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다가 보면 연예인들 중에서도 본인은 세상에 무서운 게 거의 없는데 두려움과 공포를 생각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귀신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에게도 다른 두려움보다 이 귀신에 대한 두려움이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아마 이런 두려움은 내가 아주 어릴 적 살던 집에서부터 생겼던 두려움인 듯하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우리 집은 여러 공동주택이 중간에 큰 마당을 두고 함께 살고 있는 구조였다. 그러다 보니 화장실도 여러 집이 함께 사용하는 공동 화장실이었고, 우리 집과 화장실의 거리는 어려서 실제 멀었었는지 아니면 두려움이 커서 그런 건지 한 걸음에 다녀올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던 듯싶다. 게다가 지금은 좀처럼 찾기 힘든 재래식 구조여서, 분뇨차가 왔다간 날이면 아래로 보이는 깊이는 상상 그 이상으로 깊고, 어두웠다.
이런 구조다 보니 무수히 많은 화장실 귀신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고, 어릴 적 가장 두렵고 싫었던 기억이 바로 늦은 밤에 화장실을 가는 일이었다. 그나마 작은 볼일인 경우에는 짧은 시간(그때는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지만) 서서 잠깐의 두려움을 어떻게든 견디고 후다닥 볼 일을 보고 튀어오면 그만이었지만, 배탈이 나거나 참기 어려운 큰 볼일을 맞닥 드리면 어두운 화장실에 앉아있을 생각에 미리부터 곤두서는 털과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바빴다. 거기에다 화장실에 가서 또는 화장실에 앉아있을 때 전등이라도 나가면 정말 정신이 아득해져 보던 볼일도 잊고 뛰쳐나가고 싶었던 적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내가 어릴 적에는 '몽달귀신'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아이들 사이에 많이 퍼져 있었고, 이렇게 밤늦게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휴지 챙겨 준다는 녀석(?)이 있을 수 있으니 꼭 '하얀' 휴지를 잘 챙겨가라는 이야기도 우스게 소리처럼 하곤 했다. 어린 시절 그렇게 두려웠던 화장실의 추억에서 벗어난 건 중학생 때였고, 처음으로 아파트란 곳에 살게 되면서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하면서 화장실 귀신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릴 적 그렇게 귀신이 무섭다고 하면서도 꼭 즐겨보는 프로가 바로 우리나라 전 지역에 걸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나, 민간 설화를 모티브로 제작했던 드라마 '전설의 고향'이라는 프로였고, 아마 80년대 학창 시절을 보냈던 나는 늦은 주말 시간에는 꼭 이 드라마를 본방 사수했었다. 그렇게 무서워하면서도 동생과 난 이불을 머리까지 덮고 꾸역꾸역 드라마를 시청했다. 이 드라마를 시청하고 나면 방에서 혼자 자는 것도 두려워할 만큼 무서워했으면서도 드라마는 놓치지 않고 봤으니 참 아이러니했었던 것 같다.
이렇게 귀신 두려움은 어릴 때부터 차곡차곡 쌓여왔고, 성인이 되고 나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군에서 야간 초소 근무를 설 때에도 선임이 졸거나 자면 혼이 나더라도 혼자 깨어있는 두려움 때문에 선임을 깨우거나, 선임에게 말을 걸었다. 아내와 연애할 때에도 아내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혼자 집까지 나오는 길이 항상 두렵고 무서웠다. 아내가 차를 사기 전까지 아내보다 먼저 내리거나, 시간이 늦어 아내를 바래다줄 때에는 타고 갔던 택시를 보내지 않고 아내가 집에 들어가는 모습만 보고는 냉큼 타고 갔던 택시를 다시 타고 나왔다.
우리가 살던 곳은 지방 작은 도시였고, 처가가 있는 곳은 우리가 데이트를 하는 번화가(다운타운)와는 거리가 먼 외곽이었다. 이 번화가와 처가 중간쯤 되는 곳이 우리 집이어서 데이트가 일찍 파하면 번화가에서 함께 택시를 타고, 우리 아파트 앞에서 내가 먼저 내리고, 아내는 자신의 집까지 그 택시를 타고 가곤 했었다. 마치 아내가 날 데려다주는 모양새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난 아내와 늦은 시각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고, 평소같이 번화가에서 함께 택시를 타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마침 우리 집 근처까지 택시가 다가갔지만 난 내려달라는 얘기 없이 그냥 우리 집을 지나쳤고, 택시는 아내의 집(처가)으로 이동했다.
"오빠, 여기서 안 내려? 어떻게 하려고."
"괜찮아, 영희 씨. 영희 씨 데려다주고 난 집까지 걸어가지 뭐. 걸어서 15~20분이면 되는데 뭘."
"괜찮겠어? 그냥 이 택시 타고 다시 집으로 가."
아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렇게 얘기했지만 나의 변화 없는 얼굴을 보고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내의 집 어귀에 택시는 섰고, 우린 택시비를 내고 차에서 내렸다. 멀어져 가는 택시를 보며 조금은 걱정은 됐지만 난 아내에게 이런 표정을 들킬까 봐 이내 얼굴을 고쳐먹고, 아내의 손을 조용히 잡고 집까지 바래다줬다. 이렇게 바래다주고 나가는 내 모습을 아내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한참을 바라봤고, 내가 멀어질 때까지 마당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난 이렇게 아내와 헤어지고 집으로 가는 길 위에 섰고, 차들이 다니는 큰길이었지만 늦은 밤 시골길이라 가로등도 드문 드문 보였고, 주변에는 인가도 전혀 없는 그런 외진 길이었다. 게다가 길 곳곳으로 좌우에 무덤이 보였고, 두려움이 커서 그랬는지 몰라도 꼭 무덤 위로 환한 조명이 반사하는 것 같이 유독 무덤만 잘 보이는 것 같은 착시 현상까지 생겼다.
막상 어둡고, 음산한 길을 보면서 그냥 택시를 보낸 일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노래를 마지못해 부르며 적막한 밤길을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 두려움을 떨쳐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산에서 들려오는 소린지 아니면 멀리 있는 민가에서 들려오는 소리인지 모를 개 우는 소리가 들렸고, 갑자기 곤드 서는 머리털에 내 두려움은 극에 달했고, 큰 걸음이었던 내 두 다리는 어느새 조금 더 빠른 걸음 아니 숨이 턱까지 찰 정도로 그냥 냅다 뛰었다.
어림잡아 오십 미터 간격의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가 너무 멀어 보였고, 차가 지나다니지도 않는 도로 위에는 차 대신 내가 달리고 있었다. 20분 정도 걸어갈 거리를 결국에는 뛰어서 10분도 안 걸려 집에 도착했고, 그리 덥지 않았던 가을밤이었지만 늦은 밤의 조깅으로 내 옷과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날 밤 이후 난 아내에게 전부터 졸랐던 소형차를 사자는 이야기를 더 지속적으로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5년간 우리의 안전한 두 다리 역할을 해준 작고, 귀여운 소형차를 장만했다. 명절 때 처가에 내려가서 그 길을 지날 때면 가을밤 조깅의 추억 때문에 혼자 피식피식 웃곤 한다.
영희 씨, 그때 내 사랑의 크기가 정말 대단했나 봐요. 귀신 나올 것 같은 이 길을 영희 씨 데려다주고 어찌나 뛰었던지 아마 귀신이 지금 날 보면 반갑다고 할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