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고, 신나게 놀던 어릴 적 기억을 더듬다 보면 생각나는 몇 가지 중 겨울의 신났던 추억 거리가 떠오른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놀이터가 따로 있거나 놀러 갈 공원이 가까운 곳에 흔하게 있던 시절은 아니었다. 하지만 갖춰진 곳은 아니어도 아이들 모이는 곳이 놀이터였고, 함께 뛰어놀면 그곳이 공원이 될 만큼 공터나 놀거리가 많았다.
그중 겨울만되면 찾던 곳이 있었다. 학교 뒷산이 바로 그중 한 곳이었고, 큰 비닐봉지 하나면 그곳에서의 스릴을 온통 만끽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기억이 난다. 그곳은 눈이 조금만 쌓이면 아이들이 항상 모여들었던 명소였고, 적당한 경사와 나무로 드리워진 타고난 응달 지역으로 눈이 조금만 내려도 좀처럼 녹지 않아 두고두고 놀 수 있는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 내가 어릴 때 살았던 강원도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눈이 왔었고, 눈이 한번 오면 적설량도 상당해 눈썰매 타는 재미는 요즘 갖춰진 눈썰매장 못지않은 흥미와 재미를 가져다주었던 것 같다.
환경문제의 심각성으로 요즘은 일회용 비닐봉지를 줄이자는 분위기로 종량제 봉투가 아니고서는 비닐봉지를 일부러 받아 오지는 않지만 그 시절만 해도 어머니가 시장을 다녀오거나, 물건을 사 올 때면 항상 비닐봉지를 사용하셨고, 두께와 길이도 적당한 맞춤형 사이즈의 비닐봉지가 집에 생겨날 때였다. 하지만 그때엔 분리수거라는 개념이 없었던 시절이라 항상 쓰레기통을 뒤져 비닐을 찾아 가져 간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런 눈썰매용 봉투 중 최고의 봉투는 뭐니 뭐니 해도 비료용 비닐 포대였다. 온몸을 실을 수 있는 사이즈에 마찰 없는 바디로 최고의 속도와 스릴을 자랑한다. 하지만 흔하지 않은 몸이라 좀처럼 탈 기회가 없지만, 가끔 눈썰매 탈 때 가져오는 아이들이 있어 한 두 번은 꼭 타고 오곤 했다.
그렇게 준비한 비닐을 손에 들고 학교 뒷산에 삼삼오오 모여 일부러 정하지 않고도 먼저 온 순서대로 차례차례 싸우지 않고 타는 모습도 그때의 추억을 더욱 기억나게 한다. 아이들은 엉덩이 밑에 비닐을 깔고 발을 한 번 차고 나면 순식간에 미끄러져 내려가는 비닐 위에서 곡예라도 하듯 위태롭게 몸의 균형을 유지했지만, 위태로운 몸과는 다르게 얼굴은 한가득 미소 지으며 비닐 눈썰매를 재미나게 타곤 했었다. 눈썰매가 미끄러져 내려가는 건 순식간이었고, 다시 썰매 타는 위치까지는 조금 경사도 있고, 거리도 되어서 뛰어서 단숨에 올라가면 숨이 턱까지 차올라 입 밖으로 하얀 입김이 썰매를 타는 아이들 입에서 연신 뱉어져 나왔다. 땀이 범벅이 되면서도 그때는 그렇게 재미있었다.
10여 년 전 우리가 살던 집은 집 앞 대문을 나온 골목길에서 아래 진입하는 길까지 조금의 경사가 있었고, 우리 집 위에 두 셋집 건너 위가 골목에서 마지막 집이라 막혀있는 골목이었다. 1월 주말 어느 날 아침부터 눈이 내렸고, 난 어릴 적 생각이 나서 아이들에게 조금은 신나는 추억을 만들어 주려고 두 녀석을 끌고 나갔다. 눈이 많이 쏟아부어서 그런지 골목에 사람들은 없었고, 아래 골목길로는 차들도 지나다니지 않았다. 눈썰매를 아이들에게 주고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난 골목 아래에 자리 잡고 아이들에게 썰매를 타라고 했고, 아이들은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눈썰매를 타기 시작했다. 골목 어귀에 주차된 차도 없고, 아이들이 내려오는 경사도 그리 크지 않아 속도가 붙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은 그것조차도 무척이나 신나 하는 눈치였다. 아이들에게 내가 어릴 때와 같은 그런 재미를 느끼게 하고 싶었지만 조금은 아쉽게 썰매놀이는 끝났고, 그래도 하얀 눈만 보면 좋아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너무 예뻐 보였다.
그렇게 눈썰매의 추억을 갖고 있던 해에 설 명절을 지내기 위해 부모님 댁에 갔다가 처가로 갔다. 처가는 시골이었고, 처가 뒤로는 산이 있어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대한 추억과 두고두고 갈 것이라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마침 명절 때를 맞춰 눈이 펑펑 왔고, 우리가 처가에 갔을 때에도 아직 그 눈의 흔적은 마당 곳곳에 고스란히 쌓여 있었다. 도착해서 저녁을 먹던 중 1월에 아이들이 집 앞 골목에서 눈썰매 타며 좋아했던 이야기를 했고, 아이들은 그때의 기분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쏟아내며 신이 난 모습들이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 조금은 무뚝뚝한 성격의 장인어른이 아이들을 불렀고, 나 보고도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나서자고 했다. 난 평소 말씀을 아끼시던 장인어른이 이리 날 불러 아이들을 끌고 나서는 게 어리둥절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장인어른이 이끄는 곳으로 따라나섰다. 당신께서는 처가 뒤 산으로 길을 잡더니 조금 올라갔더니 어느새 적당한 경사가 있는 눈 쌓인 산 길이 나왔고, 그제야 장인어른이 왜 우리를 이곳에 데리고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장인어른은 두 손에 있던 비료용 비닐 포대를 아이들에게 내밀었고, 아이들은 뭘 하라는지 금세 눈치채고서는 할아버지 손에서 비닐을 챙겨 들고 눈썰매를 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썰매를 탔고, 장인어른은 아이들이 그렇게 노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는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재미난 한 때를 보내고서 우린 다시 서울로 올라왔고, 일상으로 복귀 후 조금 시간이 지나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 날의 기억이 얼마나 아이들에게 신나고, 좋았는지.
"민수, 지수! 할아버지 집에 가서 지난겨울에 눈썰매 탔던 거 기억나?"
"어, 외할아버지 집 뒷산에서 썰매 탔던 거 당연히 기억나지."
큰 아이가 그날의 기억을 더듬고서는 다시 한번 신난 표정으로 말했다.
"민수도, 지수도 많이 재미있었어?"
"응, 강원도 할아버지 집에 갔었던 일 중에서 제일 재밌었어."
딸아이도 한 껏 업이 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엄지 손가락을 '척' 내밀며 한마디 했고, 아이들의 기억이 두고두고 오래가서 나처럼 어른이 되어서도 행복한 추억의 한 조각으로 남아있길 바라본다. 그나저나 녀석들 그냥 외할아버지도 할아버지라고 부르면 안 될까 생각을 해봤다. 굳이 앞에 외가라는 걸 붙여야 하는가 싶다. 우리 둘째는 그래서 인가 아버지나 장인어른을 모두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다만 두 분이 사시는 지명을 따서 아버지는 '경상도 할아버지', 장인어른은 '강원도 할아버지'. 현명한 것 같으면서도 왠지 모르는 거리감이 든다.
나중에 나도 이런 이야기 안 들으려면 딸아이가 결혼해서 사는 한 지역에 살아야 할까 싶기도 하다.