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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ul 17. 2020

여름 아침 산책이 즐거운 이유

아침엔 꽃 보고, 낮에는 책 보고 갬성 그득한 하루

주말 아침 시작, 일주일을 지내며 가장 나에게 집중하며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시간을 꼽으라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건 바로 토요일 아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족과 분리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아침 7시에서 8시 사이, 평일에 비하면 꽤나 늦잠을 자고 일어나는 시간이지만 나머지 가족들에게는 꽤나 이른 시간이다. 그래서 난 이 시간에 일어나고도 혼자서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아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찬바람이 불 때에는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오래된 책에서 나는 책 냄새가 좋고, 요즘 같은 여름에는 차가운 아이스커피와 베란다 창문에서 들어오는 적당히 시원한 아침 공기가 좋다.


오늘 아침은 평소보다 조금은 더 일찍 시작하는 하루를 보냈다. 어젯밤 잠이 들기 전 아내와 딸아이가 주말 아침에 산책을 가자고 내게 제안을 했고, 난 하정우 배우만큼은 아니지만 걷는 걸 좋아하는 족속이다 보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제주 올레길을 너무 좋아해 몇 년 전에는 가족과 2박 3일을, 재작년 그리고 작년에는 혼자 여러 코스를 다녀왔다. 올해도 아내에게 미리 가을쯤 다녀온다고 할 정도로 걷기를 그 느림의 철학적 행보를 좋아한다. 이런 이유로 난 나만의 시간을 하루 미루기로 하고, 당연히 아내와 딸아이와 함께 아침 산책을 가기로 했다.


조용한 방안 적막을 깨고 울리는 알람 소리에 난 눈을 떴고, 시간을 보니 아침 6시 15분. 누워서 몸을 조금씩 움직이며 아침에 산책 가기 위한 예열을 하고,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었다. 시계를 보니 6시 20분, 아내와 딸아이를 깨우고 나서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아 조용한 아침을 깨웠다.


아내와 딸아이도 준비가 끝나고 우린 집 근처 산책로를 따라 여름꽃을 눈으로 즐기며 조용히 걸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운동, 산책하러 나오신 분들이 많았다. 며칠 전 아내와 난 늘 다니던 산책로가 아닌 다른 코스를 찾았고, 그때는 가로등과 네온사인의 분위기 있는 산책로였다면 오늘은 아침햇살이 가득 내려앉는 여름 아침 산책로다. 곳곳에 피어있는 꽃들이 걷는 내내 심심하지 않게, 때로는 발걸음을 늦추기도 한다.

한참 아이들 키울 때  스마트폰에는 아이들 사진이 가득이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누가 얘기한 것처럼 스마트폰에는 꽃들만 한 가득이다.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길 위에서 만나는 꽃들을 카메라에 담는 게 너무 좋았다. 처음에는 이런 감성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이쁜 건 담아놓고 또 보고 싶고, 나눠보고 싶은 게 나이 들면서 생겨난 감성이라 늘 사진으로 남기게 됐다. 아마 이건 나이가 들어가는 사람들의 본능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아마 지난 세월보다 남은 세월이 짧을 거라는 걸 아는 본능. 항상 볼 수 있는 이런 풍경들도 소중하고, 하루하루가 소중해진 걸 본능적으로 아는 게 아닐까 싶다.


오늘은 오랜만에 딸아이와 둘이서만 서점 데이트를 했다. 봄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한 달에 한, 두 번씩은 서점에 함께 다녔는데 코로나 19 이후에는 우린 서점에 다니지 않았다. 책도 대부분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하지만 난 서점에서만 나는 그 특유의 책 냄새를 좋아하고, 책이 많이 꽂혀있는 서점을 가면 마음도 한 가득 풍족해지는 기분이 들어 더 자주 찾는다. 오늘은 아내가 오랜만에 지인들과 모임이 있어서 딸아이와 둘이서 '알 X딘 중고서점'을 찾았다.


가는 길에 막국수와 메밀전병으로 점심을 먹고, 서점에 가서 평온하고 재미있는 서점 데이트를 했다. 책을 골라 딸아이와 서로 골라온 책 이야기를 하고, 사고 싶은 책들이 있는데 여기에는 없다거나, 살까 말까 망설이는 책들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등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잘재잘 이야기로 한 때를 보냈다. 몇 달만에 서점을 온 거라 불과 2주 전에 네 권 책을 사서 아직 다 보지 않았는데 또 욕심을 냈다. 오늘도 가방 한가득 책 네 권을 넣었고 난 행복 그득, 책도 그득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지수야, 코로나 19가 좀 잠잠해지면 예전처럼 알X딘 더 자주 가자. 아빠가 사고 싶은 책 많이 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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