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억바라기 Jun 25. 2020

애가 다섯인데 수박은 괜히 받았다

수박 한 통과 바꾼 층간 소음

"영희 씨, 어제 또 왔나 봐요. 도대체 몇 신데 벌써부터 뛰고 난리도 아니네요. 에~이~!!!"

 



얼마 전 주말 아침, 위층에서 뛰어다니는 소리에 너무도 시끄러워 잠이 깼다. 아내에게 윗집이 왜 이렇게 시끄러운지 물었더니 이틀 전에 새로 이사 온 듯한데 아마 애들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것도 한 둘이 아닌 여러 명이. 주말 아침 8시도 안된 이른 시간인데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것 같이 너무도 시끄러워 참기가 어려웠다.


  인터폰을 통해 경비실에 연락을 하려고 했더니 아내 말이 오늘 하루만 더 참아보자고 한다. 낮 시간에는 어딜 나가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코로나도 한 참이라 아이들은 여전히 집에서 들고뛰었다. TV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고,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소음은 늦은 밤이 돼서야 멈췄고, 19년을 층간 소음에 자유로웠던 나로서는 다 늦게 이게 무슨 고생이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아내가 이야기한 것도 있으니 오늘 하루만은 더 참아보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진정시키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일요일 아침, 어김없이 8시도 되지 않아 윗집에서는 운동회가 열린 듯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아이들의 뛰어다니는 발자국 소리가 우리의 조용한 아침을 망쳐버렸고, 아이 둘을 키운 입장에서 십분 이해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경비실에 연락했다. 아침 8시가 안된 시간에 경비실로 연락해 오히려 경비 아저씨에겐 죄송했지만 현재 상황에 대한 클레임을 걸어야 제대로 상황을 이해할 듯해서 사건 발생 시점에 연락을 드렸다.


  "안녕하세요, 여기 A동 1311호인데요. 지금 윗집에서 뛰어서 너무 시끄럽네요. 벌써 며칠째 이렇게 시끄러운데 방송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1411호가 시끄럽다는 거죠? 말씀드리겠습니다."


  인터폰을 통해 전달하고 나서 채 5분도 되지 않아 위층에서 뛰는 소리가 사라졌고, 나와 아내는 결과야 만족스러웠지만, 조치 방법은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보통 인터폰을 통해 클레임을 하면 층간소음이나 흡연에 대한 아파트 단지 전체 대상의 안내 방송이 일반적인데 별도의 안내 방송 없이 조용해졌다는 것은 경비실에서 바로 윗집에 인터폰을 통해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는 이야기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당황스러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그냥 큰 소리 안 나고 지나가길 빌 수밖에 없었다.


  이후 조용한 휴일을 보내던 저녁 시간 즈음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고, 찾아올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출입문을 열고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출입문 밖에는 조금은 젊은 아주머니 한 분과 연세가 있으신 할머니 한 분이 서 계셨다. 아내와 나를 본 젊은 아주머니가 먼저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윗집에 이사 온 사람이에요. 아침에 인터폰 받고 드디어 올게 왔구나 했어요. 저희 애들이 뛰어서 많이 시끄러웠죠?"

   "아, 네. 조금 놀라긴 했는데 이젠 괜찮습니다."(사실 안 괜찮지만)

   "사실 윗집에는 저희 어머니랑 아버지만 사시고요. 이사를 이번에 와서 저희 오빠네랑 저랑 식구들이 모였던 거예요. 그렇게 자주 오는 건 아니고요. 가끔 찾아뵙는 거니 조금만 이해해주세요."

   "네, 괜찮습니다. 가끔씩 오시는 거면 당연히 이해해 드려야죠.(정말 자주가 아니길 빌면서)"

   "이거 수박 좀 드세요."


이렇게 윗집 아주머니는 수박 한 통을 뇌물로 건넸고, 사람 좋은 표정으로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다. 인사하고 올라가자마자 아이들은 다시 뛰기 시작했고, 이렇게 뛰기 시작한 지 두 시간이 지나서야 다들 집으로 갔는지 조용해졌다. 하지만 우리는 이날 수박을 받은 것을 너무도 후회하고 있고, 오늘도 같은 소음에 시달리며 언제 가려나 시계만 손꼽아 보고 있다.


  "영희 씨, 이번 주에도 또 왔나 봐요. 도대체 가끔이 어떻게 매주예요. 거기에다 애들이 다섯이라면서요."

매거진의 이전글 그 여자가 미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