긴장했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밖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 마침 계단을 오르려던 중년의 남자가 다시 내려왔고, 걸음걸이를 보니 조금은 취한 취객으로 보였다.


  "몇 동 몇 호를 찾아오셨나요?"

  술이 취한 중년의 남자는 나를 보고 조금은 놀란 듯하지만, 동과 호수를 확인하는 말을 꺼냈다.

  "죄송한데 여기 XX동 A 호 아닌가요?"

  "아, 잘못 찾아오셨네요. 여긴 XY동 A 호입니다. 아저씨가 찾는 곳은 옆에 동이네요."

  "아, 아, 죄.. 죄송합니다."


  그렇게 중년의 남자는 다시 계단을 내려갔고, 현관문을 닫고 거실로 들어오던 난 그제야 내 몰골이 엉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머리 위에 고스란히 샴푸를 얹고서 아들의 다급한 목소리에 뛰쳐나온 걸 그제야 깨달았다. 그나저나 다 컸다고 생각했던 아들이 오늘은 아직 품 안의 자식으로 느껴졌다. 오늘 밤은 아직까지는 든든한 부모로 자릴 지켜야 되겠다는 뿌듯함을 안고 잠이 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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